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MD 가 스트레스를 대하는 광기 어린 자세
S는 40대 초반이다.
아들 하나, 딸 하나의 어엿한 가장이자 아빠이지만, 나에겐 한 없이 장난치고 싶은 동생이자 후배이자 부하직원이다.
야리야리하고 나만큼이나 가녀린(?) 체형을 가졌지만, 물러서는 법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최근 S가 MD Part의 팀장급으로 입사하여 나를 조력하고 있다.
그는 브랜드 패션 Merchandiser(이하 MD)로 시작하여, 다양한 패션 기업에서 이력을 쌓으며 팀장으로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그 친구는 T이다.
대개 MD들이 T 인 경우가 상당수 많다.
재미로 MBTI를 들여다보며, 흥미로운 표현 방법 중 하나로 T, F, E, I 등의 표기 방법을 빌려온 것이니, 타당성 검토(?) 정도는 잠시 미뤄둔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떠한 데이터의 지표가 나타내는 엑셀 함수의 정확도는 당연지사다.
각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MD의 기본 자질 이기 때문이다.
패션의 맞고 그름을 숫자로 증명하는 직무가 MD 인 셈이다.
설사 그것이 편향적이라 할지라도 데이터가 그것을 가리킨다면, 그 또한 전략’이 될 수도 있다.
S는 이처럼 MD의 본질적인 정의를 관통하며 둘러싼 무수히 많은 일들과 과업 속에 단단하게 성장했다.
앙상한 뼈 틈사이까지 정교하게 T의 기질을 가진 그 친구와 나는 숨 가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우리에겐 카톡 한 줄의 답장 보내는 것조차 ‘사치’의 시간이다.
이렇게 헐떡이는 숨을 몰아쉴 때쯤 되면, 훌쩍 시간이 저만치 가 있다.
이렇게 치열한 시간만큼 결과도 아름답게(?) 이어진다면 좋으련만, 언제나 말처럼 쉽지 않다.
오늘도 우리는 실낱같은 희망의 데이터를 조회했다.
초라한 숫자를 마주했다.
내가 말했다.
하아. 야, 담배나 한 대 피러 가자.
예, 그러시죠.
라며 S 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떨구며, 패딩을 주섬주섬 입는다.
이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더니 사부작거린다.
주머니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꺼내 들더니, 그 자리에서 선 채로 읊조린다.
미친…!?

고개를 앞뒤로 떨구며, 나는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하염없이 무기력했던 한 순간이 진지한 시집 한 권에 무장해제됐다.
우리는 매일 차가운 숫자와 사람들에게 치인다.
사람들에게 느끼는 높은 온도가 있다면, 그것으로 ‘화’ 혹은 ‘경쟁’ 등이 불러오는 온도일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무심하게 내보이는 말도 안 되는 F 감성은 뒤로 나자빠지기 마련이다.
숫자와 시라는 건,
역설적이면서도 모순적이다.
하지만 너와 내가 시집을 보고 웃을 수 있고,
그 시를 한 줄 읽어낼 수 있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숫자가 [패션]이라는 장르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저 아무리 MD 라 하더라도,
패션이라는 울타리에 발을 들이겠다는 마음을 먹은 순간,
그 시간을 십 년 이상 버텨낸 과정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뱉어낼 수단이 있었다는 걸 방증한다.
가끔은 고단한 순간을 마주한다.
이 순간을 좀 더 의연하게 바라보며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흔들리지 않고 잘 붙들어 두는 기세가 필요하다.
그때마다 그 친구는 시집 혹은 또 다른 무언가를 통해 수혈받고 있었던 거다.
이처럼 ‘저 끝’에 있는 성향의 기질을 가지고 올 때, 놀라운 반전이 내 안에서 일렁이더라.
나 역시 꽤 높은 밀도의 T 기질을 가졌다.
나도 너의 ‘시집’에 마땅한 역할을 하는 무언가를 찾았다.
노래하기 • 춤추기
새삼 〈 음악 〉 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무엇’이었구나를 깨닫고 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오후 녁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 간다.
담배를 피우며 에어팟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따라서 흥얼거린다. 마음에 따라 나는 서슴없이 크고 작게 움직인다.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일상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지치는 순간을 어떻게 버텨내는지.
나만의 근거 없는(?) 철학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잘 노는 놈이 일도 잘한다.
라는 거다.
잘 노는 놈들 치고, 열정이 없는 놈을 못 봤다.
그 열정이 치기가 되는 놈들이 있고, 능력이 되는 놈들도 있다.
놀아 본 놈이 놀아 본 놈을 알아보고, 치기가 아닌 능력으로 치환되는 놈들은 눈빛과 태도부터 남다르다.
그 광기(?)를 허투루 쓰지 않는 그런 녀석들,
나는 그 놈들을 알아볼 수 있다.
S는 미친 듯이 놀았다 라기보다, 미친 듯이 놀고 싶어 했던 기질의 친구다.
그 기질이 건강하게 잘 뿌리내려, 여기에 나와 있다.
가끔 튀어나오는 엉뚱한 F로 본인 스스로와 타인에게 아름다운 에너지를 뿜어낸 거다.
이걸 여기까지 읽고 있는 너는 어떤 ‘놈’인가?
일과 일상의 선명한 구분은 의미없다.
지혜로운 녀석은 구분 짓기 보다 찾.는.다.
그 안에서 얼마나 조화롭게 나를 태울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