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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협 Jan 19. 2023

異人   (이인)

-마지막 회-

목격자

현주와 우주가 집으로 돌아왔다.

우주는 늘 버릇처럼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주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동인이 침대에 앉아있었다.

현주가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동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우영이가 죽은 지 한 달쯤 지나서 꿈에 나타났어.. 걔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빠 잘못이 아니라고..”

“그런데 니 눈빛이 자꾸 날 원망하고 있어.” 

“우영이가 아니라는 데 도대체 네가 뭔데? “

현주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동인은 그녀를 거칠게 침대로 밀어 눕히고는 올라탔다.

잠깐을 현주의 가슴에 이마를 대고 있던 동인은 가지고 온 권총을 꺼내 현주의 입에 밀어 넣었다. 

“꼭 이렇게 까지 나를 벌을 줘야 되니?”

현주는 목구멍까지 들어온 권총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때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우주와 동인의 시선이 마주쳤다.

우주는 그대로 얼어붙어 떨고 있었다.

동인이 힘을 빠진 틈을 타 현주가 그를 밀어내고 바닥에 엎드린 채 캑캑거렸다.

동인이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는 집밖으로 끌고 나갔다.

현주를 끌고 나가면서 동인은 우주에게 말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야. 집 잘 보고 있어.”

엄마가 끌려 나가는 동안 우주는 극심한 공포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살인

동인은 현주를 싣고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가 멈춰 선 곳은 준기가 지은 새집이었다.

동인은 현관 앞에 심어놓은 묘목 몇 개를 깔아뭉개며 차를 세웠다.

동인이 현주를 차에서 끌어내어 거칠게 끌어내렸다.

그의 손에는 아직 권총이 들려있었으며 그 총은 위태롭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용서가 안 된다면 나랑 같이 여기서 죽어버리자.”

동인의 눈동자에 시뻘건 핏발이 올라왔다.

“우린 어차피 그날 그 차 안에서 다 죽었어야 될 사람들이었잖아.”

“아니.. 우린 이미 죽은 것들이야.”

현주가 말했다. “우리의 진짜 죄가 뭔지 알아? 살아있는 척했다는 거야.”


절망과 분노가 교차하는 동인이 그녀에게 총을 겨눴다.

현주는 모든 것을 체념한 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동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고 그에게 나눠줄 속죄가 남아있기를 바랐다.

흔들리던 동인의 총구가 가라앉더니 순식간에 그의 관자놀이로 향했다.

순간 현주의 눈이 커졌다.

“현주!”

준기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그가 다가왔다. 


그날따라 준기는 현주가 너무 그리웠다.

그래서 빈속에 마신 술기운을 달래려 현주의 새집으로 갔다.

그곳에 가면 현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동인은 집 앞에 서있는 차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기대에 차를 멈춰 세웠다.    

현주는 헤드라이트 불빛 앞에 위태롭게 서 있었고 준기는 불빛에 비껴서 서 있는 동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순간 어둠 속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왼쪽이마가 박살이 난 준기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백색소음

산소 호흡기를 차고 연명하던 우영이는 한 달을 체 못 버텼고 현주가 간신히 걸어 다닐 수 있을 때쯤 죽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현주는 심한 허리통증 때문에 오전에 맞은 모르핀으로 몽롱한 상태였다.

마지막 인사를 위해 영안실로 갔을 때 우영이는 철재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벽에 붙은 에어컨에서 차가운 바람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현주의 머릿속이 고장 난 라디오 같았다.

감정의 주파수들이 서로 뒤엉켜 백색소음처럼 허망하게 윙윙거렸다. 

철재침대 옆에 우주가 서 있었다.

우영이의 목에는 음식과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 뚫어 놓은 구멍이 봉합되지 않은 채 벌어져 있었고 아이의 입술과 젖꼭지는 파랗게 죽어있었다.  

똑같이 생긴 아이들이 하나는 죽었고 하나는 살아있었다.

몽롱함 속에서 우영이를 바라보는 우주는 마치 죽은 우영이의 영혼 같았다.

현주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고 그 순간 우주와 시선이 마주쳤다.

생각지 못한 엄마의 눈빛에 우주는 얼어붙었다.


장례식장에서도, 화장터에서도, 납골당에서도, 죽은 아이의 방에서도, 이곳 앨라배마에서도  백색소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모르핀을 뇌에 직접 주사한 듯 이 몽롱함을 벗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준기를 만났고 오직 그와 섹스를 나누는 순간만큼은 정신이 그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가 주는 자극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은 제정신이 되는 것 같았다.   


가족

현주가 정신을 차렸을 때  동인은 준기의 다리를 잡고 끌고 가고 있었다.

준기의 머리에서는 두개골 안의 산소로 인해 옅은 분홍빛을 띠고 있는 피가 기포와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인은 준기를 집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는 어두운 집 안에서 전화기 불빛으로 페인트작업을 위해 가져다 놓은 시너 통을 발견했다.

동인은 현관까지 시너를 뿌린 다음 라이터를 켜 던져버렸다.

불은 순식간에 집안으로 달려 들어가 집 안 전체로 퍼져나갔다.

시뻘건 불길이 창문을 밀어내더니 기어이 창을 깨고 시꺼먼 연기를 토해냈다.


어두워진 밤, 도로를 지나는 차는 없었다.

동인은 정신이 반쯤 나간 현주를 끌고 가서 차에 밀어 넣고 차를 몰았다.

그 뒤로 검은 밤하늘에 붉은 불기둥이 하늘로 쏟아 올랐다.

달리는 차 안에서 현주는 손잡이를 꼭 잡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컴컴한 어둠의 도로 한 복판에서 동인이 차를 세웠다.

현주의 눈에 보이는 그는 떨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게 전방을 주시하던 동인이 핸들에 머리를 박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현주는 떨리는 손을 뻗어 동인의 등을 쓰다듬었다.


동인은 현주를 집 근처에 내려 주었다.

현주는 1km 정도를 걸어서 집으로 갔고 동인은 그 길로 디트로이트로 향했다..


다음날 집으로 경찰들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정복 경찰들이 와서 화재사실을 알리고는 몇 가지 질문을 하고 갔다. 

그리고 반나절도 되지 않아 사복을 입은 형사들이 찾아왔다. 

주변 정황상 현주는 가장 중요한 참고인이 되어있었다.

형사들은 더 많은 질문을 했다.

현주는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이틀 후, 동인이 돌아왔다.

셋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고 셋은 침묵했다.


며칠 뒤 형사들이 영장을 가지고 다시 찾아왔다.

경찰서에는 동인이 먼저 와 있었다. 

동인이 총을 구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참고인에서 용의자로 신분이 바뀌어있었다.


현주는 한참을 빈 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얼마 후, 형사가 들어왔다.

형사는 이것저것을 물었지만 현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통역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다시 한참 후, 형사는 40대의 한국여자와 같이 들어왔다.

형사는 준기와의 관계와 동인의 행적 그리고 그가 디트로이트에서 구입했다는 총의 행방에 대해서 물었다.

현주는 다시 한번 천천히 거짓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형사가 물었다.

“그가 혹시 자살을 할 만큼 정신적으로 심약한 상태였나요?”

현주는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주가 먼저 집에 돌아왔고 동인은 다음날 오전에 경찰서에서 나왔다.

현주의 거짓말과 증거불충분등의 이유로 동인은 기소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현주는 샤워를 했다.    

떨어지는 물에 현주는 눈물을 흘려보냈다.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현주는 그대로 주저 않아 묵혀왔던 눈물을 모두 쏟아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의 머릿속에 준기가 보여주었던 하늘이 차올랐다.

그리고 백색소음 같던 몽롱함은 사라져 버렸다.


“네 속에 내 고향이 있는 것 같아.”

현주의 귓가에 준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타벅스 클럽 2

현주가 카페 안에 들어서자 모든 여자들이 일제히 침묵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현주는 카운터에 가서 주스를 시켜 화장실 앞자리로 갔다.

여자들의 쑥덕임이 파도를 타듯 퍼져갔다.

현주는 조용히 않아 주스를 마셨다.

이때 현주의 전화기가 울렸다.

“엄마 오늘 좀 일찍 끝났어. 지금 와.”


잠자리 2

현주의 차가 한 점으로 사라지는 도로를 따라 달려갔다. 

이때 차창 밖으로 파란 하늘 노란 비행기가 초록의 지평선을 훑고 지나갔다.

잠자리 같은 비행기가 하늘에서 나풀나풀 날아다녔다. 


현주가 오디오를 틀자 조용한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운전대를 잡지 않은 손으로 배를 쓰다듬었다.  


-끝-


예전 일 때문에 갔었던 앨라배마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로

영화를 염두에 두고 썼던 트리트먼트를 조금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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