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월요일마다 방과 후 한 시간 반씩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온다. 작년 5월경 그러니까 4학년 1학기, 학교 오케스트라 1기 타악기 부문에 지원해서 현재까지 학교 오케스트라 타악기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줄곧 월요일 오케스트라 시간만 기다릴 만큼 아이의 음악 세포가 활개를 치고 있다.
6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 소리에 눈을 떠 눈만 뜨면 피아노 앞에 앉았던 아이였고, 어린 시절 피아노가 자신의 유일한 장난감이자 가장 편안한 친구 같았던 아이였으며, 콩나물 몇 가닥 그려져 있는 악보에 시선을 맞추고 그 콩나물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소리를 맞추며 놀던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피아노를 손에서 놓고 탁구채를 잡았다. 아이의 흥미와 재미가 지속되려면 그 흥미와 재미있는 요소에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나는 몰랐다. 어려워진 악보, 3년간 똑같은 환경, 들썩이는 엉덩이, 그리고 성취 목표의 부재. 더 이상 아이를 음악으로 끌어갈 수 없었다. 아이의 삶에서 음악이 이러이러한 역할을 했으면 하던 나의 초심도 잃어가고 있었다. 나의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위안을 받았던 그때를 생각하며 피아노를 가까이하게 한 건데... 어린 시절의 나처럼 피아노 선율에 쏙 빠져 음악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주고 싶었던 건데...
학교 오케스트라 활동을 한 지 어느덧 곧 만 2년. 내년이면 아이는 6학년 최고참 원년 멤버가 되어 활동하게 된다. 오케스트라에 지원할 당시 오디션을 볼 수 있었던 악기는 타악기뿐이었다. 악보를 좀 볼 줄 알고, 리듬감만 좀 있다면 합격할 수 있었다. 나름의 경쟁률을 뚫고 1기 타악기 단원 3명이 뽑혔고, 지금 현재는 2명이 더 늘어 총 5명이 활동 중이다. 마림바가 들어왔고, 글로켄슈필이라는 커다란 실로폰이 들어왔다. 아이는 현재 주로 마림바를 담당하고 있고, 양손에 마림바 채를 들고 통통 튀는 타격감으로 곡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엄마, 타악기가 박자를 잡아주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에서 엄청 중요해. 선생님 지휘를 꼭 보면서 맞춰야 박자를 유지할 수 있어."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등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단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이는 자신이 연주하는 작은북 혹은 큰 북으로 박자를 맞춘다. 지휘자 선생님의 손에 시선을 고정시켜 곡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도록 박자를 유지하려 애쓴다. 심벌즈 혹은 탬버린을 맡은 곡을 연주할 때는 곡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필히 강약 조절을 한다. 악상 기호 포르테가 찍혀 있는 곳은 강하게 타격감을 주고 피아니시모에서는 약한 타격감으로 소리를 조절한다. 가끔은 자신도 모르게 타악기와 한 몸이 되어 주어진 곡의 느낌을 몸으로 표현할 때도 있다. 손가락 관절 하나하나를 이동하며 섬세하게 움직여 소리 내는 현악기나 관악기, 건반 악기와 다르게 뭉툭하게 두 주먹을 쥐고 연주하는 타악기를 아이는 자신의 몸으로 곡을 표현할 때도 많다.
등굣길 음악회, 송년음악회, 10월의 어느 가을 음악회 등 학교 오케스트라 행사들이 많아지면서 아이는 더욱더 신나게 음악을 즐기고 있다. 지휘자 선생님께 함께 연주했으면 하는 오케스트라 음악을 추천하기도 하고, 선생님의 편곡에 대해서 조언을 드리기도 한다. 집에서 휴식 중에도 전문 오케스트라 연주 영상을 찾아서 들으며 연주자들의 연주를 눈으로 귀로 익히고 있다. '샤브레 댄스'라는 곡에서 마림바를 맡은 아이는 전문 마림바 연주가의 연주를 보고 또 보면서 마림바 연주 독학 중이다.
얼마 전 지휘 선생님께서 메시지 하나를 보내셨다.
"땡땡이 없으면 큰일 나요~~^^;;"
음악회 날짜가 혹여나 가족 여행 날짜와 겹치게 될까 봐 걱정하는 아이 때문에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날짜가 겹치지 않아 다행이란 말을 하시면서 덧붙인 말씀이다. 감사하고 감동적인 메시지에 마음이 흔들려 잠시 머뭇거렸던 것 같다.
아이는 스스로 흥미와 재미를 찾아가고 있다. 흥미와 재미를 발견한 그것을 지속하게 하기 위해서는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강약 조절의 주체는 아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아이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것에 흥미와 재미를 느끼고 자신이 맡은 것에 부단히 노력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을 즐기고 있다. 혼자서 즐기는 음악에서 더 나아가 함께 만들어가고, 함께 들려주는 음악의 아름움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아름다움이라면, 이런 경험이라면 아이의 흥미와 재미가 오랫동안 유지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아이의 의지고 아이의 선택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음악에 흠뻑 젖어있는 아이의 지금 이 순간을 가슴에 담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응원한다, 아들아!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