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태국 방콕
떠남의 이유를 찾다
방콕의 번화한 거리 속, 나는 혼잡한 카오산 로드를 지나 한적한 카페에 들어섰다. 여행 중 가장 바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디를 가든 쏟아지는 사람들과 시끄러운 소음, 그리고 관광객들의 끝없는 행렬이 지쳐가던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그런 날씨 속, 낯선 곳에서 만난 카페는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카페의 모서리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책과 노트북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테이블 앞에서 그녀는 무언가 깊이 집중하고 있었다. 평범한 관광객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방콕이라는 도시의 활기찬 풍경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이 카페 자주 오세요?”
내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뇨, 방콕은 잠시 머무르는 중이에요. 몇 년째 여행을 다니고 있거든요.”
그녀는 이름이 '소피아'라고 했다.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몇 년 전부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몇 년 동안 여행을 하다니,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행은 내면을 찾는 과정
소피아는 그녀의 여정이 단순한 휴가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났어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떠난 거죠.”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가방 하나만 들고 세상으로 나갔다고 했다. 첫 목적지는 동남아시아였고, 지금은 방콕에서 잠시 쉬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마음 깊이 와닿았다. 나 역시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지만, 그녀 자신의 여행 방식은 나와 전혀 달랐다.
소피아는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왜 여행을 떠났나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왜 여행을 떠났지? 일상에서의 도피였을까? 아니면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을까?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한 내가 망설이는 동안,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처음 떠날 때 이유가 점점 달라져요. 중요한 건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삶의 소리를 듣는 법
소피아는 자신이 여행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의 소리를 듣는 법'이라고 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외적인 소음에 휘둘려요. 직장에서의 기대, 가족의 요구, 사회의 규범.. 하지만 여행은 그 소음에서 벗어나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줘요.”
그녀는 방콕에 머무르며 매일 아침 일기를 쓴다고 했다. 그녀가 보여준 노트에는 그녀의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건 나와의 대화예요. 여행을 하면서도 나를 잃어버릴 때가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죠.”
그날 카페에서의 대화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는 그동안 여행이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보고, 먹고,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피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여행은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자신과의 대화, 그리고 삶의 방향을 찾는 과정이었다.
떠난 후의 변화
그날 이후, 나는 방콕에서의 시간을 조금 더 천천히 보내기로 했다. 기존에 계획했던 관광지를 줄이고,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현지 시장을 한가롭게 거닐며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피아와의 만남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나의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9년을 다짐하며 나에게 편지를 적었다.
우리가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단순한 낯선 이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방콕에서 만난 소피아는 내 여행의 방향을 바꿨고, 더 나아가 내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행은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나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다. 방콕에서의 그날, 나는 소피아와의 대화를 통해 내 여행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