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봄꽃이 만발한 북한산 둘레길(2코스)을 걸어 내려오면 수고했다는 듯 선물 같은 곳이 기다리고 있다. 수유 419카페거리(서울 강북구 4.19로 97)로 국립 4·19민주묘지가 거리에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국립 4·19민주묘지 입구부터 근현대사기념관까지 약 600m 길이의 거리로 4월에 찾아가면 더욱 좋겠다. 2017년 9월 경전철 우이신설선 4·19민주묘지역이 개통된 뒤 방문객이 늘면서 일대 상권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가정집을 개조해 예쁜 정원과 아늑한 방으로 꾸민 카페부터 갤러리에 온 듯 예술작품같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 별의별 빵을 만날 수 있는 수제 베이커리 가게, 1층 야외테라스에서 3층 루프탑까지 전망 좋은 공간을 마련한 맛집·카페까지 다채로운 상점들이 거리 양편에 들어서있다. 419카페거리 바로 옆에 북한산 둘레길이 이어져 있어 봄날 숲속을 산책하는 즐거움까지 더해준다.
국립4·19민주묘지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부패, 독재 권력에 항거하여 싸우다 목숨을 잃은 분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4·19혁명으로 시민과 학생 186명이 사망하고 6,0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묘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원처럼 꾸며 놓아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산책을 하러 오는 친숙한 공간이다.
그날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1960년 3월 15일 치뤄진 제4대 정·부통령 선거가 우리 역사에 수치로 남을 정도로 기록적인 부정행위로 점철되자 시민과 대학생, 교복 입은 중고생까지 참여한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4월 19일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총을 쏘며 시위를 진압했으나 시민들과 학생들은 물러서지 않고 저항한다. 당시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를 강력 규탄하여 정권교체를 촉발하였고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4월 23일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부통령 당선자로 이승만 정권의 2인자, 후계를 꿈꾸던 이기붕과 부인 박마리아, 차남 이강욱(당시 연세대 2)이 육군소위였던 장남 이강석의 45구경 권총에 맞아 숨졌다. 이강석도 자살했다.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는 야심과 권력추구에서 남편을 선도한 사람이었다. 일제강점기때엔 YWCA에 적을 두고 김활란 등과 함께 징병 독려 등 친일 활동을 벌였다.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 유학을 했던 그녀의 권력의 원천은 이승만 부인 프란체스카였다. 46년 이화여대 교수, 대한부인회 회장, 이대 문리대 학장과 부총장, YWCA 회장, 대한여성회장. 이대 동문회와 이대 출신 사조직 ‘이수회’를 이끌며 정ㆍ관계와 군부 이대(부인) 인맥을 구축했다.
그렇게 마련한 자신의 권력을 이범석 윤치영 등 이기붕의 정적 제거와 출세 길 개척에 활용했다. 부부는 57년 장남 이강석을 이승만에게 양자로 보낼 만큼 권력에 탐닉했고, 이강석에게는 물려받은 야심과 권력 외에 실탄이 든 총이 있었다.
419카페거리 양편에는 로스팅 커피로 이름난 카페, 디저트 카페, 한식·파스타·버거맛집, 브런치 식당 등 수십 개의 가게들이 있다.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사방이 트인 거리와 그 주변으로 멋스러운 카페와 맛집들이 이어진다. 빈티지한 2층 전원주택을 개조한 맛집, 식물이 많이 있는 카페, 쭉쭉 뻗은 근사한 나무들이 반기는 야외 정원카페 등 하나하나가 예쁘고 개성이 있다. 대부분 테라스가 구비돼 날씨가 좋은 날은 야외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다.
화창한 봄날 카페를 찾아온 사람들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고, 사람들은 마치 오래된 친구들처럼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실내엔 노트북을 쓸 수 있는 콘센트와 와이파이를 지원해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카페와 맛집 모두 전용 및 공용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어 편리하다.
우리 생활에서 카페가 얼마나 주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카페는 단순히 커피나 음료를 파는 매장이 아니다. 카페의 본질은 커피라는 음료가 아니라 머문다는 행위와 공간이다. 회사원에게는 나른한 오후 한때의 휴게실이며, 시험을 앞둔 학생에게는 독서실이고, 책을 든 이에겐 멋진 도서관이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에겐 심심치 않은 대기실이며, 어떤 이들에게 작업실이자 회의실이다.
인간의 3대 욕구에 필적한다는 '빵욕' 때문인지, 전국의 맛집 거리 어디나 빵집이 있다. 419카페거리에서도 어느 카페나 다종다양한 베이커리를 맛볼 수 있다. 피넛버터스모어 쿠키와 무화과 스콘, 시나몬 롤, 당근 케이크, 인절미 크로와상 등은 맛도 맛이지만 예술작품을 보는 듯 눈도 즐겁다.
419카페거리에는 메뉴만 봐도 먹어보고 싶게 하는 맛집들이 많다. 곤드레 정식, 화덕 생선구이, 능이백숙, 동죽 조개를 넣은 짬뽕, 약초밥, 봄철 보양식 주꾸미 요리까지 특별한 먹거리가 입맛을 돋운다. 부모님과 함께 오는 손님에게 음식값의 10%를 할인해 주는 한식집도 있다. 카페거리 식당의 특징은 양도 푸짐하고 맛도 꽉 차있다는 점이다.
저녁식사로 두부 코다리찜 정식을 먹었는데 칼칼하면서도 달콤짭조름한 깊은 양념 맛이 꼬들꼬들한 코다리 속에 잘 배어 있다. 코다리 양념이 배어 들어간 두부는 맛깔난 조림요리가 된다. 명태는 한국인의 소울푸드(Soul Food)에 들어가는 물고기답게 별칭이 많다. 코다리는 명태를 반쯤 말린 것으로 완전히 말리면 북어가 된다. 생물은 생태,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여 포실하게 마르면 황태, 완전히 얼린 건 동태찌개에 쓰인다.
봄이 제철인 주꾸미가 들어간 음식도 먹어봐야 한다. 주꾸미는 ‘바다의 봄나물’이라 부를 만큼 영양이 풍부하다. 제철 주꾸미를 먹다 보면 입안 가득 바다 향기가 밀려온다. 먹거리를 고르는 즐거움까지 더해주는 곳이다.
419카페거리 끝에 자리한 근현대사기념관은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4·19민주혁명까지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오롯이 담은 곳이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 4월 혁명의 투사들이 소원했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상임을 알리고자 지난 2016년 설립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특정 인물의 영웅적 활동이나 사건에 집중하진 않는다. 애국선열들이 얼마나 모진 고초를 견뎌냈는지 보다는 역경 속에서 지키려 했던 가치에 주목한다. 그것이 순국선열이 남긴 진정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근현대사기념관 앞에는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감동적이고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 이시영 선생을 비롯한 이준·신익희·손병희·박헌영 선생의 동상이 눈길을 끈다. 그 가운데 심산 김창숙(1879~1962) 선생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됐다. 그는 일제강점기 임시의정원 의원, 군자금 모금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투옥 중 일제의 고문을 받아 걷지 못하게 된다.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하고 총장이 되었으나,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독재에 항거하다가 일체의 공직에서 추방당한다. 근현대사기념관 뒤로 순례길이라 하여 순국선열들의 묘소가 숲길을 따라 이어져 있어 걸어가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