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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Nov 07. 2024

눈 오는 날은 정말 싫어

“아, 또 눈이 내렸네. 도대체 올해는 왜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거야!”

주차장의 차들은 이미 밤새 내린 눈으로 그 형체조차 알 수가 없는데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리기라도 하려는지 눈은 그칠 기미가 없다. 원망스럽게 하늘을 보니 큼지막한 눈꽃송이들이 나를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 신나게 춤을 추며 내려오고 있었다.

     

나도 한때는 눈을 좋아하는 낭만 소녀였다. 눈이 내리면 시를 읊어보기도 하고, 아다모의 샹송 ‘눈이 내리네.’를 들으며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눈이 오면 은행 동기의 남자 친구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전화를 해댔다.

“다들 일들은 안 할 거야?”

뭐가 그리들 좋은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내내 심기를 건드린다.  눈치라고는 약에 쓰려해도 없는 나의 연인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내내 애꿎은 전화통만 노려보다 먼저 전화를 하고 만다.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이뤄진 데이트였지만 그저 눈길을 같이 걸을 파트너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이힐을 신은 내가 빙판길에 뒤뚱거리기라도 하면 그는 크고 넓적한 손을 슬며시 내밀었다. 수줍은 척 얼굴을 붉히며 코맹맹이 소리까지 낸다. 몸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가 좋아서였을까? 아님 눈 때문에?

나도 그런 여자다.

     

빵장사를 시작하고부터는 눈 내리는 날이 정말 싫었다. 가게 직원들은 빵을 만들고 포장하기도 바빴기 때문에 가게 밖의 눈을 치울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눈만 내리면 내가 달려갈 수밖에.  


우리 상가 건물은 지하의 통풍구가 바로 아래에 있어 지면보다 높았다. 그러니 가게에 들어오려면 계단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야 한다. 평상시에도 고객들은 발밑을 보지 않고 멀리 쇼케이스만 보며 들어오기 때문에 다리를 헛디디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다 생각해 낸 것이 비스듬하게 경사를 만드는 거였다.  하지만 그 경사진 턱은 눈만 오면 상가 입구의 타일과 함께 미끄럼틀이 되고 만다. 고객들의 안전사고를 막으려면 부지런히 카펫도 깔아놓아야 하고 입구의 눈도 깨끗이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가게 앞 광장은 평상시에는 가게가 눈에 잘 띄게 해서 좋지만 눈이 오면 그 넓은 곳의 눈을 치워야 하는 건 나다. 게다가 상가건물부터 버스 정류장까지는 완만한 경사가 있어 눈썰매 타기 좋을 정도다. 눈을 치우지 않았다가 사람들이 엉덩방아를 찧게 되면 공연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옆 상가들은 자기네 가게 앞의 이삼 미터만 쓸면 되지만 우리는 코너에 있으니 ‘ㄱ’ 자로 그것도 광장의 눈까지 치워야 했다. 밀대로도 밀어보고 빗자루로도 쓸어보지만 그게 쉽지 않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어쩌다가 거리의 청소부가 된 거야?”

엄동설한에 땀나도록 눈을 쓸고 있는데 아이들은 빨리 학교에나 갈 것이지 기껏 치워놓은 곳에 눈덩이를 던지며 어지럽혔다.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려다보니 팔짱을 끼고 그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들이 바로 앞에 있었다.     


겨우 눈을 다 치우고 가게에 들어가 허리를 펴려는데 또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아,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거야?”

하늘을 보며 삿대질까지 해보지만 가게 안의 직원들까지 창밖의 눈을 보며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눈 내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나뿐이었다. 요즘은 눈이 오면 관리사무실에서 염화칼슘을 뿌려 쉽게 눈을 녹여주지만 그때는 그저 사람의 손으로 눈을 치웠다.    

  

그렇게나 자주 내려 나를 못살게 하던 눈은 요즘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이제는 편안히 즐길 수 있는데. 지구 온난화 때문일까, 아니면 그때 내가 하도 하늘을 보며 원망을 해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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