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인으로서의 삶을 남김없이 다 살아낸 이의 이야기
나는 '책 편식'이 다소 있는 편이다. 최근 일이 년간 시의 매력에 입문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소설과 그림책 외에는 잘 읽지 않는다. 그중 특히 수필이나 에세이류는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렇지만 밑줄을 긋기 위해 내내 연필을 쥐고 읽어야만 했던 에세이집이 있다. 바로 판타지 소설의 거장 어슐러 르 귄의 짧은 글 40편가량을 묶은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다.
에세이류임에도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창작인으로서의 삶을 남김없이 다 살아낸 그녀가 여든이라는 나이에 당도해 생각하고 쓰는 삶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소설가의 에세이라는 사실도 궁금증을 더했다.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이라는 멋지고 정확한 부제를 달고 나온 책인데, 문학 산업부터 나이 듦에 대한 이야기, 르 귄의 고양이, 페미니즘까지 넓은 분야에 대한 그녀의 생각들을 읽어갈 수 있는 책이다.
밑줄을 그은 문장들을 다 공유하려면 저작권에 위배될 정도로 발췌할 양이 많았다. 그래서 밑줄 그은 문장들 중에서도 또 고르고 골랐다.
나는 종종 글쓰기를 직물 짜기, 도자기 만들기, 목공일 같은 공예에 비교한다. 말에 대한 나의 열정은 흔히 조각가, 목수, 소목장들이 오래되고 질 좋은 밤나무를 기쁜 마음으로 찾아내서 그것을 연구하고 파악한 후에 감각적 쾌락을 느끼며 다루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밤나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걸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파악하여 오직 물질로서 나무 그 자체, 공예의 대상인 나무를 사랑하는 일이다.
말은 내 일이고 내 것이다. 말은 내 실타래이자 축축한 점토 덩어리이고 깎지 않은 목재 덩어리이다. 말은 속담에 나오는 것과 다른 나만의 마법 케이크다. 먹어도 여전히 내 수중에 있다.
판타지 문학은 여타 언어로 된 모든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지적인 면과 심미적인 면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 판타지 소설은,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완전한 이성의 산물이다.
현실도피라 하니 묻겠는데, 도피가 무슨 뜻인가? 실제 삶, 책임, 규율, 의무, 신앙심으로부터의 도피라고 의도한 것 같은데, 법적으로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측은할 정도로 무능한 이들이 아닌 이상 현실에서 탈출을 하겠다고 감옥으로 달아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탈출의 방향성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우리가 디스토피아에 대해서만 쓰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유토피아에 대해 쓰려면 어쩌면 음의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 귀향(Always Coming Home)>을 통해 그런 시도를 해본 적이 이다. 내가 성공적으로 해냈던가? 음의 유토피아라고 하면 용어상의 모순일까? 왜냐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유토피아는 모두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통제력에 의존하는데 음은 통제하려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은 강력한 힘이다. 그 힘은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슐러 르 귄,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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