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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은 Mar 15. 2022

일하는 감각을 깨우는 오션뷰 오피스, 강릉 일로오션

감각의 파도가 일하는 여행자의 창의성과 생산성에 주는 영향

아침이면 창으로 쏟아지는 해돋이, 문을 열면 날아와 부딪히는 파도 소리, 길 건너면 상쾌하게 감싸오는 솔숲 향기, 걸음 걸음 사각대며 밟히는 모래알, 높은 하늘 동쪽으로 멀리 트인 바다! 파도로 밀려드는 건 바닷물이 아니라 일상에서 결핍되었던 살아있는 감각자극이었다. 송정해변에서의 아침을 처음 맞이한 워케이션 이틀째, 어제까지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고 숙소에선 잠만 자는데 굳이 오션뷰에 묵을 필요 있냐'고 투덜대던 내가 외쳤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세상 사람들 왜 이거 안 해?"


지금 당신을 이곳으로 이끌 단 하나의 장면 - iPhone 13 Pro



일하는 여행자들의 바다살롱, 일로오션

일로오션(illoocean)은 '일하러 바다에 온' 사람들을 위한 강릉 워케이션 공간 서비스이다. 송정해변의 3성급 호텔 객실과 1층 로비 오피스의 자유석, 강릉 시내 코워킹 스페이스 '파도살롱'의 고정석과 강릉을 즐기는 여행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한다. 일할 곳과 잘 곳은 기본, 안정적인 Wi-fi 네트워크, 자리마다 설치된 콘센트, 무선 프린터와 OA 테이블, 야외에서 일하고 싶을 때 대여 가능한 캠핑 테이블과 의자에 포켓 와이파이까지, 일하는 여행자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필요한 것들을 사려 깊게 마련해둔 워케이션 홀 패키지.


이 흥미롭고 실험적인 서비스를 기획한 사람들은 강릉의 로컬 콘텐츠 기획사 '더웨이브컴퍼니'다. 2018년부터 강릉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강원의 자연 속에서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또 전하고 있다. 2019년 강릉 최초의 코워킹스페이스 '파도살롱'을 열었고, 2021년에는 강릉에 이주하고 싶은 사람들이 두 달간 함께 어울려 살아보는 커뮤니티 프로그램 '강릉살자'를 진행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일로오션은, 하나의 상품 서비스라기보다, 자신들이 추구하고 또 이루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누구나 체험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또 다른 방식인 셈이다.

눈 내린 다음 날의 송정해변 산책 풍경 - Minolta X700, Lomography 400
따로 또 같이, 여유롭게 혹은 몰입해서. 필요에 따라 구획이 나누어진 로비 오피스 전경 - iPhone 13 Pro



창의적인 낮과 생산적인 밤

머물렀던 4박 5일은 1월 중순. 한 해의 계획과 중요한 제안들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였다. 몇 번의 회의를 거치고 몇 잔의 커피를 마셔도 사업계획서의 페이지가 채워지지 않아 시간만 흘려보내다, 예약해둔 일정이 다가와 '떠나보면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풀리지 않은 숙제를 대충 말아 들고 도망치듯 강릉으로 간 참이었다.


도착한 첫날부터 선명하고 확연하게 달랐다. 우선 머리가 트이는 느낌부터가 시작이었다. 안온한 일상 속에서 뇌의 늘 쓰던 부분만 좁게 쓰고 있었다면, 쏟아지고 밀려들며 몰아치는 감각자극이 잠자고 있던 나머지 부분을 깜짝 놀라게 흔들어 깨운 것 같았다. 갑작스레 활성화된 인지가 전에 없던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과정인지, 다 기분 탓이고 그냥 청량한 겨울바다를 본 게 환기가 되어선지, 쓸데 없이 켜져있던 잡념이란 프로그램들이 모두 셧다운되고 시스템이 리부팅되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 모드로 전환하는 나를 발견했다.

눈으로도 느껴지는 시원함, 겨울이었다 - Minolta X700, Lomography 400


노트북을 방 안에 두고, 스케치북과 네임펜 몇 자루를 챙겨 로비 오피스에서 가장 뷰가 좋은 자리에 앉았다. 쓴다기보다는 그리는 느낌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스케치해나갔다. 그러다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해변을 걸으러 나가기도 했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생각 중에 기록해야 할 것들은 나에게 보내는 카톡창에 두서 없이 조각 조각 전송했다. 이 순간 중요한 건 기록의 방식이 아니라, 상상과 연상을 더 크게 펼쳐 나가는 것이었다.


반짝이는 모래 위로 튀어오르는 흰푸른 바닷물을 보며 떠올리는 생각은 하얀 화면 위에 깜빡이는 까만 커서를 보며 짜내는 생각과는 아예 다른 별에서 오는 듯 했고, 나는 그 별에서 보낸 행운을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 있었던 사례.jpg  - iPhone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온 밤이면 파티션으로 가려진 조용한 자리를 찾아 노트북을 열었다. 낮에 듣던 음악을 이어 들으면서, 스케치북과 카톡창에 흩뿌려져 있는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화면 위로 옮겨나갔다. 뚜렷한 주제와 맥락이 짜여져 있고, 필요한 모든 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그 시간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이었다.

이토록 낭만적인 밤샘이라니! - iPhone 13 Pro



딱딱한 네모가 아닌 유동하는 짙푸름으로

인지심리학에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개념이 있다. 신체로 받아들이는 감각이 대상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으로, 우리는 무거운 바인더에 담긴 문서의 내용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차가운 커피를 건네는 사람보다 따뜻한 커피를 건네는 사람을 더 온화한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매일 노트북, 스마트폰, 스케쥴러 위에 글자를 써내려가면서 나도 모르는  나의 일을 '지루하고 딱딱한 흑백의 네모' 그려놓고 있던  아니었을까. 일하기 위한 도구로  자체를 인식하는 본말전도의 인지상태가 일에 대한 내적동기를 떨어뜨리고 있던  아닐까. 어쩌면 그곳에 가서 가장 달라진  장소나 공간,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짙푸르고 역동적인, 살아있는 무엇'이라는, 일에 대한 나의 새로운 감각 관념이었을지 모른다.


시점(point of view) 변화와 거리 두기(distancing)의 효과도 물론 존재했다. 일과 계획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깊어졌는데, 그 사이에 나의 역량이나 능력이 갑자기 성장했을리는 없는 노릇. 두 손에 붙들고 들여다보던 일을 내려놓고 스무 걸음 물러나, 계단 스무 칸을 올라서 내려다 보았기에 가능했던 변화라고 생각한다.

네모난 건 일의 도구지 일이 아니다 - SONY A7M3



일하는 여행자가 '일'을 놓치지 않도록

사실 이런 환경에서 한껏 들뜬 기분을 매어두고 일해야 하는 여행자에게는, 아주 작은 불편도 당장의 일을 미룰 구실로 잡아들이기에 충분할 터였다. 배터리가 없네,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한데, 회의 자료를 출력할 수가 없어서···. 하지만 안정적인 네트워크와 넉넉한 콘센트, 무한잉크 프린터로 무장한 이 아름다운 오피스는 도무지 나에게 일을 놓쳐버릴 핑곗거리 따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의 기분 좋은 넛지를 주었다. 누구나 머물고 싶을만한 공간에, 이렇게까지 마련해 놓았는데, 여기서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일하지 않을래? 잠깐 쉴 때는 해변에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고, 그저 눈길만 들어도 파랑과 초록에 풍덩 빠져들 수 있는 바로 이곳에서. '자연과 문화로부터 영감을 받고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크리에이티브하게, 생산적으로 일 하는 노마드'—아마도 일로오션이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퀄리티는 바로 누구나 갖고 싶어할 이 정체성일 것이다.

이렇게 살고 싶다는 로망! 라이프스타일을 팝니다 - Pentax MX, Kodac Vision2


좀 더 긴 시간 업무에 집중해야 할 때에는 회의실과 커피머신이 있는 파도살롱에서 일했다. 그동안 방문했던 코워킹스페이스들이 효율적인 아웃풋을 위해 조성되었다면, 이곳은 효과적인 인풋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큐레이션 서가에서 별 생각 없이 집어든 책 한 권이 고민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바람에, 어디에서 일하는가의 문제가 단순히 편안한 책상과 의자에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그런 경험들로 인해.

온라인 컨퍼런스가 진행 중인 회의실과 햇볕이 잘 드는 서가 '파도의 시선' - iPhone 13 Pro


호텔 객실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필요에 딱 알맞았다. 하얗고 깨끗한 시트가 깔린, 따뜻한 물이 잘 나오는 방에서 매일 기분 좋게 일어나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일하러 온 바다에서 일 외의 기억을 만들어준 여행 프로그램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당일에는 그 시간에 더 할 수 있을 다른 업무들이 신경 쓰이기도 했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해서 살짝 빠질까 고민도 했지만, 그러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곳에서 나는 '일하는' 여행자이지만, 동시에 일하는 '여행자'이기도 했으므로.

300년 된 고택에서 이렇게나 근사한 오르간 연주를 듣게 될 줄이야 - SONY A7M3



세 가지 소득과 떠오르는 얼굴들

강릉에서 얻어 온 세 가지 소득 중 세 번째는 1년의 계획을 세운 일이다. 계획을 위한 계획을 내려놓고 세우는 이유부터 다시 시작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두 번째는 좋아서 시작한 일의 물성을 재발견한 일이다. 지치게 하는 건 일이 아니라 도구였다고, 목적과 수단, 내용과 형식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는 내가 어떤 환경에서 창의적이고 어떤 환경에서 생산적인지, 나를 어떻게 캘리브레이션하고 또 리셋해가며 사용할 것인지 '일하는 나 사용법'을 좀 더 잘 알게 된 일이다. 앞으로 좀 더 잘 사용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나, 잘 부탁합니다.

나의 합법적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 Minolta X700, Kodac Gold


조급했던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그제서야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내가 빠졌던 그 고민을 어디선가 비슷하게 겪어내고 있을 나의 동료들, 늘 그렇지만 유난히 쉽지 않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그 안부가 궁금해졌다. 각자의 고단한 현생 속을 버티며 걷고 있을 아끼는 얼굴들을 떠올린다. 초대해야겠다. 강릉으로!





✦ 한줄평 | "물리적인 장소가 주는 비물질적 경험, 라이프스타일을 판다는 건 이런 것"

✦ 추천합니다 | 새로운 프로젝트를 앞두고 아이디어가 필요한 1~4명 내외 소규모 팀


일로오션 | @illoocean

바다와 솔숲이 펼쳐진 오피스를 만끽하고 싶으신 당신, 매일 반복되는 재택근무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신 당신, 나의 일상과 업무의 공간적 분리가 필요하신 당신, 낯선 사람들과 편안한 분위기의 대화를 나누고 싶은 분들 까지! 일로오션에서 새로운 업무 방식인 워케이션(work+vacation)을 경험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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