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git Apr 22. 2022

자전거를 탔다

행운의 여신은 자전거를 탈때 온다

올해 다시 자전거를 타기로 맘먹은 이유중 하나는 집에 가만히 있기보다는 바깥의 좋은 기운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때문이기도 하다. 행운은 가만히 있는 자에겐 오지 않는다는 말, 그래서 무엇이든 도전하고 여기저기 걸어다니는게 좋다고 했는데 나는 걷는 대신 자전거를 타기로 한것이다. 요즘 여러모로 머리는 복잡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자신감도 소멸상태에 이르고 있는것을 근력을 키워 깡다구로 버텨보고 싶어진것이다.

 자전거를 싣고 출판단지 뒷쪽의 자전거 길로 가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휘청휘청 넘어질듯 말듯 처음엔 중심잡는게 너무 어려웠다. 이곳은 평소에도 사람들이 별로 없는곳인데, 평일 낮시간이라 사람이 더더욱 없으니 내맘대로 천천히 탈 수 있어서 안심이다. 한강 고수부지처럼 누군가가 뒤에서 답답해 하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바퀴가 흔들거린다. 천천히 달려도 괜찮다 생각하고 넘어지지 않고 맘편히 달리는데 중점을 두고 페달을 밟아본다. 내 머리는 기억을 못해도 몸은 기억을 하나보다. 몇분 타다보니 중심잡는것이 몸에 익어서 좀 더 속력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자전거 기어 단수를 바꾸는건 꿈도 못꾸고 핸들을 양손으로 꽉 잡고 넘어지지 않고 좀 더 빠르게 빠르게 달려본다. 어릴땐 분명히 양손을 놓고 타고 다리를 쭉뻗어 엉덩이를 안장에서 떼고도 탔었는데 이제는 호달달 호달달 벌벌 떨면서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이 우습다. 그래도 타다보니 조금씩 괜찮아진다.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잡는것도 처음엔 잘 안되었다가 몇번 브레이크 잡는 연습을 하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처음이니까 조금만 타기로 했지만, 지난 여름 걷기운동을 한만큼은 자전거로 타볼 수 있을것 같아서 목표를 10킬로미터로 잡았다. 하지만 3킬로쯤 달리고 나서 체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걸 느꼈다. 발목과 허벅지, 무릎 안쪽 근육이 뻐근하게 아파온다. 약간 배가 고픈것 같기도 하고 피로감이 몰려오는 느낌도 든다. 빨리 반환점을 돌고 원점으로 가서 자전거 타기를 끝내고 싶다. 하지만 포기는 하지 않는다.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달리고 싶었는데, 상상했던 나와 현실의 나는 차이가 크다.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밉고 등쪽에서 밀어주는 바람은 고맙다. 

옆으로 촤라락촤라락 소리를 내며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자전거라이더들이 슝슝 지나간다. 주말이 아닌데도 나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구만! 귀 뒤, 멀리에서 촤라락 촤라락 소리가 났는데 금새 나를 지나 저 멀리로 달려가버렸다. 저정도까지 타고 싶은건 아니지만, 별로 힘들이지 않고 슉슉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내 속도로 가야지. 지금은 남 신경쓸 체력도 처지도 아니다. 앞서 달려나가는 무리들을 바라보며 화이팅을 한번 외쳐준다. 사실 이 화이팅은 나한테 하는거나 마찬가지다. 자전거 뿐만 아니라 사는것도 똑같다고 내 마음을 다독였다. 조급할 필요 없어. 어짜피 백세인생 뭐 쫌 늦게 가믄 어떻구 빨리 가면 어떠냐. 이왕 이렇게 된거 건강이나 챙기자 생각한다. 언제 죽어도 후회없이 사는게 중요하지 남들만치 못해서 계속 괴로워하며 사는게 더 바보같다. 하고 싶은걸 하면서 늘렁늘렁 살기로 했으면서 계속 세상 기준에 못맞출까봐 괴로워하고 또 다시 아~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하고 마음을 잡기를 반복한다. 그냥 쳇바퀴다.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 기분이나, 살면서 느끼는 기분이나 비슷하다.


달리면 달릴수록 근육은 너덜너덜, 지치는 마음이 생기면서도 또 반대로 머릿속엔 기분좋은 생각들이 생겨난다. 그림을 더 열심히 그려야 겠다는 생각, 새 작업의 아이디어, 농사에 대한 생각도 많아진다. 이따가는 잊어버릴지 모를 글의 주제도 몇개 떠올랐다. 내가 협업할 수 있는곳들을 좀 찾아서 새로 용기내서 여기저기 이메일을 보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런 마음들을 잘 기억했다가 작업방에 좌라락 풀어놓고 싶다.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스팸전화번호는 아닌것 같아서 옆으로 자전거를 세워두고 전화를 받았다. 세상에, 연초에 갤러리에 작가공모 서류를 냈었는데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전시 일정을 잡았으면 한다는 연락을 받고는 여태까지 지쳐있던 몸과 마음이 신선 그 자체가 되었다. 나란 인간은 얼마나 웃기고 나약한 존재인가, 여태 우울하고 힘없고 지친 마음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다가 갑자기 콧노래가 나올것 같은 기분이다. 남은 2.7킬로를 신바람이 나서 슝슝 타고 원점으로 돌아왔다. 전화 한통에 기쁘고 자그마한 일 하나에 실망하는 내자신이 웃기지만, 오늘 자전거 타길 잘했다. 


행운의 여신은 자전거를 타고 오는걸까? 

내 하얀 자전거가 행운의 아이템일까? 

고마운 내 자전거, 자주자주 타줄게! 


매거진의 이전글 자전거 또또또수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