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부분으로 잘라 세 번에 걸쳐, 구조적이고 입체적으로 읽어내기
〈스타트업 커뮤니티 웨이〉를 '스타트업에 뛰어든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며 지속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면, 서론의 서두에서부터 크게 당황하게 된다. 이 책은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사례를 전개하는 책이 아니라, 관찰을 바탕으로 가정한 세계에 명제를 세우고, 각 명제의 논리적 정합성을 입증과 반증을 통해 증명해나가는, 구조적이고 입체적으로 이론을 주장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부제를 붙인다면 "지난 20년 간 볼더라는 도시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해 온 과정을 관찰, 분석, 이론화함으로써 도출해낸 커뮤니티 성장의 자연법칙 증명, 그리고 실천적 적용을 위한 가이드"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
이토록 쉴틈 없이 이어지는 500페이지 분량의 논리적 증명을 한숨에 통독해 낼 만한 독서력은 나에게 없기에, 아래의 방법과 같이 전체를 세 부분으로 잘라, 세 번에 걸쳐 각각 관점과 속도, 깊이를 달리하면서 읽어냈다.
첫 번째, 서론을 정독하고, 전체를 주요 키워드 위주로 읽는다. → 주장(thesis)과 핵심 개념 파악
두 번째, 전체를 중심 문장을 찾아가며 읽고, 결론을 정독한다. → 이론의 구조와 세부 주장 파악
세 번째, 개인적 관점을 바탕으로 본론에서 필요한 부분을 뽑아 읽는다. → 실천적 적용 방안 획득
〈스타트업 커뮤니티 웨이〉는 커뮤니티를 기존의 관념인 계층적 네트워크가 아닌 '복잡적응계'라고 본다.
복잡적응계 또는 '복잡계'란 구성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로서, 고유한 특성을 갖고, 끊임 없이 변화하며, 그 변화를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가진다. 실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연결되는 일에는 타이밍과 같은 우연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관점은 현실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복잡계에서 모든 일은 설계나 계획이 아닌, 예측할 수 없는 창조의 과정 즉 '창발'로부터 시작되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먼저 주기(give first)'의 개념이다. 책에서는 즉각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상대에게 기여하는 행위가 상대로 하여금 되돌려주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켜 상호작용에 참여하도록 이끌고, 이러한 호혜적 관계가 행위자 간 또는 함께 소속된 구성원 사이에 신뢰를 만들어 커뮤니티의 근간을 이룬다고 보았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하나, 스타트업 커뮤니티는 계층제가 아니며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복잡적응계다.
둘, 행위자는 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일방적으로 예측, 통제하거나 복제할 수는 없다.
셋, 먼저주기(give first)를 통해 형성된 네트워크와 신뢰자본을 토대로 고유하게 형성된다.
커뮤니티가 복잡계라고 가정하면,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회적 믿음 혹은 기대 중 어떤 것들은 버려야 한다. 불확실과 우연을 강조하는 이 책의 관점은 사회과학보다는 자연과학의 영역에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복합계 vs. 복잡계
우리는 종종 사회를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커다란 시계로 비유한다. 비록 인간 개인의 시야가 좁아서 한 번에 조망할 수 없을 뿐,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법칙과 원리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스타트업 커뮤니티 웨이〉는 이러한 기대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통제욕구에서 발현된 허구의 믿음이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사회는 측정할 수 없는 변수들이 서로 예측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는 복잡계의 세계다.
게임이론 vs. 먼저주기
우리는 가진 것과 얻고자 하는 것을 비교해서 판단하는 것에 익숙하다. 같은 조건이라면 가능한 덜 주고 많이 얻는 것이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판단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가진 것을 먼저 내놓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심지어 나약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이 책에서는 반대로 먼저 주기를 행위에 대한 기대값이 높은 전략적 행위로 본다. 물론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확률적 근거가 있다고 판단한다.
정량적 수치 vs. 정성적 가치
통제와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할 때 깨어지는 또 하나의 믿음은 숫자에 대한 신화이다. 자원은 많을수록 좋다는 수량의 논리, 모든 변수는 추적할 수 있다는 측정의 논리가 이러한 잘못된 가정에 해당한다. 이 책은 구체적인 수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행위자와 커뮤니티로 하여금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증대하는 것보다 유리한 측정값을 우선시하도록 잘못 이끌어 결과적으로 커뮤니티의 발전 혹은 공진화를 저해한다고 본다.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나서, 마지막으로는 커뮤니티를 조성하기 위한 원칙과 가이드를 구한다는 실천적 적용의 관점으로 행위자의 역할과 동기, 지향해야 할 방향과 배제해야 할 행위 위주로 읽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장소애(topophilia)'라는 개념이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커뮤니티가 기반하고 있는 지역, 장소에 대해 갖는 애정이 그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에 기여하도록 이끄는 중요한 동기라고 본다. 또한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나 자부심이 그 장소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지역에 대한 장소애가 그 지역에 소속되거나 기여하고 싶은 동기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스타트업 커뮤니티 웨이〉에 수록된 사례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어난 일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제시하는 가정과 명제들이 스타트업 업계에만 적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자발적 커뮤니티라면 어디나 상호작용에 기반하고, 신뢰가 필수적일 것이다. 책 소개에서, '스타트업 커뮤니티 웨이는 어느 지역에서나 가능하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스타트업 커뮤니티 웨이는 어느 분야에서나 가능하다'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속한 지역, 성장하고 싶은 분야, 추구하고 있는 관심사 등 어떠한 목적과 방향성에 대해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호혜적인 상호작용 체계를 이루고, 그 안에서 함께 성장, 발전, '공진화'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원서로 읽기 시작했다면 본론 첫 장에서 포기했을 것 같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우리말로 읽어볼 수 있도록 옮겨주신 이정원 본부장님, 풀어주신 전정환 센터장님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 감사 드립니다. :)
저자 브래드 펠드, 이언 해서웨이 | 역자 이정원 | 제이커넥트 | 2021.12.13
"어느 지역이든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통해 창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실리콘밸리, 뉴욕, 시애틀, 테헤란로, 판교가 아닌 지방의 인구 10만 명 정도의 작은 지역에서도 스타트업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