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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Oct 16. 2020

과거의 내가 주는 위로

3년 전 인터뷰 음성파일

Blue coral (2020), 진청

내게 대학을 다니면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이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사람들이다. 우리 동기들은 같은 과 선후배들이나 타과생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정말 유별나게 잘 뭉치고 돈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여학우들이 졸업할 즈음, 그러니까 삼 년 반쯤 전에, 우리는 우리만의 졸업앨범을 만들기로 했다. 대학교의 졸업앨범은 웬만한 사전보다 두꺼운데 반해, 실제로 우리의 사진은 고작 한쪽 정도에 밖에 들어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의 진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도록, 개인별로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해서 책으로 묶어내자는 아이디어였다.


가장 활발하고 두루두루 친한 동기 네 명을 인터뷰어로 선정하고, 사진을 잘 찍는 동기 두 명을 사진사로 선정해 서른 명이 넘는 동기들이 모두 자신의 개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했다. 나는 '작가' 콘셉트로 내 그림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즈음 졸업앨범을 기획한 홍보부 부장이 바빠지는 바람에 실제로 출간을 하진 못했지만, 사진과 인터뷰 내용은 모두 남아있다.


인터뷰 이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취직을 하고 퇴사를 하고 많은 일들을 있었다. 그래서 이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동기와 저녁을 함께 먹다 문득 생각이 났다. 마침 그 동기가 나를 인터뷰해준 인터뷰어라, 혹시 인터뷰 음성파일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봤다. 다행히 동기가 파일을 보관하고 있어서 내게 보내줬다.


집에 가서 음성 파일을 들으려고 재생을 눌렀는데 얼마 듣지 않아 자꾸 눈물이 나서 계속 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중지시키고 세수하고 침대에 누웠다. 얼마간 누워있었는데 잠이 오지 않아서 이번엔 중간에 끄지 않고 듣기로 했다.


다음은 30분짜리 인터뷰 중 꿈에 대한 내용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구어라 글로 옮겼을 때 다소 어색한 느낌이 어쩔 수 없이 있다.)


인터뷰어:

"장차 뭘 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가능성과 준비 정도를 생각하지 마시고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나:

"저는 일단은 취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 번도 회사가 저의 최종 목표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아 물론 회사에서 꿈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 꿈은 회사에서 이룰 수가 없는 꿈이에요.


그 꿈이 뭐냐면, 저는 제가 전공했던 것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평생 글 쓰고 그림 그리면서 살고 싶은데, 현실적으로는 프리랜서로 대학 졸업하자마자 할 수가 없으니까.


일단 돈을 벌고, 그 다음에 유학을 가든, 뭘 하든, 그림책 같은 것도 많이 그리고 프로젝트 같은 것도 많이 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3년 반 전부터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 줄은 전혀 몰랐다. 그림책 작가라는 꿈은 출판사를 다니며 서서히 키우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이때부터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줄이야.


자기 전에 웃다 울며 파일을 세 번 정도 돌려 들었다. 다음 날 엄마한테도 녹음파일을 들려줬는데, 신기하다고, 이 정도면 거의 예언자라고 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감정은 안도였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오래전부터 꿈꾸고 준비해온 길이구나. 많이 돌아왔고, 지금도 어려움 투성이지만 그래도 방향만큼은 잘 지켜 걷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부쩍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어려웠는데, 과거의 내가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꿈을 말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없는 위로가 되었다.



인스타그램: @byjeanc

웹사이트: https://www.artbyjea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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