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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협 Jan 18. 2023

異人   (이인)

-7-

출장 

며칠 후 동인은 디트로이트로 출장을 갔다.

현주는 동인을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동인은 당장이라도 차문을 열고 뛰쳐나가 러닝머신벨트 같은 저 아스팔트에 머리를 갈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출장 첫날밤, 동인은 호텔을 나왔다.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낮에 보아두었던 총포사에 들어갔다.

총기를 파는 가계는 제법 규모가 컸다.

가계 안에는 오로지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적인 수많은 종류의 총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너스레를 떨던 점원은 그에게 권총하나를 보여주었다.

동인은 감시 카메라들을 둘러보았다. 

묵직한 피스톨을 쥔 동인은 판결과 단죄의 권한이 그의 손안에 있는 듯했다.

점원은 그에게 총알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출장 둘째 날, 충돌실험을 위한 차들이 들어왔다. 

어차피 이틀 후면 부서질 차들은 기본적인 장치들만 달려있었다.

차에는 물론 번호판 따위는 붙어있지 않았다.

그날 밤 동인은 호텔주차장에 세워진 차에서 일리노이 번호판을 떼어냈다.  


셋째 날, 동인은 몸이 좋지 않다고 연구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동인은 실험용 차에 훔쳐놓은 번호판을 붙였다.

그리고 앨라배마로 출발했다.  

중간중간 동인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허름한 주유소에서 현금으로 기름을 넣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그는 샷건을 보여주며 느끼하게 웃던 부사장을 생각했다.

“앨라배마는 땅이 넓어서 자기 집은 자기가 지켜야 돼요” 


고향

아침부터 현주는 갈렙의 다락방에 있었다.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 그녀는 우주를 학교에 데려다 주곤 바로 다락방으로 찾아왔다.

한바탕 섹스를 하고 난 현주가 창밖을 보며 ‘이런 날 비행을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소를 짓던 준기는 자기도 그러고 싶은데 이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날 시청직원이 비행기를 가지고 가버렸다고.. 공사를 계속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현주는 미안했다.

하지만 준기는 상관없다고 했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둘은 다시 키스를 했다. 

땀이 송골송골 올라오는 서로의 피부를 탐닉했다.

현주의 냄새를 빨아들이던 준기가 말했다.

“너의 냄새, 너의 살 전부를 소유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가 활짝 열린 현주 안으로 밀고 들어가며 말했다.

“네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싶어.”

“네 속에 내 고향이 있는 것 같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죽길 원한다.

그래서 세상에 남겨질 뼈와 살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썩어지고 사라지길 바란다.

준기에게 현주는 그가 돌아갈 고향 같고 그가 묻힐 무덤 같았다.

귀소본능과 번식의 의지, 충족될 수 없는 욕망과 솟구치는 죄성이 준기의 몸속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 아득한 쾌락을 준기는 사랑이라 믿었다.

“같이 가야 할 데가 있어.”

현주를 바라보던 준기가 말했다.


새집

다음날 준기는 현주를 데리고 아침 일찍 공사 현장으로 갔다.

차 안에서 준기는 현주를 놀라게 해 줄 기대에 상기되어 있었다.

새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늦은 아침안개가 잔뜩 끼여 있었다.


단층으로 지어진 새집의 벽은 옅은 회색으로 되어있었고 그 위로 빨간 지붕을 얻어져 있었다.

그러고 현관 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서는 매화나무 묘목들이 심어져 있었다.

광활한 앨라배마의 벌판에 나지막이 지어진 새집을 낮게 깔린 안개가 감싸고 있었다.

“원하는 곳 어디든 네가 원하는 건 다 지어줄게.”

준기의 두 눈 가득히 진심이 묻어 나왔다.


그때 현주는 동인과의 관계가 시작된 이후로는 집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그 집이 낯설었다.

“난 이제 너 없인 못 살 것 같다.”  

“네가 원하는 거 뭐든 돼 줄게.” 


나비

현주는 준기의 눈을 보면서 5살 때 선물 받았던 강아지를 떠올렸다.

한 달 남짓한 코카스파니엘은 큰 눈에 탐스러운 갈색 털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현주는 이 강아지를 나비라고 불렀다.

인형 같은 나비가 현주는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매일 몇 시간씩 끼어않고 빗질을 해 주었다. 

얼마 후, 어린 나비는 현주의 빗질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나비는 눈물 가득한 큰 눈으로 현주를 바라보며 숨을 헐떡이다 죽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랑은 치명적이다.

현주는 지금 준기의 눈이 나비의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현주는 혼란스러웠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돌아서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준기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을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그녀를 따라갔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현주는 마치 도망가듯 말없이 길을 따라 걸었다.

결국 준기는 그녀를 붙잡아 세웠다.

“내가 너한테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현주는 그 외에 마땅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니?” 

“내가 널 위해 도대체 뭘 해줄까?”

이때 현주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준기는 화가 났다.

“같이 살고 싶다는 말이.. 네가 나한테 미안해야 할 일이니?” 

준기는 간절했고 현주는 그 간절함을 피하고 싶었다.

현주의 전화기는 계속해서 울렸다.


어이없다

우주가 학교에서 집단으로 린치를 당했다는 전화였다.

현주는 우주의 학교로 달려갔다.

도로를 달리면서 현주는 준기에게 내뱉은 거친 말들을 곱씹었다.


교장실에 앉아있는 우주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엉망으로 엉크러져 있고 음료수를 뒤집어쓴 듯 옷은 더럽혀져 있었다. 

교장은 우주가 자꾸 한국말로 떠들며 시비를 걸어 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사건의 발단은 수업 중에 우주가 한국말로 소리를 지르면서부터라고 했다. 

아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영어를 쓰지 않아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그랬다.

자꾸 한국말로 큰 소리로 뭐라고 떠들어 대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주는 우주를 피의자로 단정 짓고 내뱉는 그의 말에 기분이 엿 같았다.

현주는 우주를 그곳에 두고 싶지 않아 들려오는 교장의 말을 무시하고 아이의 손목을 잡고 학교를 나와 버렸다.


“교실에서.. 뭐라고 소리친 거니?”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현주가 물었다.

“씨발 존나 어이없네.”

“왜 수업시간에 그런 말을 했어?”

전화기만 들여다보던 우주가 대답했다.

“내 상황이.. 존나 어이없어서..”

“.. 엄만 바람이라도 피잖아.” 


우주는 현주가 짓는 집에 가보자고 했다. 

현주는 새로 지어진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저 집이야?”

우주와 현주는 차에서 내렸다. 

허허벌판 위 세워진 집이 거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꼭 귀신이 사는 집 같네..”

우주가 말했다.

둘은 나란히 서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눌려있는 집을 바라보았다. 

현주가 우주의 어깨에 손을 얻었고 우주는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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