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의 겨울은 바지락 맛!!
3월 1일, 설 쇠고 3주를 보냈다. 바쁜 것도 있고 명절 지난 다음 2주 정도 지나야 정상적으로 오일장이 선다. 명절 이후 일주일 동안은 거의 서지도 않는다. 신문 연재가 없으니 부담 없이 편하게 3주를 쉬었다. 그동안 SNS상에서는 남녘의 매화꽃 소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동백이 떨어지고 매화가 피면 이내 봄이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몇 년 전, 뜻하지 않았던 대설로 장 구경을 못 한 전라남도 장흥으로 향했다. 3월 1일 새벽 5시, 금요일만 생각하고 연휴의 시작이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내려가는 고속도로에 차가 많기에 출근하는 차들이 많구나? 정도만 생각했다. 평택, 당진을 지나고 차가 생각보다 많았다. 그제야 연휴의 첫날임을 깨달았다. 많았던 차들은 홍성을 지나면서 사라지기 시작해 군산이 지나니 평소의 고속도로 수준으로 돌아왔다. 장흥은 2, 7일 오일장이 있으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장이 선다. 3월 2일은 토요일이다. 장이 서는 두 개의 날짜가 겹치기에 다녀왔다. 겨울, 바닷가를 품고 있는 장터는 생선 구경하는 재미가 육지의 장터보다 몇 배 좋다. 게다가, 잘 운영되고 있다는 토요 장터에 오일장 날짜까지 겹치는 날이니 없던 기대감도 저절로 생겼다. 평소에 다녔던 일반적인 오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작은 시장에 큰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장터는 상설시장과 오일장 두 개가 열렸다. 상설시장은 평소에도 열리고 주로 수산물 점포가 많았다. 장흥의 대표 음식 삼합 거리까지 합하면 시장의 규모는 크지만 파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웃한 강진이나 보성보다도 작은 듯싶었다. 파는 이 숫자로는 영암하고 비슷했다. 강진, 보성, 영암 그리고 장흥의 공통점은 규모가 작고 바닷가 옆치고는 수산물 종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아마도 수산물 시장을 형성할만한 항구가 없는 탓인 듯싶다. 규모로 보자면 강진이 가장 클 듯싶다. 상설시장 옆 골목을 시작으로 삼합 거리 중간까지는 채소 난전이, 그다음은 의류와 잡화 난전이 섰다. 채소 난전은 품목은 거의 비슷했다. 한창 순이 올라오고 있는 보리순, 김치로 즐겨 먹는 갓, 매콤하게 또는 간간하게 무치면 밥도둑인 봄동과 배추나물, 맛이 들기 시작하는 미나리에 머위 순이 대부분이었다. 중간중간 싹 난 감자 파는 이도 눈에 띄었다. 생각했던 봄나물은 아직 인듯싶었다. 작년 이맘때 강진이나 진도에서 산 고소했던 별나물이 있나 봤더니 없었다. 수산물 시장도 실상 별거 없었다. 생선은 냉동이 대부분, 그나마 실한 키조개 관자가 살만했다. 키조개 관자가 대표 수산물이지만 그 외에 굴이나 바지락 또한 장흥에서, 그것도 겨울에서 초봄 사이에 나는 것이 맛이 좋다. 여름이 산란기인 키조개는 조금 더 따듯한 봄날이 좋고, 추울 때는 차라리 굴이나 바지락이 났다. 햇볕이 잘 드는 주차장 쪽 도로변에 굴 파는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장흥 남포가 굴 산지로 이름나 있다. 바지락을 살까 시장을 다니니 오전 10시가 넘어서니 경매받은 것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남성천은 장흥 시내를 지나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민물이 흘러들어오는 곳은 모래 펄이 많다. 모래 펄에서는 주로 바지락이나 동죽, 백합 등이 산다. 내려갈 때부터 조개가 있으면 사야지 했는데 백합은 없었고 바지락은 있었다. 깐 조갯살 1kg, 1만 원 주고 회무침 할 생각으로 샀다. 관자는 아예 가격도 묻지 않았다. 아무리 관자가 맛있다고 한들 2월에 바지락보다 맛이 떨어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내 입맛이다.
장흥을 가는 이들은 누구나 삼합 맛볼 생각을 한다. 삼합도 계절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맛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아마도 3~5월 사이가 아닐까 한다. 특히 5월이 맛으로 가장 빛날 때라 생각한다. 삼합을 구성하는 세 가지, 한우, 키조개 관자, 표고의 맛이 가장 맛이 좋을 때는 5월이다. 한우도 기온이 따듯한 5월이, 7월에 산란하는 키조개 관자 또한 5월이, 원목 표고는 4월과 5월이 가장 맛있다. 이 세 가지를 구워서 한꺼번에 먹는 음식이라면 그 세 가지가 가장 맛이 좋을 때가 가장 맛이 좋은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피해야 할 때는 가장 더운 여름과 가장 추운 겨울이다. 세 가지의 맛이 가장 떨어지는 때다. 여름, 키조개는 산란하고, 원목 표고는 나오지 않고 향 여린 배지 표고만 있을 때가 여름이다. 사람도 소도 지치는 시기 또한 여름이다. 장흥 물 축제가 열리는 한여름의 삼합이 가장 맛이 없다. 삼합 먹을 때는 참기름을 멀리해야 표고의 향을 느낄 수가 있음에도 대부분 식당은 참기름 장을 내준다. 소고기, 관자, 표고의 향을 음미해야 하나 참기름(아니면 인공 향을 넣은 옥수수기름이나 콩기름)을 찍는 경우 모든 향은 사라지고 참기름 향만 남는다. 돼지고기나 표고버섯을 찍어도 같은 향이 날 것이다. 비싼 재료를 사서 참기름 맛으로 먹는 꼴이다. 장흥을 열댓 번 갔었다. 장흥 삼합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먹은 적이 없으니 사진도 없기에 스스로가 정한 때를 거스르고 맛을 봤다. 맛은 생각대로 참기름 맛 밖에 안 난다. 장흥 가서 삼합을 먹는다면 참기름을 멀리하는 것이 세 가지 재료의 맛을 오롯이 즐길 방법이다.
장흥 오일장이 다른 시장보다 특별난 점은 표고버섯이다. 장흥은 우리나라에서 원목 표고버섯 생산량이 손꼽히는 곳이다. 표고버섯 재배는 원목에 표고버섯 균을 넣어서 재배하는 법과 배지에 환경을 컨트롤 해서 키우는 재배방식 두 가지가 있다. 원목은 향이 좋으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배지는 빠르게 수확할 수 있으나 향이 여린 단점이 있다. 그 두 가지를 비교하면서 살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지 않을까 한다. 배지 재배가 원목 재배보다 저렴하다. 표고버섯은 향으로 즐기는 식재료, 그 식재료 본연에 충실한 식재료는 원목 재배다.
장흥 가서 꼭 먹어야지 했던 것에서 바지락 회무침은 성공, 낙지를 이용한 음식은 실패했다. 낙지는 뜨거운 뚝배기 안에서 푹 익어서 질김만 남아 있었다. 같이 넣고 끓인 소라는 특유의 잡내가 났다. 이름에 맞는 음식은 낸 것은 맞지만 이름에 걸’맛’는 음식 내는 것은 실패했다. 겨울과 봄 사이 장흥에서 먹었던 최고의 음식은 바지락 무침이었다. 제철 바지락을 갖은 채소와 함께 새콤하게 무쳐낸 것으로 2(월)말3(월)초의 최고의 밥도둑이었다. 바지락 살도 많이 들어 있거니와 막걸리 식초의 새콤한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신선한 바지락이 품고 있는 향기로운 바다향과 쫄깃함에 새콤함이 더해지니 숟가락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웬만해서는 맛있다는 이야기 잘 안 하는데 여기는 ‘찐’이었다. 바지락 회무침 외에 서대회 또한 기대되는 집이다.
해장이든 한 끼 식사로 좋은 곳이 한라소머리국밥이다. 장흥 시장 중간에 있다. 소머리국밥, 돼지머리 국밥 등이 주메뉴다. 전국에서 먹은 소머리 국밥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맛이다. 소머리에서 나오는 고기양이 적어서 따로 소고기를 넣어서 국밥을 만다. 내가 세 손가락으로 꼽는 곳은 강릉 주문진 철뚝집, 서산 해미의 우리집 그리고 여기다. 건더기 많고 국물 깔끔한 것이 입에 딱 맞았다. 군위의 다락재 또한 괜찮았지만 장흥 한라식당에 밀렸다.
#식재료전문가 #식품MD #식재료강연 #음식인문학 #음식강연
#지극히미적인시장 #제철맞은장날입니다 #오일장 #시장전문가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1016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