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의 귀환과 의식주의 재편
어느새 짓지 않는 삶이 당연시됐다.
우리는 언제부터 의·식·주를 전문가로부터 “구입”했을까? 근대 이전까지 소비자는 곧 생산자였다. 필요한 음식과 옷, 집은 소비자인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다. 초가집을 지어 살며 입을 옷을 짓고 농사지은 쌀로 밥을 지어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다. 의식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은 귀족들의 사치품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근대사회로 접어들며 상황은 변한다. 근대의 인구 급증으로 대량생산이 필요해지자 소비자와 생산자의 거리는 차츰 멀어지다 어느샌가 완벽히 분리돼 버렸다. 방망이 깎던 노인의 역할은 공장과 시스템이 가져갔다. 좋은 품질보다는 많은 양의 빠른 공급이 중요했다. 전문가의 역할은 직접 짓던 장인에서 공장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시스템 빌더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혹은 용역, 서비스업으로 이동해 건축가, 요리사가 되어 바쁜 주민을 대신해 의식주를 빠르고 저렴하게 지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대중은 의식주를 직접 짓는 대신 간편하게 “구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이상 짓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인구절벽 생산과잉의 시대에 접어들며 의식주는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변화의 요인은 두 가지이다. 대량생산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경험과 재미를 찾는 밀레니얼, Z세대 소비자가 등장했다. 인구감소로 생산량의 중요성이 낮아지면서 소비자는 생산과정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밀레니얼 소비자는 의식주의 생산과정에 참여하며 느끼는 새로운 경험과 윤리적 가치를 추구한다. 밀레니얼의 DIY 문화는 완제품을 만드는 게 중요했던 부머 세대들의 벽난로 앞 뜨개질이나 집수리 DIY와 달리, 성과물에 자기다움과 창의성을 담아가는 과정을 소중히 한다. DIY와 크래프트, 메이커 문화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나 공장제 생산품 같은 획일적 물건이 아닌 소비자에 대한 개인 맞춤화 경험을 제공하는 생산 방식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렇게 성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자기만의 스토리를 인스타그램, Pinterest 등에 올리며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한다. SNS는 일부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DIY, 크래프트 문화를 대중에게 확산시킨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DIY로 재편된 세계에서 전문가의 역할은 생산 활동의 대행인에서 안내자로 변화하고 있다. 서비스 비용을 받고 대신 지어주는 사람에서 유튜브, 방송 등의 매체나 단체 워크숍을 통해 직접 짓는 방법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사람이 되고 있다. 수많은 요리 유튜버, 셀프 인테리어(DIY) 유튜버 등이 그 예이다. 특히 요리사의 기예를 뽐내던 기존 TV스타 셰프와 달리 SNS 쌍방향 소통을 기반으로 일반인을 요리 세계로 안내하는 안내자 역할에 치중한 백종원이 뉴타입 전문가의 예라 볼 수 있다.
그렇게 또 한 번 지은이가 무대의 중심에 등장했다.
이 엉뚱한 공간을 지은이가 누구인가, 이 윤리적인 농작물을 지은이가 누구인지, 이 창의적 위트를 담은 옷을 지은이가 누구인지 찾게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본인 역시도 창의적인 지은이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어 한다. 대중은 길잡이가 되는 전문가의 안내로 다시금 지은이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본 글은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가 발행하는 건축도시정책 전문채널 <건축과 도시공간> 2020년 봄호 Vol.37에 기고한 글을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www.au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