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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폭포·시장·사찰이 자리한, 홍제천 자전거여행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폭포 포방터시장 옥천암 홍제천

by 김종성
1.jpg 북악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정다운 물길 홍제천 / 이하 ⓒ 김종성

홍제천은 북한산 형제봉에서 발원하여 서울 서대문구 동네를 적시며 한강으로 흘러가는 길이 14㎞의 소담한 도심 하천이다. 홍제천 천변길엔 사람들의 삶이 가까이 보이고, 정겨운 풍경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상류지역으로 갈수록 개천가 양편에 작고 낮은 집들이 올망졸망 들어서 있어 더욱 정답다.


'널리 인간을 구제한다'는 뜻을 지닌 홍제천(弘濟川)의 정다운 우리말 이름은 '모래내'다. 상류인 세검정의 맑은 냇물이 흐르면서 모래가 많아지고 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 내려간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대동여지도에는 사천(沙川) 이라 적혀 있고, 사람들은 모래내라고 불렀다. 하천 중류에 오래된 전통시장 모래내 시장(서대문구 남가좌동)이 있다.


다슬기, 재첩 조개가 사는 도심 하천

2 (1).jpg 여름 한철 풍성해지는 홍제천

도심 속 작은 하천들이 대개 그런 것처럼 도심개발로 인해 홍제천도 물이 마르게 되었다. 게다가 1999년 내부순환로 교각이 하천 위를 지나면서 더욱 심한 건천이 되고 말았다. 이에 서대문구는 인위적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등 하천을 살리기 위한 개발을 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송수관을 통해 하루 4만여 톤의 한강물을 홍제천으로 끌어올린 뒤 다시 한강으로 흘러가도록 하고 있다.


홍제천은 여름한철 옛 모래내 모습을 한 풍성한 하천이 되는데 장맛비와 소나기 덕분이다. 왜가리, 백로, 잉어들이 노니는는 맑디맑은 물에 보드라운 모래톱까지 생기면서 하천이 풍요로워진다. 도심 속 자연 피서지가 따로 없다. 더욱 놀라운 건 섬진강 같은 모래 많은 강물에 사는 다슬기와 재첩 조개까지 나타난다.

3.jpg 모래 많은 맑은 강물에 사는 재첩 조개

남녀노소 동네 주민들이 바지를 걷고 물에 들어가 조개를 잡느라 희희낙락 신나는 표정이다. 지나가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옛 시절이 떠오르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구경중이다. 신발을 벗고 하천에 들어가 허리를 굽히고 조개를 줍는 주민들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 풍경이다.


과거 여름철 물이 불어난 하천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 수제비, 어죽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과 함께 먹곤 했던 ‘천렵’이 떠올랐다. 조막만한 손에 작은 조개와 다슬기를 올려놓고 자랑스레 보여주는 아이들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사라졌던 생태계가 이렇게 되살아나다니, 자연의 조화가 참으로 놀랍다. 섬진강에서 보았던 다슬기와 재첩은 모두 청정 일급수에서 사는 생물들이다. 자연의 깜짝 선물 같아 반갑기만 하다.


유명 관광지가 된 홍제폭포


6.jpg 홍제폭포와 전망 테라스

홍제천 중류에 조성한 폭포마당은 인공폭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과 잘 어우러져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높이 25m, 폭 60m에 달하며 도심 속에서 보기 드물게 자연미가 아주 잘 살아있다. 폭포 앞 2층과 3층 높이에 ‘수변테라스 카페’가 생겨 전망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커피 한 잔 하며 '폭포멍' 하기 좋다. 카페 옆에 자리한 작은 구립도서관에서도 통유리 창을 통해 폭포가 잘 보여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겠다. 폭포 일대 풍경이 예뻐 입소문이 났는지 외국인 관광객들도 흔하다.


카페에서 보이는 폭포 옆으로 물레방아와 함께 안산과 숲이 희끗희끗 보인다. 폭포 오른쪽에 난 징검다리를 건너 3분이면 나오는 ‘연희숲속쉼터’다. 10,000㎡(약 3천 평)의 쉼터는 아담하고 잘 가꿔진 비밀의 숲속정원 같다. 허브정원과 벚꽃마당, 숲속 쉼터, 잔디 마당, 팔각정자 등이 있어 꽃구경하며 쉬어가기 좋다.

11.jpg 외국인들도 찾아오는 명소가 된 홍제천 폭포

연희숲속쉼터는 안산으로 가는 들머리로 '안산 자락길'이 이어진다. 산 모양이 안장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한문으로 안장 안자를 쓴 안산(鞍山), 해발 296m의 나지막한 이 산은 조선시대 인조 임금을 살린 산이기도 하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쫓아내고 즉위한 지 일 년 후. 반정을 주도했던 신하들에게 내리는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무장 이괄이 난을 일으킨다.


'이괄이야 말로 병조판서 감'이라는 칭송이 나올 정도로 반정을 성공시킨 전위대 역할을 했지만, 겨우 2등 공신에 병조판서는커녕 궁벽 진 변방으로 발령이 난 것. 승승장구한 이괄의 반란군은 곧 서울을 점령했고 인조는 창경궁을 빠져나와 반란군을 피해 도성을 버리고 공주까지 파천하는 수모를 겪었다.


정권이 다시 교체될 위기 속에 안산을 탈환하고 진을 친 정충신의 관군이 지형적 이점을 살려 안산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반란군과의 일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반란군은 도주하였고 결국 자중지란으로 궤멸되었다.


산이 아닌 물가에 자리한 사찰, 옥천암

13.jpg 복개되었다가 50여 년 만에 이어진 '열린 홍제천길' 홍제유연

하천길은 실내공간인 520m의 '홍제유연'이라 불리는 열린 홍제천길을 지나기도 한다. 과거 유진 맨숀과 내부순환도로를 짓기 위해 복개(하천이 흐르는 위를 콘크리트로 덮는 것)공사로 인해 단절구간이었다가 무려 50년 만에 다시 이어진 길이다. 복개천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만든 길이 아니라, 지하 복개천 옆으로 산책로와 자전거 길을 냈다.


유진 맨숀과 내부순환도로를 지지하던 100개의 기둥이 있는 비밀스러운 지하 공간 사이로 예술이 흐르자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기둥들이 삭막한 복개천 속내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예술적 영감을 주는 소재로 승화했다. 여기에 잔잔한 음악까지 틀어놓아 색다른 공공예술을 접하게 된다.


홍제천 길엔 이름도 특이한 ‘포방터 시장’이 있어 꼭 들르게 된다. 이곳 일대에 예전부터 포병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웬 군부대가?' 싶었는데 시장 상인 아저씨는 저 앞에 청와대가 있는 북악산을 가리키며 이 부근이 옛 부터 수도방위의 중요한 지역이었단다.

14.jpg 재밌는 이름의 '포방터 시장'

매주 토요일마다 여러 이벤트가 펼쳐지는 장터가 열린다. 하천 길을 달려오느라 출출했는지 시장골목 ‘이모네 분식’에서 먹은 평범한 순대와 떡볶이가 꿀맛이었다. ‘커피볶는 김여사’네서 커피를 마시다보면 북악산으로 흘러가는 홍제천의 정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포방터 시장 인근 천변가 절벽 밑으로 작은 암자와 누각이 보인다. 옥천암(玉泉庵, 서대문구 홍은1동) 이라는 아담한 절이다. 산속이 아닌 하천가에 있는 이채로운 암자라 그런지 단번에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곳이다. 오늘날처럼 주변 동네가 도시화되기 전만해도 이곳은 옥같이 맑은 물이 흘렀단다.


많은 사람들이 맑고 깨끗한 이 샘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 도성에 있는 남녀들이 줄을 서서 물을 마셨다고 하는 기록이 있어서 절 이름 또한 옥천암으로 지었다고. 홍제천의 상류지역이라 물이 더욱 맑았으리라.

15.jpg 물가에 자리한 절, 옥천암

이 절은 사찰 자체보다 높이 10m의 바위에 새겨진 관음보살상으로 더 유명하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구제하는 매우 대중적인 보살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민간에서 많은 추앙을 받던 불상이기도 하다. 특히 이 불상이 있는 곳은 따로 문이 없어서 아무 때나 찾아와 기도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기도 하다.


관음보살상 뒤편 붙임바위 아래 앉아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부처님 앞에서 하는 기도만큼이나 간절해 보였다. 기성종교의 시각엔 미개한 신앙 혹은 미신이라 치부하겠지만, 바윗돌이나 고목나무·바다(용왕)·심지어 역사 속 장군 등을 영적 매개로 하는 민간 신앙엔 한 가지 큰 미덕이 있다. 자기가 믿고 추앙하는 신이 타인과 다르다하여 그를 배척하고 전쟁까지 벌이진 않는다는 거다.

17.jpg 너럭바위가 인상적인 세검정

옥천암을 지나면 숙종 45년 (1719년)에 만든 탕춘대성의 출입문 홍지문(弘智門)과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사이로 홍제천 물이 콸콸 흘러나온다. 탕춘대성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하여 세운 성곽으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이곳 홍제천 상류는 도시에선 보기 드물고 자연적인 개천 풍경을 보여준다. 거친 바위들과 나무 많은 언덕, 옛사람들의 정자, 성벽, 수문,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 같은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 남아있다.


날아갈 듯 너른 바위 위에 올라앉은 세검정 정자는 그 정점이다. 북한산과 인왕산, 북악의 산세가 겹칠 듯 맞대고 있다. 세검정(洗劍亭)은 한자 이름대로 조선시대 인조가 이귀, 김류 등 부하들과 함께 반정을 모의하며 칼을 씻은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세검정은 더 오래전부터 세초의 현장이었다. 세초(洗草)는 원고지를 씻는다는 뜻으로, 조선왕조실록 편찬에 사용되었던 사초(史草)와 원고들의 누설을 막기 위한 작업을 말한다.


세검정 인근에 종이 만드는 일을 담당하던 국가기관인 조지서(造紙署)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종이를 다시 쓸 수 있게 재생산했다. 정말 세검정 앞에서 세초를 했음직한 평평하고 널찍한 너럭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세검정 앞에 안내 글과 함께 정자와 주변 풍경이 펼쳐진 겸재 정선의 부채그림 <세검정>이 전시돼 있다. 세검정은 1941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1977년에 복원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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