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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협 Jan 17. 2023

異人   (이인)

-6-

2인승 골프카트

저녁 식사시간에 우주는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방안에서는 쉴 새 없이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마치 비명처럼 현주의 귀를 파고들었다.

동인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현주는 그의 태도가 분명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칼은 칼집 안에 있을 때 더 힘이 있는 것일까?

현주는 긴장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누구에게도 미안하진 않았다.


그 순간, 동인은 상호아빠와 같이 골프카트를 탄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2인승 골프카트를 하루 종일 같이 타다 보면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닌 이상 대화 거리가 곳 바닥이 난다. 

할 말이 바닥이 나면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하게 된다.


상호아빠가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동인은 집 짓는 공사 때문이라고 에둘러 변명했다.

하지만 그의 본심은 그가 샷을 할 때마다 흘러나왔다.

계속 헤매던 동인은 아홉 번째 홀에서 결국 포기하고 골프장을 떠나 버렸다.    

“라운딩을 끝냈어야 하는 건데.. “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동인은 후회했다.


현주와 식탁에서 마주 앉은 동인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에도 현주는 준기생각만 했다.

이상한 긴장감이 정신병자의 뇌수같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 집.. 한번 보러 갈까?” 


어두운 밤, 헤드라이트 불빛이 공사가 한창인 집을 비추고 있다.  

“공사가 너무 늦는 것 같은데.. 내가 딴 사람 좀 찾아볼까?”

현주는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기에 대꾸하지 않았다.


침묵을 뚫고 동인의 손이 현주의 젖가슴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이 닿는 모든 곳이 말라붙어 서걱거렸다.

현주는 그대로 말라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그 순간 현주는 준기의 몸이 절실했다. 

현주는 동인의 팔목을 잡았다.

그러자 동인이 현주의 머리체를 움켜잡고 현주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이.. 씨발년아..”


동인은 차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차 앞에 서서 현주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매서웠다.


오럴섹스 

기계들이 돌아가는 공장 한가운데서 동인은 시간이 멈춘 듯 서 있었다.


점심시간 카페테리아에서 동인은 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스타벅스에 있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엔 어떤 음악소리도 카페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동인은 카페테리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고 숙덕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한 흑인 직원에게 차를 빌렸다.


동인이 공사 현장에 갔을 때 인부 몇 명만이 지루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준기를 찾는 동인에게 한 인부가 갈렙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동인은 갈렙에게 자신이 동인의 친구라 했고 그를 급히 만나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갈렙은 동인에게 자신의 집을 알려 주었다.


갈렙의 집 앞에 차를 세운 동인은 현주의 차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동안 세차를 하지 않은 듯 차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동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방을 지나갈 때 갈렙의 엄마가 요리를 하고 있었지만 잘 듣지 못하는 그녀는 동인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동인은 조심스럽게 현주의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갔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따라 다락으로 올라갔지만 현주와 준기는 듣지 못했다.  


다락방에서 동인이 처음으로 본 것은 다리를 벌리고 누운 현주였다.

다리사이로 보이는 현주의 것이 너무도 낯설게 보였다.

동인은 아찔했다.


창녀

동인은 한참을 차를 몰았다. 

갈 길을 잃은 차는 직진만 했고 한적한 막다른 길 어디쯤에서 멈춰 섰다.

동인의 차가 멈춰 선 곳은 할렘가였다. 

한쪽으론 웃통을 벗어젖힌 흑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고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자들이 서 있었다.

동인의 차를 보자 두꺼운 화장의 한 흑인 여자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다가왔다.

그녀의 미소가 느끼했다.

"What do you want? sucking or fucking?"


더미 2

인간은 죽음의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모든 감각들을 곤두세운다. 

면도날 같은 감각들로 인해 시간은 아주 잔인하게 천천히 지나간다.


빗길에 미끄러진 동인의 차가 360도 회전을 하며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차 안에는 현주와 우영이 타고 있었다.

동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차 내부가 충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편을 날리며 부스러지는 순간이..

보닛아래 차 내장들이 바스러지면서 뿜어내는 하얀 연기가 에어벤트를 타고 실내로 퍼져 들어오는 순간이..

전면과 측면에 있던 에어백들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이 아주 천천히 선명하게 보였다.

현주의 몸이 앞으로 심하게 튕겨졌다 비틀렸고 뒷자리에 앉아있던 우영이는 벨트를 하지 않아 목이 꺾인 채 앞으로 튕겨 나왔다.

동인은 이 모든 것을 인지할 뿐 반응할 수는 없었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박고 튀어나온 동인의 차는 다시 뒤따라오던 승합차에 받히면서 도로 밖으로 튕겨져 나갔고 그때쯤 동인은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할 때 딸 우영이는 죽어있었다. 


모니터에는 실험용 차가 벽을 들이받는 순간이 슬로모션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육중한 더미가 차 안에서 무기력하게 출렁거리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보였다. 

그 모습은 갈렙의 다락방에서 본 현주와 동인의 행위와 겹쳐 보였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동인의 시선이 흔들렸다.

무기력하게 출렁대는 더미의 모습이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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