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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Nov 03. 2024

나의 애마여 안녕~

빵집을 안 했더라면 아마 아직까지도 장롱면허를 면하지 못했을 거다. 면허를 따고 몇 번이나 시내연수를 받았지만 운전은 늘 무서웠다. 하지만 빵집을 시작하고부터는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했고 자동차를 뽑은 지도 오래되었기에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운전이라고 해봐야 주로 근처에 있는 학교나 유치원에 빵을 배달하거나 취미생활을 위해 문화센터에 가는 것뿐이었다. 집과 빵집이 같은 아파트 단지였지만 보다 빨리 움직이기 위해 자동차는 늘 빵집 근처에 세워 두었다. 주차난 때문에 각 동의 경비 아저씨는 자기 동 차가 아니면 아주 불편하게 쳐다보았다. 

“여기가 내 가게인데 어쩌라고!”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늘 당당하게 주차하고는 가게로 들어왔다. 

    

눈 오는 겨울은 정말 싫었다. 늘 바쁘게 움직여야 했는데 밤새 눈이 차에 잔뜩 쌓이기라도 하면 눈 치울 시간이 없어 겨우 자동차 앞 유리에 쌓인 눈과 성애만 대충 긁어내고 출발하기 일쑤였다. 자동차 유리창에 가득한 성애를 녹이려면 에어컨을 켜야 하는 건지 히터를 켜야 하는 건지도 몰라 번갈아 키고 끄다 보면 앞 유리가 뿌옇게 되었다. 이미 자동차는 출발했는데 말이다. 안갯속에 시야를 확보하려고 급히 와이퍼까지 작동시켜 보지만 유리창 아래 꽁꽁 얼어붙어 있던 와이퍼는 괴성을 내며 얼음까지 매단 채 힘겹게 움직였다. 제 역할을 할 리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위험하게 운전을 했는지 아찔하다.  

   

한 번은 눈길에 엑셀을 살짝 밟았는데 자동차가 반 바퀴 이상 휙 돌아버렸다. 누가 볼까 허둥지둥 겨우 자동차를 돌렸다. 혹시 사고라도 내면, 

“글쎄 빵집 아줌마가~” 

하며 금세 소문이 나기 때문이다.    

 

어느 날 화가 난 채로 차 안에서 혼자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앞 사거리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다른 차들은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지만 그 순간 브레이크가 어떤 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무거나 잘못 밟았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지경이다. 일단 두 발을 띠었다가 브레이크와 액셀을 번갈아 밟으며 겨우 차를 세웠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생각할수록 아찔하다.  

   

요즘 뉴스에서 급발진 사고라고 우기는 사건이 나올 때마다 그때의 위험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남편에게 이 날 사고 날 뻔했던 이야기를 하면 한심한 듯 나를 바라보며

“핸드브레이크가 있잖아.”

브레이크와 액셀도 헷갈리는데 핸드브레이크가 떠올랐을까?

     

또 하루는 직원들과 회식을 가려고 출발했을 때다. 처음부터 뭔가 바닥에서 철썩거리는 소리가 나긴 했다. 하지만 그게 내 자동차 바퀴가 펑크 나서 나는 소리인 줄 몰랐다. 이삼 킬로미터 이상 달렸을 때 옆 차들이 손짓을 하며 경적을 울렸다. 세워 보니 바퀴가 완전히 주저앉아 있었다. 직원들과 수다를 떨다 보니 차가 흔들리는 것조차 몰랐던 것이다. 그날 회식은 취소했고 간단히 펑크 수리만 하면 될 자동차 바퀴를 두 개나 교체해야 했다. 한쪽만 바꾸면 균형이 맞지 않는단다.  

   

장시간 운전하는 일은 별로 없어 나의 애마는 주로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양심 없는 사람들은 슬그머니 차의 옆구리나 범퍼를 박고 갔다. 그렇지 않아도 후줄근했던 나의 애마는 흠집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자동차는 내가 피곤할 때 쉬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느 날 잠시 짬을 내어 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어떤 택시가 손님을 내려놓고 후진하다 내 차의 범퍼를 쿵하고 박았다. 어쩌나 보려고 차 안에 가만히 있으니 역시나 그는 얼른 차를 출발시키고 있었다. 냅다 경적을 울리고 나갔더니 미안하다며 얼마인가 돈을 주며 해결하자고 했다. 그때 내가 차 안에 없었다면 그 또한 모른 척하고 떠나갔을 것이다.  

      

물론 나도 다른 차를 박기도 한다. 주로 움직이는 차가 아닌 가만히 서 있는 차였다. 한 번은 문짝을 스쳤는데 손톱만큼 흠집이 났고 한 번은 영화를 보러 백화점 주차장에 차를 후진하며 세우다가 쿵하고 박았는데 흠집은 나지도 않았다. 보험으로 처리하자고 했더니 두 경우 다 범퍼와 문짝까지 바꿔달란다. 너무 심한 것 같아 보험회사 직원에게 항의했지만 그들이 원하면 어쩔 수가 없단다.  


나의 애마는 주인을 잘못 만나 자주 세차도 안 해주고 수없이 박고 박히며 10여 년 동안 나의 발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배달을 가거나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 면회 갈 때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지만 빵가게 문을 닫고는 폐차장으로 가고 말았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 나의 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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