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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Mar 18. 2024

지극히 미적인 시장_고성

봄이 오는 길목, 경남 고성

농산물 시장의 작은 통로. 좁은 골목 안 마주 보며 할매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경남 고성장은 반가웠다. 그리 크지 않겠지 하고 갔다가 재미있게  취재했었다. 5년 전, 처음 왔을 때는 이틀 내내 이른 봄비가 왔었다. 겨울 가뭄이 한창이던 때로 기억하고 있었다. 가뭄 해결 절실할 때 내리던 봄비는 반가웠는데, 이틀 내내 내리는 비를 조금은 원망하면서 다녔던 기억이 났다. 그때 오일장 취재를 다닌 지 5번 정도인 생초보였다. 인천, 해남, 제주, 완도 그리고 경남 고성이었다. 방송에 봤던 오일장의 들뜸을 기대하러 다니던 햇병아리 시절이었다. 그 사이 100개가 넘는 시장을 다녔고 세 권의 책으로 나왔고 방송의 들뜸은 어디에도 없음을 알았다. 잠시 농산물 시장과 수산물 시장이 분리된 고성장 사잇길에 섰다. 옛 기억이 스치듯 지났다. 

5년 전, 고성장에는 비가 내렸다.

고성장 방문은 두 개의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시장 취재이고, 둘은 KNN 방송의 오일장 자문이었다. 드라마 방식의 경남 식재료에 대한 소개하는 방송이라고 한다. 경남만의, 경남에서 생산하는 식재료가 중심이 된다고 한다. 두 분의 피디와 작가와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사실 특정 지역만의 식재료라는 것은 거의 없다. 왕래가 힘들었던 시기에나 가능한 일이다. 의미도 없거니와 생산도 여기서 하면 저기서도 하는지라 의미가 없지만, 그런데도 하는 이유는 지역에 대한 홍보이지 않을까 한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아는 것을 알려 주고는 시장을 몇 바퀴 돌았다.

곰보배추의 본래 이름은 배암차즈기다. 달래 옆 나물은 엉겅퀴 

고성장의 한 축인 농산물 시장을 둘러보자. 농산물 시장을 중간을 가르는 골목 길게 할매들이 나란히 앉아 나물을 팔고 있다. 시장 내 두 개의 긴 통로 중 하나에만 할매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님이 지나가면 슬쩍 권한다. 손님이 지나치면 다시 이야기 삼매경이다. 여느 장터에서 흔히 보는 할매들 모습이다. 장사꾼들은 넓게 펼쳐 놓고 파는 탓에 이웃한 할매와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 작은 봇짐 싸서 나온 할매들은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 나누려고 시장에 나온다. 나물을 둘러봤다. 봄 시작을 알리는 머위, 쑥, 냉이, 쑥부쟁이, 엉겅퀴, 달래가 시장에 나와 있었다. 이제 들어가는 노지 시금치도 마지막 맛을 전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미나리가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사시사철 나오는 게 미나리여도 봄철의 미나리가 가장 향이 좋다. 아삭한 식감도 마찬가지이다. 매화가 지고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봄나물은 절정으로 치달을 것이다. 지금부터 5월 초까지 장터 가는 재미가 최고가 될 것이다. 눈으로 꽃구경을, 입으로는 나물이 반기는 여행이 5월까지 쭉 이어질 것이다. 산나물 구경은 어디나 비슷하다. 어디가 싸고 어디가 더 좋고는 없다. 5년 동안 다닌 경험이 그렇다. 산이 좋으면 나물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디를 둘러봐도 다 산이다. 여행 목적지 동선 안에 있는 장터 목록을 살피고 간다면 여행이 한층 ‘맛’나질 것이다.

가무락조개. 보리새우 대신 3월 고성장에서 내 선택은 이 녀석이었다.

고성을 내려오면서 있으면 사야지 했던 것이 조개와 보리새우다. 새끼손가락만 한 보리새우를 5년 전에 샀었다. 그냥 볶아 먹어도 맛났고, 라면 끓일 때 몇 마리 넣으면 국물이 기가 막혔다. 시장을 몇 바퀴 돌아도 찾는 보리새우는 없었고 분홍 새우만 보였다. 

조개를 보며 다녔다. 작은 크기의 바지락은 갯벌에서 캤을 것이고 알이 굵은 것은 배에 끌그물을 달아서 바닥을 긁어서 잡았을 것이다. 3월의 바지락은 크기와 상관없이 가장 멋있다. 국물이 좋은 개조개 유혹도 강렬했다. 바지락을 사려고 하다가 떡조개와 가무락을 함께 놓고 팔았다. 가격을 물으니 아까 지날 때 들었던 가격보다 2천 원 싸다. 할매 앞을 보니 파장 분위기로 떨이하는 중이지 싶었다. 뭐라 뭐라 사투리로 이야기를 거시는데 일부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다. 전라도나 경상도나 사투리를 세게 구사하는 할매들과 나누는 대화는 매번 힘들다. 강원도는 그나마 낫다. 대충 알아들은 건 “이건 고성군 삼산면 거다. 넌 어디서 왔니? 국물 내면 뽀얗다. 보약이다. 닌 어디서 왔니?” 정도다. 떡조개와 같이 담긴 검은빛 나는 조개는 가무락이다. 할매는 모시조개라 하는데 가무락조개가 표준명이다. 수산물은 동네마다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이다. 가무락과 떡조개를 사면서 바지락 또한 샀다. 2만 원을 내밀면서 담아 놓고 남아 있던 바지락을 달라고 했다. 세 개의 조개, 떡조개, 바지락, 가무락을 2만 원에 샀다. 시장에는 진짜 도다리와 문치가자미가 같이 팔리고 있었다. 시장의 식당에는 도다리쑥국 개시를 알리는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봄을 알리는 것은 도다리가 아니라 쑥국이다. 

쑥국이 주인공인데 도다리가 주인공이다. 그것도 맛없는 도다리가 말이다. 

쑥국은 예전부터 봄이 오면 끓여 먹던 전통의 음식이다. 쑥국 끓일 때 이거저거 넣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도다리를 넣은 쑥국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을 뿐이다.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보면 2005년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 계통 이후 도다리쑥국 기사가 검색되기 시작한다. 일 년에 두어 건 검색되던 것이 2010년 이후 백여 건 이상 검색되기 시작했다. 

커다란 문치가자미 뒤 바구니가 진짜 도다리다. 배 볼록 나온 알밴 문치가자미. 도다리쑥국에 사용한다. 도다리쑥국이지만 실상은 가자미 쑥국이다. 

고속도로 개통에 맞추어 홍보했던 것이 오래전부터 그리했던 것처럼 되었다. 여전히 그리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적어도 사실을 안다면 이제는 도다리는 뺐으면 한다. 바다는 그 시기에 더 맛있는 것을 내주고 있음에도 관행적인, 작년에도 그랬으니 올해도 그래야지 해서는 안 된다. 페이스북의 과거의 오늘을 알려주는 기능처럼 잘 못된 것에 수정 없는 알림은 그만하자. 조개를 사고는 쑥 한 바구니를 5천 원 주고 샀다. 조개는 봄철에 최고의 맛을 낸다. 최고의 맛을 내는 조개를 끓이고는 쑥을 넣을 생각이다. 

쑥국 끓일 때 조개, 흰살생선 뭐를 넣어도 도다리보다 맛나다

‘조개 쑥국’ 이름만 들어도 향긋한 감칠맛이 풍기지 않나? 봄이 오면 다양한 수산물로 쑥국을 끓이자. 산란기 도다리든, 문치가자미는 빼고 말이다.



수많은 오일장에서 유일하게 무 시루떡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여기 경남 고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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