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너는 회사생활이 안 맞아. 너도 잘 알잖아?"
재작년 12월, 부산에 갔었다. 그리고 용궁사에 들렀다. 거기서 2019년에 소띠가 들삼재라는 걸 알았다. 지금도 충분히 힘든데 이보다 더 힘들 거라니. 보고 싶지 않은 영화의 예고편을 얼떨결에 미리 본 당황 또는 보고 싶었던 영화의 내용을 스포일링 당한 허무 같은 게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서 친구들하고 타로를 보러 갔었다. 누군가 사주나 타로는 결국 돈 주고 좋은 소리 듣는 거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돈을 내면서도 굳이 좋은 소리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 날, 부적을 쓰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젠장.
부적을 쓸 걸 그랬나. 다사다난한 2019년을 보내고 나니 정말 들삼재구나 싶다가 날삼재인 37살에는 또 어떠려나 싶어 막막했다. 결국 또 바다를 보러 갔고 용하다는 곳을 찾아 신점을 보러 갔다. 왜 항상 이런 패턴인 걸까.
"결국 너는 니 일을 하게 되어있어."
"아 그래요? 사업 같은 건가요? 전 그런 배짱은 없는데."
"그래서 아까 우리(그분은 할아버지 신을 모시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라고 이야기했다)가 그랬잖아. 너의 그런 우유부단함을 채워줄 동업자가 있어도 괜찮다고. 단호하게 맺고 끊어줄."
"아아...."
"어차피 넌 회사 생활이 안 맞아."
"네?"
나는 그동안 꽤나 회사라는 시스템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럭저럭 적응해왔다고 생각했다. 13년 차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이제 와서 난데없이 회사 생활이 맞지 않는다니. 그럼 10년이 넘는 지난 시간을 난 어떻게 버틴 거지? 그야말로 버텨온 걸까.
"그러니까 회사에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나중에 니 일 하기 위해서 배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이 사람은 이렇게 일하는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일하는구나 하면서."
그래, 이런 게 좋은 소리였다. 일확천금을 얻는 횡재수 같은 게 내 사주에 있다는 이야기보다(아 물론 그런 이야기는 없었지만 있었으면 더 좋을 뻔 하기는 했다) 당장 나의 2020년이 어떻게 될지,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에 대한 답 비슷한 걸 듣고 싶었다. 그래도 그렇지 회사 생활이 맞지 않는 편이니 너무 얽매이지 말라는 이야기는 상상조차 못 했다. 그동안 재미 삼아 또 위로 삼아 사주나 타로를 보러 다니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제가 글 쓰는 일을 하는데, 이게 잘 맞는 걸까요?"
"응. 잘 맞아. 원래 가르치는 사주라 그쪽으로 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글 쓰는 것도 괜찮아."
"아, 선생님은 부모님이 바라시기는 했는데 제가 싫어서."
"니가 왜 싫어하는 줄 아나? 겉으로는 남자같이 굴어도 속은 여리디 여려서 그렇다. 소심하고 남 앞에 나서는 거 잘 못 하니까."
언젠가 사회적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초중고 학창 시절 때만 해도 나는 낯선 사람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친해지면 또 곧잘 친해졌지만 낯가림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한, 하지만 그렇다고 사교적이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대학교라는 큰 세상에 나가면서 한번, 광고회사라는 다른 세상에 나가면서 또 한 번 성격이 달라졌다. 강해져야 하고 이겨내야 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말이다. 그 결과,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정곡을 찔린 것 같았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겉으로는 세상 상남자 이런 상남자가 없다 싶을 만큼 털털하게 굴고 쿨한 척 하지만 집에 와서 술 마시면서(이게 중요한 포인트다) 엉엉 울고 잠 못 이루면서 뒤척이기 일쑤다. 혹시 그런 게 얼굴에 쓰여있었나?
아무튼 글 쓰는 일이 괜찮다고 하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분은 덧붙였다. 어차피 너는 일로 성공할 테니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게 된다면 사업가 말고 월급 받는 평범하고 가정적인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하는 나를 이해하지도 못할 거고, 매번 기다리다 지쳐 결국 싸우고 이혼하게 될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지금 너는 연애나 결혼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지 않으냐고 했다. 네, 뭐 그... 그렇긴 하죠.
그렇다면 결혼은 일단 제쳐두고.
마흔이 넘으면 내 일을 하게 될 거라고 했는데, 난 도대체 뭘 하게 되는 걸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글 쓰는 게 전부인데.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인데 그게 정말 혼자서 무언가를 할 만큼 엄청난 '일'이 되는 걸까. 아이고 자신 없다라고 생각하다 보니, 아 이래서 결국 나는 동업자가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소심해서 나서지 못하는 나'를 밖으로 꺼내 줄 동업자 말이다.
아니 그런데 잠깐. 그저 신점일 뿐인데 마치 미래를 내다보고 온 것처럼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가. 올해는커녕 당장 몇 시간 뒤에 있을 회의가 걱정이고 이번 주에 있을 제안이 걱정이라 이렇게 제대로 못 자고 결국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아놓고선.
마흔까지 4년. 회사가 나한테 맞든 안 맞든 일단은 살고 볼 일이다. 그래도 10년 넘게 직장인이었는데, 그 에너지로 4년쯤은 거뜬히 살아내겠지. 그때 이 글을 보면 난 무슨 생각을 할까. 여전히 다음 회의와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걱정을 끌어안고 있을까. 아니면 정말 이름을 내 건 일을 하느라 또 이렇게 앉아있을까. 이러나저러나 여전히 잠 못 이루고 스트레스받을 건 뻔하다. 내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