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협 Jan 14. 2023

異人   (이인)

-4-

와사비

다음 날 준기는 시내의 한 술집에서 건축과 직원을 만났다.

직원은 준기와는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는 준기가 아시아계란 이유로 공사 때마다 골질을 해대던 인간이었다.

준기는 나름대로 성질을 죽이며 이 시청직원에게 청탁을 해 왔는데 마지막으로 그를 일식당에서 만났을 때 준기는 그만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얼굴에 와사비간장을 쳐 바르고 말았다.  

직원은 해줘도 되고 안 해줘도 되는 허가가 있는데 그런 허가를 안 해줬을 땐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에둘러 말했다.  

준기는 뭘 원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고 시청직원은 양손을 어깨 쪽으로 붙이고는 얄밉게 날게 짓을 했다.

준기는 코웃음을 쳤다.

“당장은 필요 없고 한 달 뒤에 가지러 갈게.”

직원은 준기가 이 계약에 동의를 했다고 단정을 짓고 술집을 나가 버렸다.

준기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아마 그의 표정이 직원의 제안을 수락해 버린 듯했다.  


휘발

공사는 다시 시작되었지만 현주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준기는 그녀가 신경 쓰였다.

전화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준기는 망설였다.

건물주와 공사담당자로써 마땅히 할 수 있는 전화였다.

하지만 준기는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시청 안에서의 그녀의 눈빛이 겹쳐왔다.

분명 뭔가를 말하고 있었는데 준기는 그 이국적인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차가 드문드문 지나가는 도로의 끝을 가끔 실없이 바라보았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현주가 나타났다.

그날은 강풍예보가 있어 공사가 쉬는 날이었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 공사장을 준기는 홀로 지키고 있었다.  

그는 갈렙이 준 술을 꺼내 마셨다.

앨라배마의 열기에 데워져 휘발성이 높은 갈렙의 술은 뚜껑을 열자 강한 알코올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때, 현주가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현주는 늘 서있던 자리에서 골격이 완성되어 가는 집을 바라보았다.

준기는 그녀의 위태로운 모습이 반가웠다.

그녀가 준기에게로 다가왔다.

“왜 혼자 나와 계세요?”

“돌풍이 온다고 그래서... 현장 좀 둘러보러 나왔습니다.”

“술인가요? “

그녀의 하늘하늘한 원피스가 바람에 날렸다.

“네.. 한잔 드릴까요?”

준기는 술을 조금 따라 현주에게 건넸다.

역한 술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던 현주는 단숨에 마셔버렸다.

휘발성이 강한 술이 기화되어 현주의 몸 곳곳에 퍼져나갔다.

멀리 어두운 구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원래 앨라배마는 바람도 이렇게 덥나요?”

묘한 향 때문에 중독성이 강한 술을 몇 잔을 더 나눠 마신 현주가 말했다.

퍼져나간 술은 금방 현주의 몸을 덥혔다.

얇은 원피스차림의 현주의 몸에서 올라온 땀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어느새 그녀의 하얀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사람이 더위를 느끼는 이유는 대부분이 환경 때문이 아니라 몸의 온도가 높아져 서라더군요.”

허벅지에서 올라온 땀 때문에 원피스가 자꾸 몸에 달라붙었다.

가슴에 달라붙은 원피스는 흠뻑 젖어 땀구멍이 비치는 것 같았다.

준기의 시선이 그녀의 허벅지에 닿았다.

현주는 그의 시선을 받아들였다.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토네이도

하늘에 검은 먹구름들이 모여들더니 거대한 원을 만들면서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그 원의 가운데에서 검은 구름이 말려 내려오고 있었다.

곧이어 강한 바람이 그 주변에서 몰아치기 시작하고..

말려 내려오던 검은 구름이 땅에 닿자 거대한 구름기둥이 되어버렸다.

토네이도가 주변에 있는 건물들을 툭툭 쳐내자 건물들이 힘없이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모든 걸 집어삼킬 것 같은 토네이도가 다가오고 있었다.

앨라배마에는 토네이도가 자주 일어나 집집마다 대피할 곳을 만들어 놓았다.

준기도 제일 먼저 만든 것이 지하 대피공간이었다.


현주는 처음 보는 토네이도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 서있었다.

그녀는 지구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질량의 이 답답한 가슴을 저 토네이도라면 날려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준기가 현주를 잡아끌고 지하로 대피하지 않았다면 아마 현주는 구름기둥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지하로 난 철문을 닫자 엄청난 굉음의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쩍 쩍‘ 나무들이 부러지는 소리와 육중한 무언가가 철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그 순간 현주의 가슴속에서 출구가 없는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현주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어두움 속에서 현주는 준기의 입술을 훔쳤다.

그녀의 손이 준기의 셔츠 안으로 들어가 헤집고 다녔다.

준기 역시 그녀를 거부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멈추라고 하면 멈출게요.”

준기의 공허한 말에 현주는 그의 목덜미를 단호하게 끌어당겼다.

준기가 현주의 팬티를 제치고 그의 것을 밀어 넣었다.

그의 것이 현주 안으로 밀고 들어오자 척추를 타고 머리까지 저릿하게 느껴왔다.

현주가 작은 회오리바람 같은 신음을 토해냈다.


현주의 몸에서는 젖내가 났다.

준기는 그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 그녀의 몸 안을 헤집고 다녔다.

그녀의 몸 안에는 알 수 없는 평안이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쉘터에서 나왔을 때는 집의 골격은 이미 모두 부숴지고 흩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현주의 차는 도로 옆에 배를 까고 뒤집혀있었다.

사라져 버린 토네이도가 남기고 간 바람 한 조각이 현주의 머리카락을 날리고 있었다.


갈렙의 다락방

큰 덩치에 유순한 성격의 갈렙은 흑인 빈민동네에서 귀가 잘 안 들리는 늙은 엄마와 같이 살고 있었다.

그의 집에는 다락방이 하나 있었는데 온갖 잡동산이들이 가득 차 있었다.

다음날 준기는 현주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다락방 한 구석에 볕이 잘 드는 곳에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현주와 준기는 관계를 가졌다.   


먼지가 올라오는 매트리스에 알몸으로 누운 준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준기는 그가 기억하기도 전에 입양을 와서 남부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원래 입양할 형편이 되지 않았던 그의 양부모는 준기를 양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나버렸다.

양 할머니는 지나치게 폐쇄적인 성격으로 거의 집 밖을 나간 적이 없었다.

그녀는 신문이며 잡지며 온갖 쓰레기들을 집안 가득 쌓아놓고 살았다.

3마리의 개와 4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집안에선 늘 고약한 냄새가 났다.

집안에서 나는 냄새를 참을 수 없어 밖으로 나가면 광활한 오일필드에서 나는 석유냄새가 코를 찔렀다.

팔만여 개의 오일펌프에서 쏟아져 나오는 감당할 수 없는 석유냄새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 후유증 때문일까 준기는 냄새를 잘 맡지 못했다.  


그런 그가 현주의 냄새를 맡았다.

현주의 온몸에 숨겨진 그 냄새는 준기의 코를 파고들어 온몸의 신경들을 마비시켜 나갔다.  


두 사람은 매일 그곳에서 만났다.

한참 섹스를 하고 나면 갈렙의 엄마가 저녁을 하는 냄새가 복도를 타고 다락방으로 올라왔다.

두 사람은 갈렙의 엄마가 만드는 족발요리를 얻어먹고 헤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異人 (이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