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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Oct 21. 2020

느리게 물들이기

천연염색 공방 일지

2015년 여름방학은 통째로 천연염색 공방에서 작업을 하며 보냈다. 벌써 5년 전이지만, 찌는 듯한 더위와 싸우며 수박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작업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대를 사는 내게 천연염료로 염색을 한다는 천연염색은 용어부터 개념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러나 막상  벌레나 꽃 같은 천연염료에 천을 담가 색을 내보기 시작하니 정말 신기했다. 정해진 몇 가지 염료로 수백 가지 색을 낼 수 있다니, 색을 만들고 쓰기 좋아하는 내게는 딱 맞는 기법이었다.  


천연염색은 물을 많이 쓰는 작업이라, 전용 배수시설 없이 대량으로 작업하기는 어렵지만, 소량으로 한다면 집에서도 어느 정도 작업 가능하다.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느린 작업 과정과 약간의 악취를 참을 수 있다면, 천연염색은 색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천연염색 작업 일지 (2015), 진청


천연 염색의 순서는 간략하게 다음과 같다.

1. 염색하기

(건조)

2. 매염하기

(건조)

3. 수세하기 (물로 씻기)


1번에서 2번, 2번에서 3번으로 넘어갈 때는 반드시 건조를 시킨 후 작업해야 한다. 덜 마른 상태로 작업을 할 경우 색감이 빠진 상태로 염색이 될 수 있다.


염색은 뜨거운 온도에서 가장 잘 된다. 염료를 끓인 후 체에 거른 물로 염색한다. 염색할 천을 넣고 10분에서 15분 정도 조물조물 주무른다.


매염은 염료가 섬유에 잘 붙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매염제로는 일반적으로 백반, 가성소다, 철이 사용되며 각 원료마다 적합한 매염제가 다르다. 매염에 따라 색이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서로 다른 매염제를 사용할 경우에는 작업하다 물이 튀어 얼룩이 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매염은 보통 10분 정도 진행한다. 다만, 가성소다에 너무 오래 담가두면 색이 빠지고 철은 너무 오래 담가 두면 진해질 수 있다. 철은 약간 물이 노래질 정도로만 넣으면 되고 백반은 물이 약간 불투명해질 정도로 넣으면 된다. 가성소다는 철보다도 소량 넣어야 한다.


수세는 염색한 원료를 물에 담가 두는 걸 뜻한다. 최소 30분 이상 진행해야 안정적으로 색을 얻을 수 있다.


다음 사진은 여름 동안 천연염색을 공부하면서 만들어둔 색 샘플들이다. 한 가지 염료로만 낸 단색도 있고, 한 염료로 우선 염색한 후 매염과 수세의 과정을 거쳐 다른 염료에 다시 담가 만든 간색들도 있다. 간색을 만들 경우에는 염료를 섞어서 한 번에 염색해서는 안되고, 번거롭지만 한 번에 한 색씩만 염색해야 한다.

천연염색 일지에 모아둔 샘플 (2015), 진청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염료는 다음과 같다.


붉은 계열:

소목 / 홍화 / 오미자


노랑 계열:

괴화 / 울금 /치자


푸른 계열:

쪽 / 쑥


간색(주황):

치자+홍화


간색(초록색):

쪽+울금 / 쪽+치자


간색(보라색):

쪽+홍화 / 쪽+자초 / 자초


갈색 계열:

정향 / 오리목 / 오배자 / 빈랑자 /종대황 /가자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다시 이런 시간이 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천연염색만 하며 보낸 시간들이었다. 한국인이고 미대생이지만, 한국예술은 오히려 낯설었던 내게 전통색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경험이다.


대대적으로 쪽물을 만들고 염색한 날, 공방 마당에 넓게 줄을 치고 쪽물을 들인 모시천을 줄줄이 걸어두던 날이 특히 생각난다. 마당 중앙에 서있자니 사방에는 쪽색, 위로는 파란 하늘이 있어서 온 세상이 푸른색으로 물든 것 같았다.


내가 느낀 천연염색의 가장 큰 장점은 작업을 하며 지구와 연결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제작된 안료나 염료가 아니라, 땅에서 난 재료 그대로를 염료로 사용해 염색을 하고, 이를 작업에 사용하다 보면 내 몸과 내 작업이 장애물 없이 이 땅과 연결된 듯한 신기하고 독특한 느낌을 받는다.



인스타그램: @byjeanc

https://www.instagram.com/byje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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