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가까워지기 위해 마주한 혹독한 현실에 대하여
드디어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날이 왔다.
민박집을 나온 뒤 아무것도 없는 밴에서 지낼 당시에는 스스로 처한 현실이 너무 비참하고 부끄러워서 감히 공유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진짜로 캠퍼밴을 완성해서 떠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기에 많은 망설임으로 아끼고 또 아끼던 이야기다.
하지만 주차장 위에서 보냈던 내 스물일곱의 봄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장 많은 시간이였으며, 오늘 같은 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던 시간이기도 했다.
민박집을 나와 우리가 간 곳은 멋진 들판이나 호텔이 아닌, 사무실 뒷켠에 있는 주차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러 왔다갔다 하는 곳이었고, 바로 옆에는 기찻길이 있어 시끄럽고 복잡한 곳이었다. 우린 창문만 뚫려있는 밴에 새로운 시작을 맡겼다. 우선 잠을 잘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 IKEA에 가서 소파 겸 더블베드로 변신할 수 있는 침대를 구입했고, 암막커튼을 사서 프라이버시를 지켰다. 암막커튼을 기준으로 앞좌석엔 우리를 지키듯 큼지막한 캐리어가 자리잡고 있었고, 암막커튼 뒤로는 침대만 덜렁 있었지만 우리의 작고 아늑한 생활 공간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침대와 커튼만으로도 충분히 밴 라이프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엔 우리가 원하는 벽을 만들고, 적당한 사이즈의 키친을 만들어야 했으며, 언제든 갈 수 있는 화장실도 만들어야 했다. 우리의 열정으론 일주일만에 뚝딱 만들어서 떠날 수 있을것 같았지만 사실은 기약없는 시간의 시작이었다.
화물밴에서 보낸 첫 날은 그저 소풍가는 기분이었다. 이곳이 주차장이라는 사실보단 낯선 이들의 땅에 우리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생각에 그저 행복했던 것이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화장실 때문에 사무실에 딸린 화장실을 사용했고, 샤워는 헬스장 샤워실을 이용했다. 아점은 마트에서 산 샐러드로 대신했고, 저녁은 돈을 아껴가며 외식을 했다. 불편함 보단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경험이라는 생각에 아주 흡족한 고생이라고 느껴졌다. 이렇게 하나씩 준비해가며 언젠가 떠난다면 모든 것이 다 보상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하루하루 지냈다.
그렇게 일주일이 넘었다. 오빠가 신문사에 출근을 하면 나는 밴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스타벅스에 가서 와이파이를 연결해 이것저것 할 일들을 했는데 그러던 어느날 통장 잔고를 확인해보니 더 이상 스타벅스를 가는 사치는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더라도 꾸준히 들어오는 월급쟁이의 삶은 끝난 것이다.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주차장 위에서 지내는 나는, 사실 그냥 집 없는 백수였던 것이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참 잔인하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결국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앞으로의 여정을 서포트 받거나 알릴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여행 플랫폼과 밴 라이프를 하고 있는 해외 여행자들을 찾아보며 여행 외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보고,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작은 수입이라도 낼 수 있는 일들을 알아봤다. 딱히 그렇다 할 방법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며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돈을 아끼기 위해 차에서만 지내다 보니 기꺼이 버텨내야 할 고생이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일들이 불편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사무실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눈치보이기 시작했고,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 마음대로 인터넷을 쓸 수 없어 할 수 있는 일들이 매우 적었다. 샤워하는 텀이 길어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고, 매번 아끼고 살아야 하는 삶에 지치기 시작했다. 있는 돈을 아끼며 사는 것과 없기 때문에 악착같이 아끼며 사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밴을 공사하는 기간은 매번 연장됐고, 그럴수록 쓸데없이 돈과 시간이 낭비되는 것 같았다.
또 다른 이들의 염려를 모른척 하고 스스로를 믿은 이 선택이 혹여나 잘못된 것은 아닌지, 출발은 커녕 마무리도 짓지 못하고 끝나면 절망적인 내 마음을 어떻게 추스려야 할지 역시 큰 걱정이었다. 기대만 있었던 여정은 아니었지만 작게라도 가지고 있던 희망이 사라진다면 앞으로 나는 꿈을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중대한 문제였다. 상황에 좌절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포기하고 한국에 가는 것도 방법이라는 속상한 생각속에 파묻혀 많이 울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당시의 상황을 말 할 수 없었다. 누가 됐든 다 말렸을테니 말이다. 결국 당장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이 더 컸던 나는, 오빠와 주차장을 떠날 날짜를 정했다. 이 날은 완성이 됐든 안 됐든 무조건 떠나야 한다고.
물론 돌이켜 보면 소소하게 행복했던 순간들도 있다. 아마 그런 순간들이 있어 버텨냈을 거다. 오랜만에 샤워를 마치고 밴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노을진 하늘이 큰 위로가 되어주었고, 오빠와 나누었던 서로의 희망 때문에 끝은 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났다. 이 시간들을 추억하며 쓰게 될 그 언젠가가 있을거란 생각으로 버텨낸 내 자신에게 고마운 오늘이다.
2년 뒤 나는 긴 여정 끝에 다시 영국에 있다. 오늘의 이야기까지 오려면 앞으로 한참은 걸리겠지만 가장 버티기 힘들었고, 가장 글로 쓰고싶었던 시간을 적어냈으니 이제부턴 조금 수월하게 글을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보다 한참 앞서 우리의 이야기를 적어가고 있는 오빠의 브런치도 있다. 같은 상황을 겪었지만 오빠의 글에 담긴 내 모습과 우리의 상황을 보면 같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 오빠의 브런치 https://brunch.co.kr/@deanshimwt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