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폴생은 처음이라서
폴댄스는 신체의 고통을 인내하고 그 고통에 정착하며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운동이다. 때문에 내 몸은 수차례 멍이 들고 사라졌다가 다시 멍이 들기를 반복하며 고통에 익숙해져가는 중이다.
마음의 고통은 매번 겪을 때마다 새롭고 좀처럼 익숙해지지도 무뎌지지도 않기에 예방만이 최선이다. 반면 폴을 타며 생기는 신체의 고통은 탈 때마다 조금씩 무뎌지고 둔해진다. 놀랍게도 고통에 무뎌질 수록 무뎌진 부위는 조금씩 가늘어지기에 만족감이 꽤나 크다. 폴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를 생각해본다. 나는 통증 때문에 처음 하는 대부분의 동작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다. 폴싯은 가랑이사이가 너무나 아파 연결동작인 엔젤스핀까지 가지 못하였고, 팅커벨을 할 때는 폴에 건 오금 아래 종아리 근육이 찝히는 느낌이 괴로워 오금을 똑바로 걸지 못하였다. 피겨헤드를 처음 할 때도 겨드랑이가 너무 아파서 단 몇 초도 버티지를 못했다. 나중에 선생님과 대화하며 알게 된 건데, 살이 단단하고 건조한 사람일수록 폴을 탈 때 더 큰 통증을 호소하고는 한단다. 살이 물렁물렁하고 부드러우면 폴에 닿았을 때 살이 쿠션 역할을 해서 상대적으로 조금 덜 아프고, 반면 살이 단단하고 건조하면 폴에 쓸리고 부어서 살 자체에서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도 폴에 처음으로 컨텍하는 부위를 쓰는 레슨을 받은 후에는 컨텍부위가 하루 이틀정도 퉁퉁 붓고 피멍이 든다. 그런데 그 멍이 나처럼 심하게 드는 사람도 있고 상대적으로 덜 드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시작하고 처음 한 달 동안은 내가 폴을 못 타서 이런 줄 알았는데, 통증의 역치가 사람마다 다르고 나는 상대적으로 그 역치가 낮은 사람이라 적응이 힘들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비로소 알았다.
시작한 지 3개월이 조금 안 된 요즘은 어떤가 하면, 처음에 안 되던 동작들을 두 번째나 세 번째에 가뿐하게 성공해나가는 중이다. 폴싯을 한 후 왼쪽은 컵그립을 잡고 오른쪽은 어깨부터 밖으로 빼내어 다리를 꼬고 허리춤에 팔을 얹은 채 빙빙 도는 엔젤스핀, 폴싯 상태에서 상체를 쭉 누운 뒤 왼쪽 팔을 아래로 잡고 가슴을 위로 내미는 다프네. 이런 것들은 처음에 배웠을 때 한 번에 성공하지 못했었고 최근에야 매끈하게 완성해낸 기술들이다. 그리고 이 기술들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몸이 유연해졌고 살이 조금 빠졌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난생 처음 겪어본 고통들에 조금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수업을 처음 들을 때는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면 와 내가 저걸 할 수 있을까. 난 절대 안 될 것 같은데... 라며 지레 겁을 먹어 더 움츠러들고 더 아프기도 했는데, 이제는 내가 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완성이 될지, 완성 시 나의 쉐잎이 궁금해지고는 한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즐거움도 예전보다 조금 더 커졌다. 결국 폴댄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고통과의 사투!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와 대화해 본 폴을 나보다 오래 탄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 바 있다.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 그것이 폴댄스 실력향상의 관건이라는 것.
처음 폴을 할 때는 꼭 한번에 기술을 반드시 성공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꾸준히 하며 느끼는 것은, 결국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기술을 터득하는 데 성공하기 마련이니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마다 잘하는 기술과 못 하는 기술이 다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 하루 만에 하는 걸 나는 한 달 만에 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직접 해보기도 했고 말이다. 세상사 모든 일이 다 그러하듯 결국 폴댄스도 꾸준함과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여유롭게 폴을 타고 싶다. 여유로움의 바탕에는 치열함이 있다. 치열한 순간을 보낼 땐 조급함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오로지 지금 폴을 타는 이 순간을 치열하게 즐기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고통에 적응하는 만큼 단단해지는 내 몸을 관찰하는 것은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 꽤 많은 도움이 된다. 적어도 폴을 탈 때만큼은 거기에 집중하느라 잡생각을 하지 않으며, 내 몸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또한 탈 때마다 조금씩 실력이 상승하는 것을 느끼기에 그만큼 자존감도 올라간다. 빙빙 돌아가는 쇠막대에 의지하여 어떻게든 내 몸의 중력을 가볍게, 날아가듯 사뿐히 띄우고자 노력하다 보면 주변의 소음이 사라진다.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몸은 더욱 단단해지고, 가쁘던 호흡은 차분히 폴 위로 정착한다. 결국 고요한 가운데 폴과 나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