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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Apr 10. 2024

지극히 미적인 시장 AS

산청 덕산장과 영주 오일장

두 번의 뼈가 시린 실패를 겪고 나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내 이야기다. 처음이야 몰랐다고 치더라도, 두 번째는 혹시? 라는 마음으로 그럴 수 있다. 세 번째는 멍청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었다. 해남 화원면 오일장을 다녀오면서 다시는 면 단위는 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였던 어느 날의 가을 초입, 그래도 군에서 홍보하는 약초 시장이 있으니 괜찮겠지 하고 갔던 함양군 안의면 시장. 그나마 화원면 시장보다 조금 컸다는 게 위안이었으나 사람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다시는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기사에 쓰고는 잊고 있던 시장을 KNN 권 피디가 기억을 되살렸다. 산청 오일장 취재 중에 만난 쏘가리 양식장 사장님 왈 “덕산장이 볼 거 더 많아요” 그 한 마디를 되살린 거다. “아~ 그랬었지!” 면 단위 오일장인데? 동네 사람이 읍장보다 재밌다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갔으나 ‘역시나!’ 

허영만 선생님 모시고 갔던 산청 읍장과 덕산장을 비교해보면.... 

작은 시장의 한쪽 골목에만 파는 이들이 앉아 있었다. 기왕 왔으니 구경에 나섰다. 재배한 것도 있고 채취한 것도 있었다. 두릅은 대부분이 재배, 일단 지나치고 사진으로만 봤던 우산나물이 눈에 띄었다. 확인을 위해 나물 이름을 여쭈니 “삿갓 대가리, 삿갓나물(실제 명칭은 우산나물) 달어, 씹어봐” 하며 할매가 나물 끄트머리를 입에 넣어 주신다. 나물을 씹었다. 약간 쓴맛이 나고는 이내 여린 단맛이 나기 시작한다. 꽤 맛있는 나물이었다. 맛보고 나니 안 살 수가 없었다. 

달콤 씁쓸한 맛이 좋은 우산나물

“주세요” 우산나물 사고 나니 작은 골목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오가피 나물이 있다. 몇 번 이야기했듯이 봄나물 중에서 두릅, 엄나무, 오가피는 같은 두릅과의 식물이다. 오가피는 아니더라도 순을 먹는 옻순을 제외하고는 오가피가 최고다. 쌉싸름함이 최고로 좋다. 오가피 순에 비하면 두릅은 어린애 수준이다. 작은 시장이어도 살 것은 충분히 있던 시장이었다. 하지만 굳이 날 맞추어 찾아가지는 않을 시장이다. 면 단위 시장은 이젠 진짜 안녕이다. 덕산장을 떠나기 전 나물 뷔페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성인 1인 기준 18,000원 한 끼 식사로 적은 금액은 아니다. 뷔페 가격으로는 저렴한, 뭐 약간 비싸다 싸다 뭐라 이야기하기 어려운 애매한 가격이다. 식당 입구에서 아주머니들이 묵나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식당 내부도 묵나물이 종류별로 많았다. 일부는 소포장해서 판매도 했다. 반찬 대부분은 나물. 밥도 나물밥이다. 접시에 밥과 나물을 담고 비벼 먹을 수 있게 고추장과 참기름이 준비되어 있었다. 

참나물과 적근대는 튀김으로 만들어서 비벼 먹을 때 한 번씩 먹으면 꽤 괜찮았다. 나물 비빔밥을 만들 때 따로 참기름을 넣지 않았다. 과유불급, 나물 무칠 때 이미 참기름을 넣었기에 따로 넣어 참기름 향으로 먹긴 싫었다. 귀했던 참기름이 너무 흔해져 과용을 넘어 남용의 시대를 살고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한식의 세계화에 앞서 참기름의 오남용을 걱정해야 할 듯싶다. 이것저것 맛은 있었으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계절이 나물의 계절인지라 묵나물이 아닌 햇나물 요리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나물 대부분이 묵나물, 제철을 맛볼 수 있는 데친 순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매랑뿌리랑 

기다란 모양의 영주 오일장

 산청에서 나와 바로 영주로 이동했다. 다음날이 영주 오일장이다. 5년 취재 중에서 가보지 못한 곳에 경북 내륙이 많았다. 바다와 인연이 없는 동네가 이 동네에 유독 많았다. 오일장을 다니다 보면 바다가 없으면 오일장의 재미가 딱 50%다. 그 덕에 경북 내륙은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예천, 영천, 구미, 칠곡은 여전히 미답지다. 영주 오일장은 일명 번개시장이라 불린다. 영주 시내에는 두 개의 시장이 있어도 시장과 별개로 열린다. 보통은 썰렁한 상설시장도 오일장이 서는 날은 북적북적하는 거에 반해 영주 시장은 평소와 같았다. 번개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상설시장과 동떨어진 거리에서 열리는 게 이유인 듯싶었다. 시장 주변으로 번개시장을 유도한다면 서로가 좋을 듯싶은데 외지인 처지에서 볼 때 다소 의아해 보였다. 사실 오일장을 100여 개 이상 본 필자로서는 이해가 잘 안 가는 장면이다. 

장날이어도 상설시장은 썰렁했다.

영주 오일장(번개시장)은 북영주역 근처 사거리에서 시작해서 700여 m 정도로 기다란 모양이다. 영주의 유명한 묵밥 집 근처 골목으로 오일장이 살짝 들어와 있어도 모양새는 길다. 초반에는 이쯤에서 끝나겠지 했으나 끝남이 없어 보이듯 길게 좌우로 좌판이 펼쳐졌다. 작은 길 위 좌우로 좌판이 펼쳐져 있는 탓에 번잡함은 전체 오일장 중에서 최고였다. 조금만 앞사람이 지체해도 병목이 생겼다. 

번잡함은 전국 최고

게다가 끌차를 끌고 다니는 이들이 많아 병목은 수시로 생겼다. 오일장을 이전해야 하는 이유로도 보였다. 봄철의 오일장은 두 가지가 시장을 이끈다. 하나는 모종, 또 하나는 산나물이다. 소백산 자락이 품고 있는 영주, 산나물이 지천이었다. 오일장 다닌 지 햇수로 6년, 필자가 산나물 사는 요령이 있다. 일단 파는 이 뒤에 봇짐이 많으면 잘 안 산다. 오일장은 전문 장사꾼과 용돈 벌이 할매들도 구분할 수 있다. 할매 중에서 전문 장사꾼은 봇짐이 많고 품목이 많다. 받아서 판다는 의미다. 가능하면 품목이 적고, 봇짐 적은 이에게 산다. 흔해진 두릅 같은 나물은 크기가 일정한 것은 가능하면 피한다. 두릅은 내일 따야지 하면 다른 이가 채 간다. 보이면 따야 하는 것이 두릅이다. 이름은 산나물이라도 이웃 마을 김 씨 아저씨가 재배한 것일 확률이 200%다. 산에 채취한 거라면 일정한 크기일 수가 없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보는데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조건이 딱 맞는 두릅을 만났다. 크기가 제각각에 봇짐이 단출했다. 가격 물으려고 했더니 아주머니 두 분이 먼저였다. 

멀뚱히 보다가 자리를 떴다. 다시 왔을 때 아직 있으면 내 차지라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오니 그대로 있었다. 보통 파는 보기 좋은 두릅보다 작았지만 향은 진했다. 제대로 골랐다. 

영주 가면 먹어 봐야지 했던 것이 태평초. 이름 봐서는 도통 어떤 음식인지 감이 안 잡힌다.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왜 태평초인지 자료조사를 해봐도 딱히 와닿는 것이 없다. 태평초는 김치찌개다. 김치찌개인데 메밀묵을 올린 김치찌개를 영주에선 태평초라 부른다. 음식 이름과 실제 모양이 전혀 어울림이 없지만 맛있는 음식이 태평초다. 비염과 피곤함에 다 먹진 못했지만 김치의 얼큰함, 돼지고기의 고소함, 메밀묵의 시크함이 잘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묵밥 좋아하는 이가 영주 간다면 한 번은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다.   

#지극히미적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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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으로 잠시 중단했던 오일장..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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