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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객여행자 Aug 22. 2017

현실 광고 회사에는 없는 3가지

2000년도 영화 '왓 위민 원트'를 다시봤더니 이상했던 것들


 What Women Want (2000)

https://youtu.be/f0nxuJVotVg

이 오래된 영화를 요즘 주니어급의 친구들이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또래와 선배들은 아마 다들 이 영화를 봤을 겁니다. 전형적 마초인 광고회사 직원(멜 깁슨 분)이 감전 사고로 인해 여성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과 사랑 이야기를 하는 로맨틱 코미디죠.


이 영화가 개봉한 2000년에는 광고회사에 가면 누구에게나 나이키 광고를 만들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고 오롯이 나만의 능력으로 멋들어진 PT와 함께 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광고기획자는 주변의 음모와 환경을 해쳐나가고 결국 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뛰어난 아이디어를 '혼자' 내고 성공을 합니다.


광고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처음 느꼈던 영화와는 전혀 다른 3가지가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1. 상상력이 마구 샘솟을 듯한 Dream Office

물론 한 때 1위 | 현재 3위의 뉴욕 광고대행사 사무실 설정이긴 하지만,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무실 내부 전경

예전에 직장 상사분에게 신사동에 있는 광고 관련 회사가 몇 개나 있을까요?라고 했을 때 "한...  3만 개!"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광고 회사의 종류는 세분화했을 때 수십 가지가 되고, 그에 따른 외주처나 특정 업무에 특화된 회사를 다 포함한다면 정말 강남에만도 수백 개, 아니 천 개는 족히 넘을 듯합니다.


대부분 광고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를 위해 아름다운 인테리어와 생각의 크기를 더욱 넓힐 수 있는 복층 사무실, 고급스러운 가구들과 소품들이 있을 것 같지만, 이런 것들은 아주 일부 회사에서만 있는 일입니다. 대부분은 답답한 회의실과 작은 책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물론 최근에 작은 부티끄나 어느 정도 명성을 날린 회사는 내부 직원의 만족도와 외부 인재 영입을 위해 인테리어에 신경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저런 어마어마한 인테리어의 회사에 다니는 것은 개인적인 취향과는 너무나 먼 스타일이지만 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회사에는 인테리어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혹시 인테리어가 좋은 회사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광고회사에서 야근과 회의에 고통받다 보면 전혀 본인에게 베네핏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인테리어의 힘은 면접 볼 때, 첫 출근했을 때, 나의 괴로운 회사 생활을 숨기고 소셜 지인들에게 사진을 자랑할 때 정도겠습니다.


2. 아름다운 여성 상사와의 자유로운 Romance

먼저,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의 광고회사에 대부분 여자 대표님을 찾기가 힘이 듭니다. PR업계나 패션/뷰티 업계에서는 종종 찾을 수 있지만 아직 우리는 그렇게 좋은 근무환경을 갖고 있지 않네요.

'슬로운 앤 커티스'라는 가상의 광고회사에 새로 부임한 BBDO 출신 대표님이랍니다

대부분의 여자 직원들이 조금 더 남자 직원들보다 꼼꼼하고 센스 넘치고 성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약  60% 이상 여자 동료들한테도 눈치 보고 썼던 출산 휴가와 그 이후에 오는 경력 단절, 그리고 오랜 시간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수많은 야근과 주말 근무라는 환경적 요인이 팀장 또는 임원진까지 가는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게 또 하필 더 시간이 없다는 광고 회사라는 곳에 다니고 있지요.


시대가 많이 좋아졌다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갑과 을 문화가 존재하고 금요일 저녁에 전달해서 월요일 아침에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광고주부터 접대를 바라는 광고주까지 아직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대표님처럼 아름답게 회사에 다닐 수가 없습니다. 매일 하이힐과 H라인 스커트까지 입고 새벽까지 야근이라뇨! 어제 야근하고 아침에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 있는 제 앞의 후배 여직원의 사진을 지금 올리고 싶네요.


게다가 하루하루가 광고주와 외주처, 그리고 협업 부서와 함께 전쟁 같은 날을 보내고 있어 한 팀의 여성 멤버들은 이성이라기보다는 '전우'에 가깝습니다. 물론 우리 회사에서도 CC가 많이 탄생했고 결혼한 커플도 꽤 있지만 이렇게 자유로운 로맨스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새로 부임한 아름답고(잘생기고) 능력 좋은 보스와의 로맨스? 영화는 영화로 만족해야 해요 :)


3. 타깃들과 이야기만 해봐도 insight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Ability

나이키 광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고분분투가 아닌 옅듣기를 시전 중이신 주인공

극 중에서도 나옵니다. 프로이트는 죽는 순간까지 이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What women want?" 여성들의 마음을 아는 순간 세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여성들을 위한 나이키 광고를 만들기 위해 대강대강 돌아다니며 여성들의 마음을 듣습니다. 과연 주인공은 여성들의 마음을 듣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Insight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광고나 마케팅을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아이디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소비자들의 Insight를 얻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소비자 인사이트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는다고 파악되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설문 조사를 해도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는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모른다'라고 까지 이야기했죠. 마케터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엇을 원하게 될지 예측하고, 소비자들조차 모를 앞으로의 가까운 미래와 소비행태 시장의 흐름 등을 읽어 내야만 하죠. 당연히 지나간 과거에 일어난 일도 알아야 하고 현재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도 읽어내야 합니다.


제품이 좋은 것이 가장 좋은 마케팅입니다. 하지만 광고/마케팅은 이런 장르의 일인 것 같습니다.

최적의 조건은 아니더라도 광고와 마케팅은 앞날을 예측하며,
다른 브랜드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제품을 타깃에게 최적의 상태로 알리기 위한,
'인사이트'를 읽어내는 일.


물론 우리에겐 마음을 읽는 능력조차 없죠 ㅠㅠ


그 밖에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보면서 놀라웠던 점.

스토리보드 들고 뛰어다니는 CD

주인공은 이사를 노리고 있던 '국장'급이었구나.
그런데 팀원은 없이 매일 혼자 일하네?

왜 뉴욕의 3위 광고회사에서 저렇게 이상한 잉여 인력들이 많을까?

머리가 하얀 아저씨, 그냥 임원인 줄 알았는데 CD시네?
CD가 스토리보드를 막 들고 뛰어다니시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도 저렇게 광고회사에선 담배를 피워댔지.

저 회사에 야근은 몇 명의 뛰어난 임원들만 하고, 야근하는 것이 마치 열정의 척도라는 구시대적인 표현을 하는구나.


p.s. 오래된 영화와 광고는 여전히 좋을 수도 있지만 이게 뭐야?라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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