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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가 정신과 의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

장강명 작가님의 <먼저 온 미래> 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어떤 고통은 삶에서 제거 해야 하는 얼룩이 아니다. 그 고통은 삶의 일부이며, 우리의 삶은 순백이 아니다. 순백이어서도 안 된다.“


ai가 판단의 근거로 삼는 데이터는 팩트와 이성에 기반한 통계적 집합체일뿐, 사실에 결부된 복합적인 감정의 결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상대적이며 불안정한 것입니다.

‘내가 지금 우울증인가?’ 를 ai 에게 묻는다는 건,

‘나는 지금 행복한가?’ 혹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돼?‘ 를 ai 에게 묻는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이 고민들이 집단지성이나 통계가 즉답을 해줄 차원의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며, 견디어가면서 배우고 깨닫는 것이니까요. 내 인생은 통계속의 숫자나 n분의 1이 아니라, 유일하며 어떤 것과도 다른 것입니다.


평생을 미워했던 부모를 마침내 용서하고 흘리는 눈물, 10년을 죽일듯이 원망하고 싸웠던 부부가 이혼을 앞두고 상대에게 느끼는 ‘덤덤함’ 이나 미련을 ai 는 어떤 감정으로 평가할까요.

심장박동수, 얼굴표정, 모세혈관이나 자율신경의 항진점수로 그 감정을 정확히 측정할수 있을까요?


인간의 양심, 자책, 죄책감이라는 지표를 정량화 할수 없다면, ai는 때로는 불안이, 고통이 인간의 삶과 가치를 성장시킬수 있다는 개념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겁니다.


인간이 가진 비합리적인, 비이성적인 숙고와 되새김.


이것이 저는 ai가 도달할수 없는 인간의 가치라고 믿습니다.


나의 감정과 성장은 코딩이나 귀납적 통계의 결과값이 아닙니다. 나의 기질이 경험과 환경을 만나 수천수만의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화학작용, 특이점입니다.

그 경우의 수가 무한에 가깝기에 아직도 뇌에 관련된 연구가 한없이 불완전한 것입니다.


chatgpt 에 ‘나 오늘 참 힘들었어, 억울하고 우울했어’라는 말을 입력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대답은 미러링과공감입니다.


우리가 그 공감에 조금이라도 울컥하는 것은 ai 의 기술력에 놀라서가 아니라, 그 간절했던 위로의 말을 실제로 해주길 바랬던 누군가를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ai 는 누군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길 바랍니다.


내 불안이, 나의 우울이 나를 지탱하고 살릴수 있다는 모순. 그 어렵고도 내밀한 마음을 공유하고 위로할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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