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자국 앞 성공의 문
“에잇! 이번에도 떨어지는 거 아냐? 휴.. 걍 말까?”
5학년 2학기 반장선거를 앞둔 며칠 전, 아이는 푸념 섞인 말을 내뱉었다.
아이는 3학년 때부터 줄곧 학급임원선거에 출마했었고, 단 한 번도 그 어떤 임원도 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횟수로만 5번 고배를 마셨고, 그 뜻은 5번 도전에 족족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첫 실패의 경험은 그리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미완성된 채 도전했던, 아니 선거 준비랄까 그 어떤 마음가짐도 없이 즉석에서 한마디 휘리릭 던지고 내려온 첫 선거의 경험은 단연 아이에게 실패의 경험으로 이어졌었다.
그때 반장으로 뽑힌 아이 반 친구는 자신의 테니스 운동화 한 짝을 가지고 와서,
"이 운동화처럼 우리 반을 위해 한 몸 받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다음 해로 기억하는데, 내 아이는 여전히 천하태평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선거에 출마했다. 선거일 아침 학교 가기 전 부랴부랴 한 마디 생각해서 등교했던 기억이 있다. 이 아이에게 정녕 학급 임원이 되고픈 열망이 있는지 없는지… 아이의 태평한 모습에 나는 신기해하면서도 반복되는 실패의 경험이 혹여나 아이를 좌절하게 할까 두렵기도 했다.
그 해 반장이 된 친구는 “피자를 쏘겠다"라는 공약 하나로 당선이 되었단다.
아이는 그런 어이없는 공약에 넘어가는 반 친구들이 야속하다며 혀를 끌끌 찼었다. 그럼에도 다음에 또 출마하겠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하는 아이가 나는 신기하면서도 내심 다행이라 여겼다. 실패를 실패로 읽지 않고 재도전을 위한 하나의 쓰라린 과정으로 여기는 듯 보였다.
안타깝게도 올해 5학년 1학기 또한 다부지게 준비한 여자 친구에게 반장 자리를 내어주고, 또 듬직하게 보이는 남자친구에게 부반장 자리도 내어주었다.
5번의 고배, 그리고 6번째 도전…
또다시 선거철은 돌아왔고, 아이는 관성처럼 이번에도 학급 임원 출마 의사를 비췄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운이 아이의 낯빛에 슬쩍 비춰진 듯 보였다. 잠시 후 툭 내뱉는 아이의 말이 내 귀를 강타했다.
“에잇! 이번에도 떨어지는 거 아냐? 휴.. 걍 말까?”
가슴이 철렁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남편은 무심하게 세상의 진리처럼 보이는 문장 하나를 아이에게 툭 던진다.
“아들아, 사람은 말이야. 대부분 성공 직전에 포기해 버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되는데 그걸 모르고 포기하지…”
아빠가 툭 던진 세상의 진리 하나가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아이는 선거가 있는 그날 친구들 앞에서 공약 세 가지를 메모한 카드를 손에 들고 주먹을 쥐며 힘주어 외쳤다고 한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
그날 하교해서 돌아오는 아이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기쁜 기색을 애써 감추려 하지만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나는 아이의 말을 더 듣지도 않고 아이를 와락 안아버렸다. 그리고 아이가 반 친구들에게 전한 당선 소감에서 나는 이 기쁨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제가 3학년 때부터 계속 출마를 했었는데요, 한 번도 임원이 되지 못하고 계속 떨어졌었습니다.
드디어 오늘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평소보다 더욱 밝은 얼굴로 등교 준비를 했다. 앞으로 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읊으며 다부지게 마음을 먹는 듯 보이기도 했고.
이전 5번의 실패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공이 그리 값지진 않았을 것이다. 실패로 마무리된 도전들이 하나 둘 쌓여 다음 도전을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되고 그러면서 아이에게는 그만큼의 인생 경험치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이다.
아빠가 전한 진리 한 조각이 이번 성공의 경험으로 아이는 더 확고하게 느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성공의 문’ 바로 직전에 자신이 먼저 포기해 버렸다면, 한 발만 더 디디면 될 걸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면, 이전 실패의 경험들은 아이에게 패배감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마지막 한 발을 내디딘 아이의 용기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가 당분간 행복감에 젖어 있게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