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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un 03. 2024

당신에게도 힐링푸드가 있나요?

한 아주머니가 가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는 냉장고에서 H 아이스크림을 꺼내더니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나를 보고서야 머쓱한 듯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넨다. 이런 일이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그녀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가끔 저렇게 불쑥 찾아왔다.

"난요, 이 아이스크림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아이스크림이잖아요."

그녀는 화가 나거나 마음이 아프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분전환을 하였다. 

    

난 아이스크림 하면 어릴 적에 "아이스 케키~"하고 외치며 팔던 형형색색의 아이스케키가 떠오른다. 요즘처럼 낱개 포장이 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부드럽지도 않았지만 무더운 여름날 더위를 식혀주기에 딱이었다. 어쩌다 빵이 먹고 싶은 날에는 동네 점빵에서 느끼한 버터크림이 가득한 삼립식품의 버터크림빵을 사 먹었다. 빵 가장자리까지 맛있게 먹기 위해 가운데 몰려있는 크림을 혀끝으로 밀어내며 아끼며 먹었다. 요즘도 어쩌다 동네 슈퍼에 갔다가 그 빵을 보면 사 먹어 보지만 내 입맛이 변한 건지 빵맛이 변한 건지  어릴 때 맛있게 먹던 그 맛이 나질 않는다.     


요즘 제과점에서는 버터크림빵을 길쭉하게 만든다. 버터크림도 우유버터를 사용해 예전처럼 느끼하지 않고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것 같다.  크림빵은 버터크림만 넣으면 버터크림빵, 아몬드 가루를 섞으면 아몬드 크림빵이다. 또 녹차가루나 크림치즈를 섞기도 하고  감미로운 바닐라향이 나는 슈크림을 넣기도 한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팥빵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보로빵까지 정말 봉지빵의 종류는 꽤나 다양하다.   


  

우리  팥빵은 정말로 유명했다. 반을 뚝 자르면 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팥이 가득한 데다 호두까지 씹혔다. 한 할아버지는 늘 팥빵을 두 개 사서는 한 개는 호주머니에 넣고 한 개는 바로 꺼내 드시며 가시다가 나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이 집 팥빵, 정말 맛있어" 하며 엄지 척하셨다. 

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빵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던 순간보다 손님들이 이렇게 빵이 맛있다고 칭찬해 주실 때 콧노래가 절로 나오며 신바람이 났다.      

 

오븐에서 갓 나와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빵에 버터를 한 번 발라주면 달콤한 향이  온 가게에 진동했다. 팥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 강한 유혹을 끝내 참지 못하고 냉큼 한 입 베어 먹다가 입천장을 덴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추운 겨울이 아니라도 호호 불며 먹던 팥빵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달콤함과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갈 때의 기분은 따끈한 팥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워낙 팥빵을 좋아해서 가끔 50 % 할인 행사도 했다. 그럴 때면 팥빵 애호가들은 이삼십 개 정도씩 사다 냉동고에 쟁여두었다.  

 


내가 직장에 처음 취업했을 때 바로 건너편에 빵집이 있었다. 출근하려면 고소한 빵 내음이 내 발목을 잡아 바쁜 출근 시간인데도 기어코 식빵 하나를 사갔다. 직장 바로 아래가 커피숍이었는데  향긋한 커피 향은 또 얼마나 식욕을 돋우던지 서둘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는 방금 사 온 식빵을 꺼내 들었다. 따끈따끈한 식빵은 자를 필요도 없다. 머그잔에 프림 커피 한 잔 가득 타서 동료들과 나눠 먹다 보면 큰 식빵 하나가 금방 사라져 버렸다. 

     

오븐에서 막 나온 바게트는 한동안 껍질이 팽창하면서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바게트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 또한 일품이다. 늘 바게트가 나올 때쯤 사러 오는 손님이 있었다. 바게트는 어슷하게 썰어줘야 하는데 방금 구워낸 것을 써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조금 세게 잡았다가는 찌그러지고 쉽게 잘리지도 않는다. 처음 내가 썰어준 바게트를 사갔던 손님은 아마 집에 가서 그 이상한 생김새에 황당했을 것이다.  식빵도 마찬가지다. 식기 전에 커터기에 넣으면 잘 잘리지도 않는 데다 억지로 밀어 넣으면 찌그러지기 십상이다. 겨우 잘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빵을 조심스럽게 봉지에 담아보지만 이내 한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난 페스츄리를 좋아한다. 겹겹이 일어나는 빵은 한 겹 한 겹 벗겨먹는 재미도 있고 달콤 바삭한 맛에 먹으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페스츄리는 두툼한 버터를 밀가루 반죽 사이에 넣고 밀고 접기를 반복해 얇게 결을 낸 빵이다. 그 버터의 양을 떠올리면 건강을 위해 피해야 하지만 지금도 빵집에 가면 내내 망설이다 집어오기 일쑤다. 배가 잔뜩 불러도 빵 배는 따로 있다더니 나는 금세 게 눈 감추듯 먹어버린다. 

     

롤케이크는 그 색과 맛이 형형색색이다. 계피향을 넣으면 시나몬롤, 커피를 넣으면 모카롤 그리고 녹차와 산딸기, 블루베리까지 넣어 다양하게 만든다. 미니 롤케이크는 부드럽고 촉촉해 우유 한 잔만 곁들이면 가족들의 아침 식사로 딱이다.     


언제부터인가 타피오카 전분이라는 깨찰빵의 재료가 수입되었다.  인절미도 아닌 것이 쫄깃쫄깃한 데다 검은깨까지 넣어 고소한 깨찰빵은 사람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우리 집에서는 공갈빵과 두부과자, 전병도 만들었다. 다소 예스럽기는 해도 고소하고 달콤한 맛에 찾는 사람이 많았다.   

  

케이크도 생크림케이크나 버터케이크 외에 산딸기 무스나 크림치즈무스 케이크까지 만들었다. 무스케이크는 제과학교에서 배웠지만 그 과정이 너무 번거로워 딱 수업시간에만 만들어 봤는데 우리는 그것까지도  만들었다. 일반 치즈케이크는 촉촉하고 부드러운데 비해 크림치즈 무스케이크는 약간은 느끼하지만 젤리처럼 입에서 사르르 녹는 치즈 맛이 일품이다.    

  

우리 가족은 키리쉬 케이크를 참 좋아했다. 초코 시트로 만들지만 달지 않고 검은 체리와 생크림을 넣고 둥글게 쌓아 올린 시트 위에 먹음직스럽게 초콜릿을 갈아 장식한 케이크다. 그런데 요즘은 그 케이크를 만드는 제과점이 별로 없어 아쉽기 짝이 없다. 우리 집 생크림 케이크는 버터크림을 섞지 않고 우유 생크림만으로 만들어 달지 않고 상큼했다. 우유 생크림만으로 만들면 성형하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작은 고집이 있었다. 

    

수많은 빵을 자세히 설명하려면 아마 밤을 새울 것이다. 계란을 거품 내 재료와 모양을 달리 한 카스텔라류, 버터로 만들어내는 파운드류, 찹쌀과 팥으로 응용한 도넛까지 그 종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일을 숙성해 깊은 맛을 내는 슈톨렌, 옥수수와 옥분이 들어가는 크레존, 스콘, 파이, 누네띠네 등의 쿠키류 그리고 다양한 샌드위치까지. 사람들은 이 많은 빵과 과자 중 무엇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할까?     


늘 한의사들은 밀가루 음식을 먹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많이 먹었을 때의 이야기다. 슬프고 외롭고 배고플 때 먹는 빵 하나의 행복감은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는 것 아닐까? 누군가를 찾아갈 때 부담스럽지 않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선물도 빵이다. 친정아버지가 술에 취해 늦게 돌아오시는 날이면 7남매를 위해 양손에 늘 커다란 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난 늘 우리가 만든 빵을 먹고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해지기를 바랐다. 달콤 고소하고 부드러운 빵을 먹는 순간의 행복은 빵순이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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