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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Jan 09. 2024

삶과 죽음이라는 레이스



어젯밤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을 했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이것 이것 이것에 대해 글을 써야지. 그리고 그 내일 아침이 된 지금 이렇게 기억이 안 나서 헤맬 일인가…


한동안은 될 수 있는 대로 계획하고 구성하고 전략을 짜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얻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근 1-2년 조금 느슨하게 살아보았다. 예전의 나라면 내일 아침 쓸 글이 떠오른 순간 바로 글감을 적어놓았을 터인데 그냥 생각만 해놓고 잤구나. 사람이 이렇게 금세 변한다.


약 9개월 간의 휴직 후 퇴사를 한 지 1년 반정도가 흘렀다. 조직을 떠나온 지 대략 2년 반이다. 그러는 동안 꾸준히 혼자서 일을 꾸몄다. 2020년부터 매년 새로운 일을 한 가지씩 시작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삶이 너무 난잡하고 정리가 안된다는 느낌이 들어 2023년에는 진짜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살면서 가장 안 할 것 같은 일을 시작한 해가 되었다. 연초에 이런 계획을 세웠던 것도 아니고 확실한 목표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누구보다 열심이고 확고한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애처럼 보이게 됐다. 사실 스스로는 이 정도인 줄 몰랐는데 연말에 한 해를 정리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평가를 들어보니 참 인생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새삼스레 또 느낀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 하는 진부한 질문에 다시 빠지게 되었다. 최근에 가까운 지인이 가족상을 당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에 나의 연로하신 할머니도 갑자기 쓰러지셨다. 그보다 앞서 이웃나라에서는 대지의 신의 실수로 수백 명이 죽고 다치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모두 사람의 뜻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난 순간 죽음을 향해 달리는 경기를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결승선이 조금 앞에 있고 어떤 사람은 조금 뒤에 있다. 트랙의 환경도 누구에게는 조금 부드럽고 누구에게는 상대적으로 척박하다. 달리는 동안 누구는 좀 힘들고 박탈감이 들기도 하고 누구는 좀 쉽고 또 우월감이 들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결승선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똑같다.



삶이 너무 허망하다. 이 길의 끝은 결국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야 하는 삶이 너무 잔인하다. 하루하루 좀 더 잘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짓이 얼마나 바보 같은가. 그런 와중에 새끼들까지 낳아서 이 잔인한 레이스에 참여시키는 건 또 무엇을 위함인가.


이런 허무주의에 빠져들고 있는데 남편이 와서 한 마디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음만 기다리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길다. 그건 그렇다. 매년 새로운 일을 꾸미는 다이나믹한 삶을 살면서도 그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면 무료할 때가 꽤 있다. 무료함이 아니라 현타가 오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인생이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사실 다 안다. 삶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엔 그 삶이 참 길다는 것도. 그럼에도 매 순간 이렇게 불안하다. 이런 고뇌가 익숙해질 때쯤 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내 인생에서 죽음이라는 결승선이 언제 나타나는지 미리 알고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어 우리는 무작정 달린다. 아니 알고 있다면 오히려 더 잔인한 일이려나. 하지만 죽음을 이해하기엔 아직 어린 우리 아이도 언제 죽는지를 궁금해한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이 생이 언제 멈출지 알고 싶은 것은 본능인가 보다.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뜸과 동시에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대체로는 그날그날의 할 일에 대해 생각하곤 하는데 내가 지금 죽음이라는 주제에 심취해 있긴 하구나 싶다. 사실 조금 버겁다. 일상을 일상처럼 살아내기도 힘들고. 그렇지만 이 또한 곧 지나가겠지. 이런 시간도 필요하니까 견뎌야겠지. 어차피 이 긴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런 생각도 조금 해줘야 하는 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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