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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osun Mar 31. 2020

마을이 호텔이 되는 "커뮤니티 호텔"

21세기 연금술: 사회적 자본을 경제적 자본으로

이 글은 2018년 3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기고한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커뮤니티 호텔과 도시재생


여행의 본질은 건물,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닌 그 건물과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자라온 지역민과의 교류에 있지 않을까? 실제로 관광의 흐름이 유적지와 문화재를 보거나 체험하는 것에서 지역과 마을의 구성원으로서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명소를 들러보는 '루트형 관광'에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빌려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체류형 관광'이 시작되고, 에이스 호텔 등의 커뮤니티 호텔을 통해 지역사회의 관계망 내로 침투하여 지역 구성원이 되어보는 '커뮤니티형 관광'이 움트고 있다.


도시재생 측면에서 보면 다수의 벽화마을처럼 원도심이 단순 관광지화 되어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면 지속성 확보라는 도시재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소비의 대상으로서의 관광지는 창조적 인재를 끌어모으거나 지역 생산품을 브랜딩화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등의 파급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반면 관광객이 잠시나마 지역의 일원으로 살며 지역 주민과의 접촉면을 넓혀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관광객은 지역주민에게 신선한 활력과 다양성을 선사하고 지역민은 관광객에게 비일상적 체험을 통해 새로운 영감과 일상 재충전의 기회를 부여한다. 출산율 저하로 원도심 내 거주인구의 직접적인 증대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다양한 배경과 특성이 있는 외지인이 커뮤니티 호텔을 중심으로 활력을 넣어준다면 지역재생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 이들을 "관광 노마드"로 부를 수도 있겠다.


커뮤니티 호텔은 우선 관광객을 체류시킨다는 데서 큰 효과를 만들어 낸다. 체류한다는 것은 소비와 직결되고 지역에 대한 이해도와 애착을 발생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관광지와 맛집만으로는 관광객의 재방문을 유도하기 어렵다. 갈 때마다 새로운 이벤트와 즐길 거리가 생기고 관광객과 지역과의 관계가 맺어질 때 지역에 활력이 돌고 이를 바탕으로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비로소 지역의 재생 동력이 갖추질 수 있다.


커뮤니티 호텔은 지역의 매력과 잠재력을 발굴하고 이를 증폭하여 관광객과 이어주는 역할, 지역민과 관광객 간의 직접적인 교류와 소통을 발생시키는 역할, 지역 전체를 브랜딩하여 지역경제를 함께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나레: 지역 일원으로 살아보기


하나레는 도쿄 야나카 지역의 커뮤니티 거점 중 하나인 복합 문화시설 하기소의 2번째 지역거점 프로젝트이다. 하기소는 도쿄예술대학교 건축학과의 작업실이자 아지트로 쓰이던 오래된 목조 건물이었다. 1955년에 건립된 건물이 2011년 3.11 대지진으로 설비에 문제가 생기자 건물주인 절주지 스님은 철거를 계획했다. 학생 시절부터 하기소를 DIY로 개수하며 사용하던 도쿄예술대학 학생 미야자키 미츠요시는 철거 전에 정든 건물의 장례식을 겸해 '하기엔날레 2012'라는 전시를 제안한다. 20명의 주민과 아티스트가 건물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 전시가 예상외로 1,500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며 성황을 이루자, 미야자키씨는 하기소 건물을 지역 문화거점 겸 건축사 사무소로 사용할 수 있게 건물주에게 제안했고 2013년 4월 DIY 리노베이션을 거쳐 하기소가 오픈했다.

그림 1 커뮤니티 호텔 하나레 전경(위) 및 하기소 2층에 위치한 리셉션 (아래)
마을 전체가 호텔이다(The whole town = your hotel) 라는"커뮤니티 호텔" 하나레의 개념도 출처:http://hanare.hagiso.jp/about/


하나레는 2015년 11월에 오픈한 커뮤니티 호텔이다. 미야자키씨는 하기소의 매력은 하기소가 위치한 야나카 마을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야나카의 매력이 유지되고 증폭되지 않으면 하기소의 매력도 함께 없어진다 판단했다. 하기소를 운영하며 한정된 건물 안에서의 이벤트, 전시, 공연만으로는 야나카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이 될 수 있는 커뮤니티 호텔을 기획한다. 하기소 2층에 최소면적의 리셉션 공간을 두고 침실은 도보권 내의 하나레(떨어져 있다는 뜻) 건물에 두고 저녁은 지역의 맛집에서, 기념품은 골목의 유명 가게에서, 목욕은 동네 목욕탕에서, 문화 체험은 사찰이나 지역 문화센터에서, 조식은 하기소 1층 Hagi Cafe에서 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하나레에서는 지역의 매력을 충분히 알리기 위해 자체적으로 휴대용 마을 지도를 제작했다. 마을지도에는 지역주민이 일상에서 편하게 드나드는 다양한 식당과 공방, 사찰, 명소, 공원 등이 기록되어 있다. 지역에 애정을 갖고 오래 지내온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석양을 보기 좋은 장소, 재미있는 뒷골목 등의 장소를 알려주어 지역의 시간에 발을 맞춰 지역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 지내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하나레의 지역 지도는 관광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손님으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받아 재미있는 장소를 추가하기도 한다. 친절한 하나레 매니저가 조식 식사나 체크아웃 시간에 손님과 밀접한 관계를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조식 식사는 지역 재료로 만든 제철음식을 각 재료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제공하고, 체크아웃 때는 매니저가 직접 쓴 손편지를 전하며 야나카 마을과 하나레에서의 경험에 대해 다양한 대화를 나눈다. 야나카 마을의 매력을 연결하여 관광객에게 경험을 시켜주면서 지역의 다양한 매력을 더욱 키워갈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부여한다.


하나레의 자체 제작 마을 지도와 마을 지도에 실려 있는 지역의 매력적인 장소들
하나레의 자체 제작 마을 지도와 마을 지도에 실려 있는 지역의 매력적인 장소들 I 출처: http://hagiso.jp


하나레에서는 지역 내 6곳의 지역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매일 제공한다. 각 목욕탕의 위치와 함께 물의 온도, 탕 별 특징 등을 적어놓아 관광객을 위한 목욕탕이 아닌 지역 주민이 일상에서 동네 문화의 일부로 이용하는 목욕탕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하기소와 하나레는 야나카 마을의 다양한 개성 있는 가게와 목욕탕까지 속속들이 경험해 볼 수 있는 커뮤니티 호텔을 통해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이끌어가고 있다.


하나레에서 제공하는 지역 목욕탕 위치 및 목욕탕별 특징과 무료 입욕 쿠폰 (위), 하나레와 협약을 맺은 동네 목욕탕 (아래)


BnA 호텔 코엔지: 지역 예술가의 사적 네트워크와 접속하기


BnA(Bed and Art) 호텔 코엔지는 도쿄의 스기나미구 코엔지 지역에 위치해 있다. 코엔지는 70~80년대 펑크문화를 주도했던 곳이며 지금은 서브컬처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또한 빈티지 거리를 중심으로 젊은 예술가들과 크리에이터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젊은 예술가 4명으로 구성된 BnA 프로젝트 팀은 "묵을 수 있는 예술품"이라는 컨셉의 커뮤니티 호텔을 이케브크로, 아키하바라, 교토, 코엔지 등에 기획했다. 코엔지의 예술가들은 국내외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수입 면에서는 생계가 위태로울 정도로 불안정했다. 또한 관광객들과 코엔지의 예술가들 간의 접점이 없어 인테리어 소품이나 빈티지 의류를 구매하고 아기자기한 거리를 구경하는 것이 관광의 대부분이었다. BnA 프로젝트 팀은 건물 전체를 예술품처럼 기획하고 호텔 주변에 공공예술을 전시하여, 코엔지의 예술가들과 관광객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계획했다.


BnA 호텔 코엔지가 다른 BnA 프로젝트와 다른 점은 커뮤니티 호텔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코엔지 마을 전체를 하나의 “면”적인 호텔로 상정하고 거점 공간 Front Desk를 허브로 관광객이 마을 곳곳에 포진한 예술가들과 크리에이터와의 교류를 만들어 마을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유도했다. 커뮤니티 호텔 매니저가 지역 곳곳의 예술가, 크리에이터들의 공간을 위트 있는 문구로 소개해서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커뮤니티 호텔 1층 바는 관광객과 지역 주민, 지역 예술가, 크리에이터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로 활용했다. 지하 갤러리에서는 정기적인 전시와 공연을 실시하고, 건물 곳곳에 설치된 예술품을 경매로 판매하기도 한다.


BnA 호텔 코엔지의 "커뮤니티 호텔" 개념도 I 출처: https://readyfor.jp/projects/bedandart


BnA호텔 코엔지에서 제공하는 지역 가이드에서는 일반적인 관광객이 지나치기 쉬운 재미있는 가게들이 많이 있다. BnA호텔 코엔지 지역 가이드는 BnA그룹과 관계가 있는 지역의 특색 있는 바, 식당, 빈티지샵 등을 재미있게 소개해주어 관광객과 연결을 유도하며, 해당 장소에 갔을 때 BnA호텔과 매니저들의 이야기를 통해 쉽게 대화를 열 수 있게 해 준다. 지역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던 사적인 네트워크를 전해 받는 느낌으로 잠시 지역 예술가의 구성원이 되어 지역의 숨겨진 가게들을 다닐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지역 예술가들은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예술의 영감을 얻고 지역에 다양성과 활력을 부여한다.


숙박, 바 운영, 예술품 판매 등 통해 수익모델을 구축하고 수익의 25%를 사업에 참여한 예술가들에게 분배했다. 숙박객들은 BnA 호텔에 묵는 것만으로 예술가를 후원하는 후원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호텔 리노베이션 비용 총 1,570만 엔 중 200만 엔은 Ready for 라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 모금했다.


BnA 지역 가이드가 아니었으면 쉽게 들어가기 어려웠을 로컬 크래프트 비어 샵 I 윤주선(2018)


당장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막는 것은 어렵다. 대신 인구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지역의 활력 감소에 대한 대안으로 커뮤니티 호텔을 통해 지역의 다양성과 활력을 증가시키는 것이 도시재생의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국내에도 지역의 매력과 잠재력을 최대로 증폭시키고 이를 통해 지역의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커뮤니티 호텔형 도시재생 사업이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아티스트 요헤이 타카바시의 작품 "into the foreign" 객실 I 윤주선(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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