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미의 세상 Jan 24. 2024

미련 때문만은 아니야!

"여보 이젠 이것 좀 버리지 “    

 

아파트 구석구석에는 그동안 즐겨왔던 취미용품인 퀼트용 천과 실, 꽃꽂이 도구, 재봉틀뿐만 아니라 바이크, 필라테스 기계, 반신욕기, 안마기, 자전거용품 등 헬스장을 차려도 될 만큼 많은 운동기구가 널려있다. 게다가 10 년 넘게 운영하던 빵집 도구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그것들을 내다 버릴 수는 없다.  내가 언제 다시 그것을 사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강아지를 데려왔을 때 퀼트 재료를 이용해 강아지 옷을 몇 벌이나 만들었다. 강아지가 갑자기 크는 바람에 거의 상자에 남아 있긴 하지만 그 옷을 만드는 순간 정말 행복했다. 

    

빙수기, 믹서기, 식빵기, 각종 포장에 쓰던 리본과 포장지 등 빵집 살림도 엄청 많다. 사실 그중 꺼내 써본 것이라고는 샌드위치 케이스와 포장지 그리고 빙수기 정도지만 또 언제 빵이나 과자를 다시 구을지 모른다.   

        

불만 가득한 남편의 두런거림이 계속되자 참다못한 나는 베란다로 가서는,

"봐, 당신의 캠핑용품도 만만치 않다고."

캠핑을 싫어하는 마누라 때문에 등산용품은 베란다 구석에 몇 년째 처박혀 있다. 한참 캠핑용품을 사들일 때 남편은 그것들을 거실에 쭉 꺼내 놓고는 닦고 또 닦으며 행복해했다. 그런데 캠핑은 몇 번 가지 못했다.

    

캠핑 가서 멋진 풍경 보며 술 한 잔 하는 것, 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한 번 가려면 캐리어로 그 많은 짐들을 서너 번은 날라야 하고 텐트를 펴고 접는 것도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게다가 밥 한 끼 해 먹으려면 멀리 떨어진 수돗가까지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하고, 한밤중에 자주 화장실에 가야 하는 나는 정말로 캠핑이 불편하다. 길지 않은 여행길에 비싼 호텔이 아니라 모텔도 괜찮고 밥은 근처 맛 집에서 대충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넌 낭만이 없어." 

“아니, 나도 그 낭만 한껏 즐기고 싶어, 하지만 이젠 그런 것이 너무 힘들고 불편하다고.”

남편은 요즘 한술 더 떠 기어코 캠핑카 한 대를 장만하겠다며 열심히 용돈을 모으고 있다.   

  

몇 년 전 한달살이를 위해 우리는 자동차에 살림살이를 한가득 싣고 제주도에 갔었다.  그 자동차 한 대에 실린 살림만으로 우리는 거의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다. 그렇다면 이 아파트 가득 채워져 있는 살림살이는 좀 정리해도 될 것 같기는 하다. 몇 번인가 정리하려고 꺼냈었지만 버려진 것은 별로 없다.

    

목동에만 30 년 넘게 살았다. 나도 이제는 다른 곳에 가서 살아보고 싶지만 이사할 생각만 하면 도대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 하나하나에는 나만의 추억이 남아있다.  처음 결혼 했을 때 난 압력 밥솥의 물도 못 맞추는 요린이였다. 퇴근시간만 되면 요리책을 이리저리 뒤져 그날 반찬을 준비하던 낡은 요리책, 40년 넘도록 서재를 지켜온 세계문학전집 등도 버릴 수가 없다. 그뿐이랴 직장 다닐 때 입던 멀쩡한 정장들이 조금 끼기는 하지만 혹시 살이 빠져 다시 입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유난히 손님 초대를 즐겨해서 우리 부엌에는 다양한 조리 기구부터 그릇도 엄청나다. 오래된 살림은 구식인 데다 초라하기 짝이 없어 딸들도 이제 그만 좀 버리라고 핀잔을 해대지만 너무 멀쩡하기도 하거니와 그 그릇들을 보면 그때 담아냈던 음식과 손님들이 떠오른다.     


“여보, 아파트 재건축이 이뤄지려면 앞으로도 10년은 걸릴 테니 그때까지만 좀 참아주면 안 될까, 천천히 정리해 볼게 응?”

매거진의 이전글 1월의 어느 아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