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무주군 무주 구천동 백련사
무주 하면 구천동이 저절로 따라붙을 정도로 무주를 대표하는 명소다. 구천동을 품은 덕유산 국립공원은 전북 무주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덕유산 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무주 구천동 계곡은 덕유산 국립공원 내 경승지(경치 좋은 명승지) 무주 33경을 품은 무주의 자연 명소다. 왠지 이름만 들어도 신비로움과 깨끗함이 묻어 나오는 구천동 계곡에는 한여름에도 서늘함을 느낄 정도로 차고 맑은 물이 흐른다.
구천동 계곡은 덕유산의 아름다운 대(臺), 소(沼), 담(潭), 폭포를 아우른다. 무주 33경인 은구암, 수심대, 와룡담, 함벽소, 만조탄, 청류동 등 다채롭고 다양한 풍경과 계곡 물소리가 여행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대(臺)는 높이 쌓아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든 곳, 담(潭)은 물이 고인 깊은 못,
소(沼)는 땅바닥에 우묵하게 패여 물이 고인 곳, 탄(灘)은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거나 하여 물살이 세차게 흐르는 여울이나 물가를 뜻한다. 계곡길을 걸어보니 국내 숱한 계곡 중 최고의 명품 계곡으로 꼽힐만하다. 약 5km의 계곡길을 지나면 수고했다는 듯 여행자에게 쉼터를 내어주는 사찰 백련사를 만나게 된다.
구천동(九千洞)이라는 명칭도 흥미롭다. 여기서 동(洞)은 예부터 동네 이름이 아니라 '골짜기 또는 계곡'을 뜻한다. 구곡양장으로 구불구불 흐르는 깊은 계곡에는 한때 절집이 14곳이나 있었는데, 수행하는 불자가 9000명이나 된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향적봉기>라는 기행문에 나오는 기록이다. 향적봉은 덕유산의 정상 봉우리 이름이자 무주 33경이기도 하다.
덕유산(德裕山, 1614m)은 특유의 넓고 넉넉함 품으로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물줄기를 감추고 있다. 산자락 계곡길을 걷다보면 이름처럼 산세가 부드럽고 거칠지 않아 사람처럼 덕이 느껴지는 산이다. 무주 구천동 계곡은 설악산의 천불동계곡과 지리산의 칠선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4대 계곡의 하나라고 한다. 구천동에 살던 옛 주민들이 오가던 계곡길에 ‘어사길’을 조성해 놓아 거닐기 더욱 좋다.
무주 구천동 계곡은 덕유산 국립공원 무료 주차장외에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수도 있다. 슈퍼마켓이 매표소 역할을 하는 구천동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 무주 구천동 계곡과 함께 다양한 맛집, 편의점에서 게스트하우스와 캠핑장, 카라반이 모여 있는 구천동 관광특구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모두 계곡의 물소리와 산새소리가 들리는 청정 자연 속에 자리해 있다. 구천동 관광특구에 있는 계곡은 물놀이를 할 수 있어 무더위를 식히기 좋다. 한 여름날 이곳은 천연 물놀이터가 된다.
구천동 관광특구를 지나면 ‘어사길’이라 불리는 옛 주민들이 다니던 계곡길이 나타난다. 어사 박문수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옛사람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오솔길과 돌계단은 그대로 살리고 인위적인 구조물은 최소화해 숲과 계곡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무주 구천동 33경 중 16경 인월담에서 32경 백련사까지 약 5㎞ 구간이다. 인월담, 호탄암, 금포탄 등 이름 붙여진 경승지나 그렇지 않은 곳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시원한 경치가 이어진다.
덕유산 숲속 구천동 계곡 '어사길'과 사찰 백련사를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가 시외버스터미널, 무주구천동관광안내센터 근처에서 운행하고 있다. 출발시간은 0910 1040 1300 1430 1600시 이며 연중무휴 운행한다. 전기차인 셔틀버스를 타고 백련사까지 간 다음, 사찰을 돌아보고 구천동 계곡 '어사길'을 걸어 내려왔다.
울창한 숲이 드리운 그늘과 청아한 계곡 물소리 덕에 흐르는 땀조차도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끼 덮힌 계곡 바위과 참나무, 소나무 어우러진 숲이 자아내는 경치가 일품으로 말을 잊고 거닐게 된다. 구천동 22경 금포탄에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계곡 물소리를 감상하게 된다. 여울진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심산유곡의 바람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면 마치 탄금소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가 평평한 바위에 앉아 쉴 때 들려오던 청량하고 기분 좋은 물소리는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1급수 물에 사는 금강모치, 쉬리를 비롯해 덕유산의 깃대종 수서생물들이 산다니 계곡물을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깃대종는 유엔환경계획이 만든 개념으로,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중요 동·식물을 뜻한다. 물고기대신 돌 위에 앉아있는 귀여운 다람쥐와 눈이 마주쳤다. 동물과 생명을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기쁜 순간이다.
구천동 계곡길은 백련사로 이어지며 완만한 경사가 지속되는데, 나무 데크와 야자 매트 덕분에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길 곳곳에 담겨있는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매월당 김시습이 관군을 피해 안심하며 쉬었다는 ‘안심대’가 그렇고, 맑은 물에 자신을 비추며 심신을 가다듬었다는 ‘명경담’ 또한 그러하며, 속세와 연을 끊고 깨우침을 얻는다는 ‘이속대’가 그러하다.
계곡가 여러 경승지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백련사에 닿는다. 덕으로 만인을 살릴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덕유산(德裕山 1,614m)이 품은 명승지 구천동 계곡을 따라 향적봉으로 오르는 중턱에 자리 잡은 아담한 사찰이다. 신라시대 처음 지은 고찰로서 많은 고승들이 수도 정진하던 곳이었다.
사찰 일주문 옆에 여러 개의 ‘부도탑’들이 눈길을 끈다. 부도(뜰浮 죽일屠)는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일종의 무덤으로 작은 탑 모양을 하고 있다. 사리탑(舍利塔), 승탑(僧塔)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전각들은 6·25전쟁 때 불타버린 것들을 1962년 이후에 다시 건립하였다. 이 깊은 산속까지 전쟁의 피해가 끼쳤다니 새삼 전쟁의 참혹함을 깨닫게 된다. 하얀 연꽃이 피어났던 장소에 절을 지었다 하여 백련사(白蓮寺)라는 이름이 지어 졌다. 연꽃은 한여름 뙤약볕을 받으면서도 화려하게 피는데다, 흙탕물(세속)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습성이 있어 불교와 부처의 상징이 되었다.
사찰에 있는 불전 가운데 토속 신앙이 담겨있는 삼성각(三聖閣)도 꼭 가보게 된다. 산신령, 무속신, 호랑이 등 다양한 민간신앙의 신(神)들을 모신 그림이 흥미롭다. 그림들은 절마다 조금씩 다르다. 삼성(三聖)은 산신(山神)과 칠성(七星), 독성(獨星)을 의미한다. 불교가 전래되기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믿어오던 샤머니즘과 도교를 배척하는 대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 포용한 것이다. 불교가 오랜 역사와 함께 한국인의 민족종교가 된 비결이기도 하다.
사찰 경내로 들어서니 은은한 풍경 소리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스님의 목탁소리만큼이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소리다. 평소보다 시간이 몇 배나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다. 비록 불자는 아니지만 고즈넉한 절에서 명상과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음이 절로 차분해진다. 대웅전 맞은편으로 보이는 산 능선이 유려하다.
전각 툇마루에 앉아서 마시는 물 한 모금에 피로가 순식간에 풀린다. 불전이 모여 있는 널찍한 절 마당으로 들어서자 바깥세상과 다른 질감의 공기가 느껴졌다. 절 한편에 덕유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소리가 경쾌하다. 경내가 넓어 산책하기 좋고 이어진 산길을 따라 향적봉으로 오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