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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자룡 Oct 09. 2023

작은 일을 하지 못하면 큰일은 불가능하다.

큰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꾸준하지 못하다. 작은 일도 1년 이상 지속하지 못한다. 작은 조각이 모여야 꿈의 그림이 완성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작은 게 누적되지 않으면 큰 일을 할 수 없다. 의미있는 행동을 계속 해야 한다. 그게 가능하려면 심리적 마찰을 줄여야 한다. 마음의 거슬림이 크다면 지속하기 힘들다. 마찰이 강할수록 하지 않거나, 미루거나, 내동댕이처버린다. 할 일은 더 쉽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더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사람들이 옳은 행동을 지속하지 못하는 건, 자신이 만든 결과물이 초라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다. 과거와 달리 수십, 수백억을 태운 드라마와 영화를 거의 공짜로 보고 있다. 각자의 눈은 한없이 높아졌다. 나도 며칠 전에 넷플릭스에서 <켄칸 아슈라>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다. 실제 사람이 격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래픽이 넘사벽이었다. 예전에 이정도 퀄리티를 보려면 돈을 과금해야 했다. 혹은 볼 방법이 아예 없거나.  


이제는 넷플릭스 1달 결제를 하면 맘껏 배터지게 볼 수 있다. 이런 컨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무수히 쏟아진다. 이런 와중에 자신의 소소한 컨텐츠를 만드는 게 생각보다 초라하게 보인다. 자신의 것을 만들 때는 몰입하는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남들이 만든 결과물과 힐끗 비교하게 된다. 과거 경쟁은 동네에서 일어났다. 거기서 강하고 매력적이면 많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 단위로 경쟁이 일어난다. 적게 잡아도 한국 내에서 일어난다. 그러다보니 꽤 좋은 결과치를 냈더라도, 삽시간에 비교 대상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가스라이팅 당한 정신을 다시 말끔히 표백해야 한다. 남이 만들어놓은 매트릭스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자녀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려서 부모님께 보여드릴 때다. 작품성 제로로 형태조차 구분안되는 졸작이지만, 부모님은 감격에 눈물을 흘린다. 우리 아이가 천재는 아닐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부모님이 본 것은 작품의 퀄리티가 아니라, 아이의 잠재력이다. 이 작은 불씨가 언젠가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황스럽게 아이가 장성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격려를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 이미 다 컸다는 이유로 평가는 훨씬 박해진다. 


자신만의 컨텐츠를 만들려면, 자동적으로 빠지는 용기에 바람을 집어넣어야 한다. 내면에서 의구심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매우 정상이다. 무언가해도 반응이 없거나 자꾸 낙담한다면, 누가 거기서 헤헤 거리면서 계속할 수 있을까? 그러니 내가 오늘 작성한 100자의 글이, 아바타 영화보다 낫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퀄리티에 대한 비교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얼마나 주체적으로 사느냐에 문제다. 다른 사람의 들러리로 남을 것인가. 타인의 소비재로 살다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인생의 주인공으로 활약할 것인가. 그것을 가능케하는 것은 자신의 작은 가능성을 소중히 다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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