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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Sep 13. 2023

자주 만나진 않지만 친합니다

나와 친한 사람들


십 수 년만에 만나는 대학선배와 두 달 전에 약속을 잡았다.

그사이 서로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지만

달력에 적고 점심 이후 시간을 넉넉히 비워두었다.

예상대로 선배는 전날 오전에 약속을 확인했고

바로 만날 장소를 보냈다. 미리 예약해 둔 곳이었다.


한 번 잡은 약속은 되도록 지키려는 편인 나는

약속을 대하는 모습에서 사람을 본다.

급한 일은 충분히 생길 수 있고 양해도 가능하지만

전날까지 확인이 없거나, 습관처럼 미루거나, 아예 잊었거나, 사정을 대며 번번이 깨는 사람은 서서히 거리를 둔다. 태도가 함부로인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런 사람에게 쓰는 시간도 정성도 아깝다.


전날 지도로 보내 준 장소에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다 피식 웃었다. 선배가 프랑스에 있을 때 아띠제 딸기 케이크를 먹고 싶대서 사 줄테니 한국 오라고 했었는데 음식점 맞은 편에 아띠제가 보였다.

이거까지 알아보고 예약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식사 후 데려와야겠다 생각하고 미리 들어가 보니 그 케이크는 없었다. 몇 시에 나오는지 물으니 오후 늦게 나온단다. 다시 확인해보지, 뭐. 하고 선배가 예약한 장소에

들어가 자릴 잡았다.


베테랑 기자답게 송고한 기사의 피드백을 통화하며 창밖으로 등장한(내게 도촬당한지도 모르고 있을) 선배는

해외 파견근무부터 코로나까지 긴 세월이 지났어도

어제 만난 것 같이 자연스러웠다. 예뻐졌다. 따위의 실없는 말도 없었다. 첫 마디는 야~ 메뉴 골랐어? 였다.


대학 방송국에서 만난 선배와 나는 동갑이다.

선배는 정치부를 지나 경제. 금융권에서 기자 20년차가 되어 직함이 부장이 되었다고 했고 나는 19년차 방송작가가 됐다.

그 사이 본 것은 선배의 결혼식이 끝이었다. 남편의 유학길에 함께 떠나 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인 엄마가 될 동안 SNS 하트와 몇 건의 댓글외에는 연락도 없었다. 약속도 DM으로 잡아 카톡보낸 것도  어제가 처음이었는데  그 당연한 친밀감이 신기하다는 생각 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내게 자주 보는 것과 친한 것은 비례하지 않는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 둘 있는데. 나를 포함해 셋이 함께 보는 횟수는 일년에 다섯 번. 서로의 생일과 송년회를 제외하고는 한 두번 정도다. 문자도 전화도 자주하지 않고 카톡도 거의 없고 중요한 소식도 몇 달 지나 듣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도 서운하지 않다.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겠지, 하는 것이다. 친구 중 하나는 한 때 3년 간 연락을 끊었었다. 그래도 우리는 둘만 관계를 유지하며 기다렸다. 채근하지 않아도 때되면 돌아오겠지 하면서. 그리고 그 친구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왔다.


누군가에겐 이상할지 모르지만 나의 관계는 그렇다. 진짜 믿는 사람은 어디에 있었는지 무슨 상황인지 자세히 묻지 않는다. 근본적인 것을 믿으면 불안하지 않다. 연락이 없는걸 보니 마음이 식었나, 나 빼고 둘이 만나는 건 내가 불편해서 일까. 같은 피곤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만 만나는 것이다. 만남이 짧든 길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언제가 되었건 만남의 끝이 좋은 여운이면 그 뿐.


이십 대에 학교 앞에서 김치볶음밥먹던 선배와 같이 먹은 메뉴는 도쿄등심의 스키야키였다. 미국과 파리를 거쳐 돌아온 선배와 국내 방송사는 한 번씩 다 거친 내가

화려한 맛의 음식 하나 하나를 꼼꼼히 먹는 동안 나는 빨간색 열정만 수북히 쌓던 우리가  20년의 시간동안 양은 덜어내고 각자의 삶을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갈하고 단정한 그 무엇이 좋다고 느끼는 순간. 선배는 내게 음식이 입에 맞는지 물었다. 배려도 한결같이 다정했다.


결국 딸기 롤케이크는 먹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돌아오는 길에 케이크를 쿠폰으로 보냈다.

문자를 받고 도대체 몇 년 전 일을 기억하는거냐며 크게 웃었다는 선배에게서 아이들과 함께 잘 먹겠다고, 또보자는 답이 돌아왔다.

수 년전 프랑스에서 겪었던 향수병을 치료해주고 싶던

약속이었기에 보내는 마음이 더 향긋했다.


올들어 소중한 인연을 하나씩 다시 찾고 있다.

그런 만남은 어제 선배를 만날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요란한 말과 으스댐이 없고.

성과를 리스펙하지만 그 사람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나의 친구들은 유명 프로그램을 하는 인기 작가인 나보다

아프지 않고 행복한 나이기를 더 빌어준다.

그렇기에 내가 매 순간 굳이 마음을 확인하지 않아도

손 내밀면 잡아 줄 것임을, 나는 안다.

그들에게만큼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오래오래 잘 해야겠다고 새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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