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돈을 벌어주는 거야”
처음에는 그 말뜻을 잘 몰랐지만 나중에 절실하게 동감하게 되었다. 제빵사들은 당연히 맛있는 빵을 만들어 줘야 하고 매장 직원은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
오랫동안 나의 오른팔이 되어주던 K로부터 얼마 전에 안부 전화가 왔다. 공항의 케이터링 서비스 업체에서 일하고 있단다. 아직도 잊지 않고 연락해 준 것이 얼마나 고맙던지. 서로 바빠서 만남까지는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며느리도 보고 손자도 생겼단다.
그녀는 손님들에게 수선스럽게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늘 잔잔한 모습으로 고객들을 대했고 공장 직원들과도 별 탈 없이 지내는 덕분에 마음 놓고 가게를 맡길 수가 있었다. 그 후 들어온 직원 하나는 손님들께 너무 무뚝뚝한 데다 늘 공장직원과 불화를 일으켰다. 쉬는 날도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게 통보를 했다. 그녀를 보며 K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 둘째 딸도 키워주고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많이 도와주셨던 분도 우리와 오랫동안 같이 하지 못했다. 손님들께 불친절했기 때문이다. 둘째 딸을 키울 때도 우리 아이를 테니스장에 방치해 놓는 것이 기분이 나빠 어린이집으로 옮겼는데 또다시 그분을 그만두게 한 것이다. 아주 미안했지만 그녀가 계속 매장에 있다가는 손님이 다 떨어질 것 같았다.
두 번이나 일을 그만두게 했으니 마주하기가 아주 민망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녀는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 뒤 우유 대리점을 열었을 때 미안한 마음에 단체 주문이 들어오면 우유를 부탁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우리 가게까지 기꺼이 배달해 주셨다. 내가 꽤나 원망스러웠을 텐데 말이다. 몇 년 후 어딘가로 귀촌을 하셨다는데 두 분 다 건강하시겠지?
오랫동안 우리와 같이 일했지만 어지간히도 눈치코치 없던 사람이 주방 아줌마다. 제빵사들에게 숙식을 제공해 주다 보니 밥을 해주시는 아주머니가 필요했다. 그녀는 그전에도 빵집에서 일 한 경험이 있어 식사 준비가 끝나면 매장 직원과 함께 빵을 포장해 주는 센스도 있었다.
어느 날 직원들 숙소에서 누군가 고춧가루를 퍼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우리 집에서 직원들의 밥을 해주게 되었다. 집에서 밥을 해주다 보니 남편의 식사를 부탁했다. 그냥 뭔가 반찬을 만들면 조금씩 미리 퍼 놓으면 될 것을 눈치코치 없는 그녀는 늘 직원들이 먹다 남은 채로 두었다.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해도 변하지 않는 그녀에게 화가 난 어느 날 그만두라고 했다.
작년인가 감자탕을 포장하러 신도림역 근처 음식점에 갔을 때다. 얼핏 그 아주머니가 주방에 있는 것을 보았다.
‘아직도 일을 하시네’
아는 척하고 싶었지만 그냥 모른 척하고 포장된 감자탕만 들고 왔다. 그녀는 자기가 왜 잘렸는지도 모를 것이다.
공장이 따로 떨어져 있어 공장장 외에는 별로 친분이 없었지만 몇몇 사람은 기억이 난다. 우리 가게를 그만두고 대형마트 빵 매장에서 일하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자 급히 도망치던 G는 같은 마트에서 일하던 여직원과 결혼 했단다. 우리 가게를 그만두고 찾아올 때면 늘 내가 좋아하는 콜라 한 병을 사가지고 오던 A는 아직도 ‘남묘호랑객교’를 믿고 있을까? 제주도 토박이 C는 딸을 셋이나 낳았는데 마지막 기회라고 옮겨간 프랜차이즈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을까?
늘 방긋방긋 잘 웃어주던 H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 제빵사들은 팀으로 다녔는데 그 팀이 깨졌기 때문이다. 결혼 후 작은 마트 안에 빵집을 차렸다고 하길래 가봤는데 지금도 어디선가 계속 빵집을 하고 있을까? 키다리 공장장 S는 빵 일을 그만두고 지방에 내려가 뷔페식당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아직 결혼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모두 보고 싶다. 어떻게들 변했을까? 나의 이 간절함과 다르게 벌써 나를 잊고 살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때 우리 가족보다 그들을 더 귀하게 생각했는데 그 마음을 알기나 할까? 하필이면 힘들고 어려운 빵을 배워 미래를 꿈꾸었지만 이제 개인 빵집이 거의 없어지고 프랜차이즈 빵집만 남았으니 그들이 걱정이 된다.
한 우물만 파며 살아온 그들이 하나 둘 빵 일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으로 옮겨갈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 요란하게 돌아가는 반죽기 소리와 진한 버터 향이 더해진 고소한 향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평생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또 헤어지지만 빵집을 하며 만났던 그들과의 인연은 정말 소중했다. 빵집을 했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인연이다. 가을을 타는 걸까? 오색으로 물들어가는 낙엽들을 보고 있자니 유난히 그들이 보고 싶다. 어디선가 잘들 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