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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은 Dec 09. 2021

코사이어티 빌리지 제주, 먼저 다녀왔습니다

탈몰입과 느슨한 연결로부터 차오르는 유연한 생산성의 공간

코사이어티 빌리지에서의 경험이 놀라웠던 이유를 설명하자면, 우선 약간의 내 소개가 필요하다. 낯가림 심함, 붙임성 없음, 사회성 낮음. 밤샘 작업과 네트워킹 자리 참석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면 망설임 없이 전자를 고를 INTP 성향의 3년차 창업가. 코사이어티가 추구하는 공간이 연결과 교류를 통한 시너지의 장(場)이라는 점에서, 혼자일 때 제일 생산적인 나는 어쩌면 그의 안티 페르소나에 한 없이 가까운 사람일 것이었다.


스무 명과 함께 하루를 머물렀다. 정말 하루 만에 이 사람들이 서로 유의미하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 코사이어티 빌리지에서의 1박은 '자연과 건축으로 환경을 조성해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운 하나의 사회실험 같기도 했다. 경험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Make me!"라는 반쯤 삐딱한 태도로 팔짱을 끼고 있던 내가, 하루가 지나고 나니 옆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편안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이야.



삶을 바꾸는 좋은 공간을, 코사이어티

코사이어티는 ‘좋은 공간이 사람의 삶을 바꾼다'는 철학을 가진 크리에이티브 그룹 '언맷피플'의 공간 콘텐츠 서비스 브랜드이다. 'co+society'라는 이름에서 추측해 볼 수 있듯이,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들어내는 시너지를 추구하는 연결과 교류의 공간을 지향한다. 업무에 집중하기 위한 오피스와 대화하며 휴식하기 좋은 라운지, 혼자 사색할 수 있는 정원과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리기 좋은 홀로 구성된 복합적인 공간을 만든다.


2021년 새롭게 오픈한 두 번째 공간, 코사이어티 빌리지 제주(cociety village Jeju)는 2년 앞서 운영을 시작한 코사이어티 서울숲에 비해 보다 정적이고 닫힌 공간이다. 가장 큰 차이는 제주의 빌리지가 숙박을 포함한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개방성의 정도와 텐션의 높낮이 차이가 생긴다. 제주라는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서 공간 내 자연경관의 역할과 비중을 크게 늘렸다. 외부의 불필요한 자극을 차단하고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자발적 고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코사이어티 빌리지의 첫 인상을 담은 필름 사진들 - Leica C2, Kodak Ultramax



자연스러운 네트워킹, 이게 된다고?

함께 머문 스무 명 중에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대충 반반 정도 섞여 있었다. 한 두 명을 빼고는 모두 공식적인 업무 상황에서만 보았던 사람들이라, 아는 사이라고 해서 딱히 편한 것도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니면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로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그런 정도의 사이. 그로부터 무언가의 화학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처음 느낀 시점은 갈대밭으로 지는 노을을 나란히 서서 같이 바라보던 오후 5시 30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물들어가듯 서서히 달라졌다. 아침에 공항에서 어색한 손으로 명함을 주고 받았던 그 사람이, 해질녘 선선한 갈대밭에서 마주쳤을 때는 어색하지 않았다. 혹시나 말을 걸어올까 못 본 척한 그 사람이, 우연히 카페에서 눈인사를 나눌 때는 반갑기까지 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존재하는 공간, 연결되는 맥락이 바뀌자 관계의 경도와 온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불편한 건 사람이 아니라 상황과 자리였던 걸까? 어쩌자고 이렇게 풀어지는 건지 스스로가 낯설 지경이었다.

둘째 날 아침, 다 같이 갈대밭에서 노르딕 워킹 체험 중 - Leica C2, Nebo 400
스무 명의 동료들에게 노르딕 워킹이라는 신세계를 소개해 준 정훈 님 - Leica C2, Nebo 400



과몰입에서 탈몰입으로, 타이트한 소통에서 느슨한 연결로

돌아보면 일과 목표에 대한 과몰입에서 벗어난 탈몰입 상태에서, 치열하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타이트하게 소통하는 대신 필터링 없이 자유로운 대화를 던지며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낯선 곳에 함께 고립되어 있음'이라는 공감대가 깔려있었다. 두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다. 하나, 관계는 맥락이 결정한다. 둘, 맥락은 환경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가설에 대입해보자면 '물리적 환경 조성으로 비물리적 맥락을 부여함으로써 관계의 형태와 범위를 설정할 수 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 모든 설정이 결과적으로 생산성에 비약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느낀 에피소드 하나. 블루보틀 창가에서 1:1로 간단하게 사업 계획 피칭을 시작하려는데, 실행 단계에서 합류하게 될 동료들이 한 명씩 커피 마시러 왔다가 모여드는 바람에 결국 모든 관계자에게 한 번에 전달하게 됐다. 서울에서 다섯 명이 다 같이 모이려면 메일 쓰레드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그러다가도 종래에는 누군가 한 명 빠진 채로 회의해야 했을 구성이었다. 미팅이란 캘린더, 시간 약속, 회의록 따위의 것들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일'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예고 없이 역사가 이루어진 블루보틀의 창가 바 좌석 - iPhone 13 Pro



치밀한 설계는 의도를 들키지 않는다

소름 돋는 건 이 모든 것이 치밀하게 설계된 경험이었다는 점. 갈대밭 사이로 산책로를 조성한 건, 함께 일하는 사이에 생길 수 있는 미묘한 감정을 '산책 외교'로 터놓으라는 의도였다. 퍼블릭과 프라이빗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분하고 대조시킨 건, 프라이빗 안에서의 특권과 유대를 강조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어느 하나 이유 없이 그냥 있는 것이 없는데, 정작 그 의도가 눈에 보이는 건 또 아니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듯이 날카롭고 촘촘한 논리는 자연스레 흐르는 직관과 구분할 수 없었달까.


그 논리적인 설계를 물리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건 물론 압도적인 자연과 완성도 높은 공간이다. 빌리지 안쪽 건축과 건축 사이에는 제주 동쪽 중산간 지대에 자생하는 나무와 풀을 자연주의 정원의 형태로 식재했다. 빌리지의 바깥으로는 높은 삼나무가 빽빽하게 이룬 숲 앞으로 갈대밭이 끝 없이 펼쳐진다. 입차로 오른편에 보이던 상큼한 연두색 이파리들은 구좌읍의 어둡고 축축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 특산품 당근의 잎이었다고.

정돈되어 자연스러운 느낌의 내부 조경, 거친 듯 정갈한 느낌의 외부 정원 - iPhone 13 Pro
푸릇푸릇 이파리를 당기면 제주 당근이 나와요! - iPhone 13 Pro


내부 공간의 퀄리티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필요한 것들이 사려 깊게 구비된 숙박동도 물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건축 공간의 하이라이트는 후련하게 트인 창밖을 보며 일할 수 있게 만들어진 코워킹 스페이스. 감탄했던 디테일에 대해 하나 하나 언급하자면 한도 끝도 없기에 총체적 감상만 남기자면 '일하고 싶어지는 공간', 좀 더 날것 그대로 표현하자면 '일하고 싶은 뽕이 차오르는 공간'이었다 하겠다.

당장 노트북을 펴고 싶게 만드는 코워킹 스페이스 좌석 - iPhone 13 Pro
무채색의 미니멀함이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 낮은 채도 난색의 안정감이 있는 라운지/홀



결산해보니 얻어 온 것들

1박 2일의 체류 중 잠자는 시간을 빼고 깨어있는 채로 머문 시간은 정확히 12시간. 그 사이에 나는 일곱 명의 동료와 20분 이상 긴 이야기를 나누었고, 가지고 있던 사업 구상을 네 명의 관계자에게 직접 전달했으며, 세 개의 후속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더 중요한 건 숫자로 표현되는 그 이상의 질적인 경험에 대한 것들이다. 몰입에 대한 맹신과 연결에 대한 강박을 버리도록 일에 대한 관점 자체를 바꾸어준 일과, 밤 열 두 시에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겨울 제주 하늘의 별을 보러 갔던 그림 같은 추억을 남긴 일처럼.

12월 제주 하늘의 낭만을 업계 동료(?)들과 함께 - iPhone 13 Pro


그리고 이 글을 시작으로 '좋은 워케이션 공간'에 대한 리뷰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드는 공간은 많고도 흔하지만,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공간은 일 년에 한 두 곳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문데 코사이어티 빌리지 제주가 그랬다. 일과 관계와 자기계발, 현재의 삶의 모든 면에서 영향과 영감을 받았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이 밀도 있는 1박 2일이, 2021년의 마지막 나에게 온 가장 큰 행운이었던 걸로.





✦ 한줄평 | "사려 깊게 설계된 좋은 공간, 사람의 삶을 정말로 바꿔놓더라고."

✦ 추천합니다 | 구성원 간 목표와 가치의 얼라인먼트가 필요한 10-20명 내외의 조직


코사이어티 빌리지 제주 | @cociety_village

“work & rest with inspiration”—코사이어티 빌리지 제주는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일하고 쉬는지가 일의 생산성과 창의성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에서 탄생했습니다. 빌리지를 둘러싼 한적한 자연 속에서 일과 일상 사이의 여유를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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