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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red Jun 11. 2023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것

"자기는 나중에 아이 낳고 싶어?"



고등학생 혹은 중학생 때쯤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최소 20년은 더 된 이야기다. 엄마에게 나중에 나는 결혼하면 아이를 넷을 낳을 거라고 했다. 유독 아이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이모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다. 엄마의 자매들 중 가장 가까이 지냈던 포항 이모는 딸 둘, 아들 둘의 자녀가 있었다. 그리고 남매 네 명이서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는 모습이 꽤나 보기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찌나 막연한 생각이었는지. 그때는 경제적인 건 생각조차 못했다. 아이 하나 낳아 키우기도 어렵다고 하는 시대에 아이 넷이라니.


그러다 어느 날은 또 황당하게 엄마에게 입양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드라마를 보던 중이었나. 아마 드라마 내용 중에 입양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던 것 같다. 그러자 엄마는 "니 애나 낳아서 잘 키워. 남의 애 키우는 게 쉬운 줄 알아?"라고 핀잔을 줬다. 순간, 엄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엄마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안다.


시간이 지나 나도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게 되고 경제에 눈을 뜨게 되자 아이 넷은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시간이 더 지난 지금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만으로 출산에 대해 망설이는 건 아니다.


작년 속초 한 리조트에서 같이 TV를 보던 중이었다. 드라마를 보던 중이었는지 예능을 보던 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뜬금없이 그가 물었다. "자기는 나중에 아이 낳고 싶어?" 종갓집에서 태어나 누나 넷을 두고 막내로 태어난 그에게 선택권이란 없다고 믿었다. 당연히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고, 특히나 그 아이가 '아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갑자기 나에게 아이를 낳고 싶냐는 질문을 하다니. 게다가 그 질문에는 다분히 본인의 답변 또한 포함된 상태였다.


"글쎄, 어릴 땐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르겠어. 자기는?"

"나는 안 낳고 싶어."


집에서 난리 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예전부터 자기는 집에다 선전포고를 했다고 했다. 조카들을 그렇게 예뻐하고 그토록 잘 놀아주는 사람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정말, 의외였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내가 그와 결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처럼 아이를 낳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쪽이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하는 상황 속에서 나도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어쩌면 조금은, 스스로 타협을 했던 것 같다. 그래, 어차피 나는 커리어도 중요하고 아이를 낳으면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솔직히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도 하잖아? 라며 지난 일들까지 끄집어와서 명분을 만들었다. 명절에 친척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 가면 나한테 놀아달라며 달려드는 오촌 조카들에게 나는 매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기도 어렵고 귀찮기도 했고 뭘 하자는 건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러니 이런 선택이, 당연할 수 있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런데 작년 이맘때, 첫 조카를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이토록 놀라운 존재라니. 뭘 해도 귀엽고 칭찬해주고 싶고 계속 안고 싶고 만지고 싶고 보고 싶은 존재라니. 조카는 정말이지 신기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조카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내가 아이를 좋아할 수도 있겠구나.


속초에서 낯선 질문을 들은 이후, 어느 날 술에 취한 그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아이 낳을까?"

"아이 안 낳고 싶다며?"

"자기가 좋아하잖아."


그는 알았나 보다. 내가 아이를 원할 거라는 걸. 하긴 툭하면 조카 사진을 보며 행복해하는 내 얼굴을 봤을 테니까. 그런데도 나는 스스로 내 마음을 속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를 낳는 문제는 나에게 어렵다. 타협이라고, 핑계라고 했지만 정말 나에게 커리어는 중요하다. 당장 올케부터 해서 올해 말에 출산 예정인 팀원을 봐도 그렇다.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 일을 한다는 건 수많은 고민과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내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올해 봄에 팀원 중 한 명이 나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덜컥 그녀의 공백과 앞으로 팀 운영에 대해 먼저 생각했던 나였다. 물론 축하할 일이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가 만약 팀원이었고 임신했다고 알렸다면 아마 나의 팀장도 나처럼 생각하겠지?', '내가 만약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 이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까? 아니, 더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론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였다.


젠가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지금 당장 결혼해서 빨리 아이를 낳아도, 환갑 때 아이가 스무 살이라고 했다. 요즘은 옛날 같지 않아서 '대학까지만 책임지면 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들 했다. 적어도 첫 회사에 취업할 때까지, 그러니까 적어도 스물다섯까지는, 어쩌면 서른까지는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가만 보자, 그러니까 적어도 내가 일흔까지는 경제적으로 괜찮은 상황이어야 한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내 선택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그는 이제 없고, 나는 진짜 낼모레면 마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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