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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Dec 26. 2020

윤미향 의원의 와인 모임과 길원옥 할머니


윤미향 의원의 와인 모임 사진이 또 한 번 당혹스러운 불편함을 일으켰지만, 이번 논란 역시 민주당의 엄중 경고라는 그럴듯한 시늉과 함께 슬그머니 넘어가는 느낌이다.

     
당이 엄중 경고했다는 뉴스를 듣고, 그녀가 이미 국회의원이며 따라서 책임 추궁의 주체도 정당이 담당하는, 그녀의 변화된 신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녀의 언행에 대한 상식적 질타와 시민의 화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무엇보다 위안부 피해 역사에 그녀가 내고 있는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그녀는 지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앞세워 부당하게 모금을 했고 그 돈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스스로 자부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아온 그녀의 활동이 실은 할머니들을 이용한 사적 욕망 채우기였을지 모른다는, 만약 사실이라면 몹시도 참담한 진실의 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그녀는 와인 파티 사진을 올렸고, 이렇게 설명했다.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를 생각하며 모임을 가졌다”     

코로나 시국에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는데 비판이 모아졌지만, 코로나가 없었다면 이런 모임을 해도 괜찮은 걸까?  모이지 말라는데 모였다는 거보다 훨씬 더 본질적으로, 코로나와 무관하게 엄중히 따져봐야 할 매우 의미심장한 행동이다.


코로나 탓에 오히려 그녀의 기묘한 행동은 축소 비난받는 것 아닌가,, 심한 불편함을 감출 수 없다.      


이런 가정을 한번 해보자.      


내 생일에 어떤 사람들이 나 모르게 모여서 술 마시고 놀고 나서는, 나를 생각한 자리였다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닌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질(?)하는 사진을 나중에 난 우연히 보게 됐고, 나를 생각하는 파티를 자기들끼리 즐겼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나는 어떤 기분일까?

       

그들은 왜 나의 생일 축하를 내가 아닌 남들에게 얘기할까, 그들은 왜 자기들 모임에 나를 끌어들이려 할까, 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지 않을까?      


나를 이용한 것이며 내 이름을 판 것이다. 날 이용하고 내 이름을 팔아서 그들은 어떤 이익을 노리고 도모한 것이다.

아마도 윤 의원은 자신이 길원옥 할머니를 지원하는 활동을 해왔다는 과거를, 재판을 앞두고 세상에 다시 한번 굳이 알리고 싶었으리라. 그렇게 해서 자신의 재판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어느 지점을 획득하고 싶은 강력한 욕구에 휩싸였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렇다.... 와인 모임 사진이 불편하게 다가온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윤미향 의원이 길원옥 할머니를 이용하고 이름을 팔고 그래서 뭔가를 얻으려 하고 있다는, 아무렇게나 할머니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그 느낌 때문이다.


할머니를 이용해 사익을 취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면서, 그녀는 또 할머니를 이용하는 행위를 하고 있구나,, 바로 이 의심의 지점에서 불쾌함을 느끼고, 절망하게 되고, 마침내는 일본 우익들의 집요한 반발과 선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일본 우익들이 맹목적으로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고 과거를 왜곡한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실은 정반대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 심각성을 알리는 쪽도, 반대로 부정하는 쪽도, 일본인들은 매우 열심히 연구하고 따져보고 있다.


그들의 논리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조선인 위안부는 강제로 끌려간 여성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간 직업적인 ‘매춘’ 여성이다, 이 여성들은 가난한 집의 딸들로 부모가 업자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고 흔했던 것은, 조선에 과거부터 내려온 ‘기생’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은 여전히 이런 기생문화, 즉 여성을 사고파는 문화가 만연해있다”      

이것이 일본 우익이 위안부 문제와 한국을 대하는 사고의 기본적인 토대다.

아베 전 총리는 젊은 의원 시절 이렇게 말했다.      

“위안부로 억지로 끌려가는데 가족들이 아무 말 안 한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 한국에는 기생문화가 있어 이런 일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이 발언은 그냥 망언이 아니라 일본 우익들의 사고 구조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압축적인 진술이다.      


딸들을 팔아먹는 조선에서 가난하고 취약한 여성들을 이용해 부모와 업자들이 이득을 취하는 그런 야만적인 모습을, 그들은 계속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 여성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이용하고 이득을 취했다고 조롱하는 그들에게, 윤미향 의원은  지금 매우 흥미로운 먹잇감을 제공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선전해왔다.      

“한국의 위안부 지원 활동가들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어야, 지원 활동가의 영향력이 올라가고 이를 발판으로 출세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할머니들을 불행한 처지에 몰아놓고 끊임없이 이용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고 있다...”     

위안부의 출현부터 지금까지 피해 여성들을 이용하고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그들의 선전에 또 하나 전형적인 사례로 윤미향 의원이 등장한 셈이다.

윤미향 의원은 이런 프로파간다에 답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분명하다. 재판에 성실하게 임해 진실을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며,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감히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그녀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며, 최소한의 상식적인 예의를 갖추는 길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을 끝까지 이용하려 한다는 힐난을 제발 더 이상 듣지 않기를 바란다.      

토착왜구란 표현을 결코 좋아하지 않지만 토착왜구가 뭐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식민지 시대 피해자를 모욕하는 일본 우익들이 마음속으로 고마워하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그 사람들이  토착왜구 아니고 뭐겠는가?  

피해자들을 이용하는 사람은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반드시 그런 정의가 살아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피해 할머니들의 지난 삶은 아무리 봐도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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