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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협 Jan 12. 2023

異人   (이인)

-2-

산탄총

동인과 현주는 동인의 직장상사가 초대한 하우스 파티에 갔다.

백인 부사장은 유독 한국에서 파견된 직원들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항상 파견 온 사람들이나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파티를 열었다.

말이 부사장이지 본사소속이 아니라 진골의 신분인 그의 원활한 직장생활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한국에서 오는 이들이나 가는 이들이나 그에게 데면데면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항상 자기들끼리 어울려 다녔다.


“예전에 시간이 있을 땐 사슴사냥도 다니고 했는데...”

현관에 걸려있는 긴 장총을 바라보고 서있는 동인에게 부사장이 말을 걸어왔다.

동인은 가벼운 눈인사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런 거 좋아하면 다른 것도 보여드릴까요?”

동인은 큰 관심은 없었지만 부사장의 호의를 거절하고 싶진 않아 그를 쫓아갔다.

동인을 자신의 침실로 데리고 온 부사장은 침대 밑에서 묵직한 산탄총을 꺼내 보여주었다.

동인은 그 산탄총이 마치 바지지퍼를 열고 꺼내 보여주는 성기 같기도 하고 몰래 숨겨놓은 포르노 테이프 같기도 해서 불쾌하고 불편했다.

부사장은 동인에게 총을 건네주었고 동인은 마지못해 총을 받아 들었다.

총은 제법 무게가 나갔다.  

“앨라배마는 땅이 넓어서 자기 집은 자기가 지켜야 돼요”

“언제 경찰 올 때까지 기다립니까.”

전통적인 인종차별집단인 K.K.K. 의 본부가 있는 앨라배마에서 산탄총을 건네주는 백인 부사장의 미소가 다분히 이중적으로 보였다.


경계 

부사장 집에서 돌아오는 길은 가로등 하나 없는 컴컴한 길이었다.

헤드라이트가 훑는 검은 아스팔트 양옆으로 노란 경계선이 동인의 차를 가두고 있었다.

“낮에 메시지 남겼었는데. 들었어요?”

“응..”

동인은 가끔 현주가 마른 시멘트를 자기의 입속으로 쑤셔 넣는 것 같을 때가 있었다.

지금 이 분위기가 딱 그랬다.

동인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2년이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집을 짓는 다니...

이해란 각 사람의 지식이나 경험의 범위 안에서 존재한다.

동인은 자신의 편협한 이해의 경계를 넘어선 그곳에 조금의 희망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우리 2년 뒤면 가는데 꼭 그래야겠어? “

“응 그러고 싶어.”

“... 그래 그럼.”

동인은 마지못해 그러자고 했다.

“그 돈. “

현주는 ‘그 돈‘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그 돈’이라는 통속적이고 싸구려 같은 단어를 쓰는 동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주는 대꾸대신 동인의 팔을 쓰다듬었다.

“고마워.”


업자들

현주는 머리가 벗어진 한인 부동산업자와 함께 평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70년대에 이민 온 업자는 침을 튀기며 자기 이민사를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자기가 박통한테 직접 임명장을 받고 영사관직원으로 파견된 이야기,

노태우 때 영사관에서 쫓겨나 흑인동네에서 리컬스토어를 하다가 강도한테 총 맞은 이야기,

김영삼 때 민주평통 위원으로 청와대 갔던 이야기 등등

그의 이야기는 70년대와 90년대를 맴돌고 있었다.

현주는 90년대에 인생이 멈춰버린 것 같은 부동산 업자와 몇십 억년은 같은 모습이었을 광활한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다 집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때서야 부동산업자는 하던 말을 멈추고 현주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여기다 왜 집을 지어요?”

업자는 이곳에 집을 짓는 것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인지 현주에게 설득시키려 했다.

그녀가 뭘 하든 땅만 팔면 되는 업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많은 시간을 써가며 그곳에 집을 짓는 일은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설명했지만 현주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부동산업자는 집을 짓기 위해선 먼저 컨트렉터를 고용해야 한다고 했다.

땅이야 누가 사줘도 상관없지만 이 불모지에 집을 지으려면 상하수관과 전기를 끌어와야 하는데 그 허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업자의 말이었다.

업자는 컨트렉터 몇 명을 소개해 주었다.


김 사장은 애틀랜타에 사는 업자였다.

현주는 세 시간을 달려 그를 만나러 갔다.

그는 뭐든 가능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자동차공장 지을 때 자기가 회장단을 수행하고 다니면서 공장 인허가 문제를 다 해결해 주었다고 허풍을 떨었다.

업자는 집 지을 땅은 보지도 않고 계약부터 하자고 보채 댔다.


최 사장은 컨트렉터라기보다는 목수에 가까웠다.

페인트가 여기저기 묻은 허름한 청바지차림의 최 사장과는 한국식당에서 만났다.  

그는 잡다한 집 보수공사나 식당 인테리어 등의 목수 일을 하는 인물로 현주가 보기에도 건축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는 오히려 현주에게 반문을 했다.

“거기가 집 지을 수 있는 땅이에요?”  

식당을 나서면서 부동산 업자가 말했다.

“공사를 가라로 해주는 친구가 있는데... 함 만나 보실랍니까?”


현주와 부동산업자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달렸다.

한참을 달리자 양쪽으로 자작나무들이 늘어서있는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달리자 길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집 한 채가 현주의 시선에 들어왔다.

나무로 지어진 옅은 파란색의 2층집은 창문이 모두 열려있었다.

부동산업자가 차를 집 앞에 멈춰 섰다.

“이 친구 한국말이 좀 서투른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컨트렉터

나무집에는 울타리가 없었다.

현주의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나무집 뒤로 보이는 낡은 경비행기였다.

잠시 뒤 준기가 맨발차림으로 걸어 나왔다.

준기는 한국말은 서툴렀지만 영어를 못하는 한국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부동산업자와 준기는 몇 안 되는 단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현주는 이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준기는 현주에게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물었다.

하지만 현주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더미

트랙을 출발한 테스트용 차가 묵직한 콘크리트 벽을 들이받고 절반으로 찌그러져 버리는 데는 3초가 체 안 걸렸다.

모니터에는 차가 벽을 들이받는 순간이 슬로 모션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차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가 충돌 당시의 더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육중한 더미의 몸이 핸들을 찍어 눌렀다가 뒤로 튕겨나 시트를 치고는 위로 튕겨 올랐다.

자동차 천장에 더미의 목이 90도로 꺾이면서 사지가 공중에서 풀럭거렸다.

똑같은 상황에서 더미가 아닌 사람은 바로 저 순간 절명했을 것이다.

동인은 무표정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더미의 움직임을 체크해 나갔다..     

2초의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더미의 수많은 동작들을 보고 또 보면서

동인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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