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온 Jan 23. 2022

드디어 봤다 기생충

그래도 스포 주의


2020년 초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실내 자전거를 타다가 기생충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탄 것을 보고 꺅 소리를 질렀던 생각이 난다. 기생충의 작품성을, 봉준호의 연출력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 그뿐이었다.


기생충의 수상의 기쁨을 온 맘으로 함께했던 것과 달리 나는 그 후 2년 동안 기생충을 보지 않았다. 큰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남들 다 본 영화라고 꼭 내가 봐야 해?라는 뾰족한 반골기질과 '보고나면 너무 우울할것 같은데'라는 두려움이 컸다.


토요일 밤 친구와 집에서 뒹굴거리며 영화를 보고 놀기로 했다. 뭐볼까. 뭐가 좋을까 그러다 나도 모르게 '나 기생충 아직 안봤는데' 라고 중얼거리자 친구가 '어? 나도!' 라고 외쳤다. 와! 주변에 기생충 안 본 사람은 나도 친구에게도 둘다 처음이었다.

대충 유명한 대사들은 이미 미디어에서의 수없는 노출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대충 스포가 될 것 같다는 장면도 얼핏 얼핏 들었다. 어떤 내용인지 왜 보고 나면 불쾌하고 우울한지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큰 기대가 없었다. 그냥 유명한 영화니까. 상 받은 한국 영화니까 봐야지 딱 그 마음.


영화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욕이 오가는 자극적인 대사들이 나의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었다. 비속어를 쓰는 것을 교양없고 거칠고 사납다고 느끼는 내 안의 마음이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저 사람들 뭐야?'라고 저멀리 떨어져 구경하기 시작했다. 기우(최우식)의 가족을 말이다.



민혁(박서준)이 기우(최우식)의 집을 들어왔을 때 맨발이 바닥에 쩍쩍 달라붙어 발을 떼는 그 순간이 묘하게 익숙했다. 어디서 느껴본적 있었던 찝찝함.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모른척 넘어가야하는 순간.

나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도 남의 집에서 밥을 안 먹었다. 엄마는 늘 깔끔했다. 넘치지 않았지만 모자라지 않게 살았다. 매일 밥을 먹고 난 후에 과일 서너종류를 후식으로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집과 다른 환경에서 밥을 먹을때면 밥이 제대로 넘어가질 않았다. 대학교 4년 내내 학식을 먹은 적이 손에 꼽힐 정도로 까탈스러운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유난이었다.


기우(최우식)이 과외를 하러 다혜(정지소)의 방으로 들어간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방문이 닫힌다. 방문이 닫히는 것부터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이지만 그 둘은 과외 선생님과 학생이다. 혹여나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하여도 드러내어 감정을 교류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방문이 닫힐때마다 나는 불안했다. 엄마가 언제 문을 열고 들어올까. 아니 엄마가 아니지 아줌마가 언제 문을 열고 들어올까. 둘이 키스라도 할라치면 마음이 동동거렸다. 안돼 뭐하는거야. 그러면 안돼. 엄마가 보면 둘다 혼나. 그런데 엄마는 끝까지 둘이 뭘 하는지 모른다. 엄마는 단 한번도 방문을 열지 않았다. 엄마는 좋은 과외 선생님을 구해주었고 방문을 닫았다.


민혁과 기우, 다혜. 이 어린친구들까지는 강건너 불구경하듯 봤다. 어후 뭐야. 뭐 저런게 다있어. 아 맞다. 맞아 저런 느낌있지. 말로 굳이 드러내지 않지만 그치 저런거 불쾌하지. 그런데 기택(송강호) 그리고 충숙(장혜진), 문광(이정은)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기정(박소담)이 능구렁이 같은 말재간과 잔꾀, 아니지 여긴 집안 내력이다. 하나같이 사기꾼 재질. 어느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원하는 판을 짜간다. 자신들의 판이 아닌 인 곳에서 자신의 판을 만들려고 한다. 연교(조여정)과 동익(이선균)의 판 위에서 그들은 거미줄 치듯 조용히 자신들의 세계를 꾸리고 마치 그것이 현실인양 즐거워한다. 그리고 문광(이정은)이 등장하면서 영화의 색깔은 마치 식빵에 핀 곰팡이 같았던 청록색에서 지하실의 녹이 잔뜩 낀 철문처럼 색이 변해간다.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1층에 있었다. 1층에서 술을 마시며 짧은 그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들은 문광(이정은)의 가족을 지하실에서 마주한다. 그곳엔 화장실도 침대도 있었고 심지어 다 쓴 콘돔 봉지를 끼워놓는 뾰족한 침까지 있었다. 입을 틀어막았다. 아 이거 뭐지. 어? 뭐지? 이 사람들보다 더한데? 아니 어? 뭐야 이거. 헷갈렸다. 근세(박명훈)의 반쯤 얼이 나간 표정과 오랜 기간 관리되지 않은 머리와 옷차림에 분명 그들은 모니터에 있는데도 한걸음 멀어지고 싶게 만들었다. 주춤거렸다. 영화에서 멀어지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들은 싸우기 시작한다.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을까. '가난하고 거짓말을 좀 하긴 했지만 누군가를 해치진 않는 착한 사람들이예요'라고 포장하던 와중에 갑자기 그 포장지가 마음에 안든다며 스스로 갈기갈기 벗겨낸 느낌이었다.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연교(조여정)의 전화 한 통에 마무리 된다.


8분 후 도착 예정. 한우 채끝살을 넣은 짜빠구리. 지금부터 물 올려 놓으세요.


가족들은 난리를 친다. 깨진 술병들이며 먹다 만 것들을 모조리 소파 아래 집어 넣는다. 쓰레기 청소를 하고 지하실 사람들을 청소한다. 그 과정에서 기정(박소담)은 술병에 손이 베이고 기우(최우식)은 다혜(정지소)의 다이어리를 제 자리에 넣어두다 빠져나오지 못해 침대 아래에 숨어있게 된다. 아줌마인 충숙(장혜진)만 아무일도 없던 듯 그자리에 있다. 하지만 그녀의 긴장감은 짜빠구리를 만들기 위해 냄비에 채우던 물의 세기처럼 점점 더 짙어진다.


충숙(장혜진)을 제외한 아버지와 아들 딸들은 소파 테이블 아래 겨우 숨어있다. 셋이 숨어도 넉넉할 정도의 소파 테이블. 그리고 소파에 앉은 동익(이선균)과 연교(조여정)은 밖에서 캠핑을 즐기겠다는 다송(정현준)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한다. 아이러니 했던 건 그거다. 이 집의 공기정화 시스템이 얼마나 잘 되어있는건지 그 수많은 사람들이 격분하고 먹은 음식을 그대로 밀어넣은 그 자리 위에 앉아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나? 그나마 동익(이선균)만이 기택(송강호)의 냄새를 조금 알아차릴 뿐이었다.


더이상 그들의 존재가 발각되냐는 화두가 되지 못했다. 그들이 빠져나오며 내달린 그들의 집으로 향하는 . 그곳은 물바다가 되어있었다. 변기 물은 역류했고 시커먼 기름때가 잔뜩 섞인 정화조 물이 화장실 사방으로 튀었다. 가족들은 겨우 뭐라도 하나 꺼내오려고 하지만 그나마 건진건 민혁(박서준) 선물한 과 몇몇의 것.   수가 없는 상황에 기정(박소담) 웃으며 역류하는 변기에 앉아 담배를 핀다. 그런데 그때부터 였을까. 분명 바깥에서 구경만 하던 다른 사람인 내가 갑자기 박소담이 되어있었다.

아. 저 기분 알아.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망연자실하던 순간. 그냥. 몰래 숨겨놓은 담배를 꺼내피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는 저 기분. 나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수재민을 위해 긴급하게 마련된 체육관에 누워 기우(최우식)는 지하실의 사람들을 걱정한다. 그리고 기택(송강호)이 말한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 줄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노 플랜.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 여기도 봐바. 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 떼거지로 체육관에서 잡시다 계획을 했었겠냐. 근데 지금봐. 다 같이 마룻바닥에서 쳐자고 있잖아. 우리도 그렇고.

그러니까 계획이 없어야돼 사람은.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잘못될 일도 없고 또 애초부터 아무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터져도 다 상관 없는거야. 사람을 죽이건 나라를 팔아먹건 다 상관없다 이말이지. 알겠어?


요 몇일 생각이 많았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봤자 무엇하리라는 마음으로 두어해를 보내다 올해부터는 다시 그래도, 그래도 살아가자. 삶의 끝에 어떤 모습이 올지 모르니 오늘을 잘 살아가자라는 마음을 먹고 계획을 했더랬다. 계획을 하고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준비하면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다가 그래 오늘은 '아무 계획 없이 좀 쉬자'하고 보기 시작한 영화가 하필 기생충이었고 하필 기택(송강호)의 저 말이 내 귀에 마음에 머리에 때려 꽂혔다.


송강호가 누워서 한 단어 후에 숨을 멈췄다 다시 한 단어와 함께 숨을 내뱉는 그 불규칙한 느린 호흡에 내 숨도 마치 함께 멈추는 느낌이었다. 멈추었다가 다시 쉬었다. 송강호의 입이 열리면서 나는 잠시 숨을 쉬었다가 다시 숨을 참았다가 그렇게 나는 체육관에 누워있는 기택이 되었다. 아, 모르겠다 변기위에 앉아 담배를 피던 기정(박소담)이 나였는데 이제는 계획이 없어야 한다는 기택(송강호)이 나로 보였다. 분명 '저 사람들 뭐야' 하고 영화보듯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삶이 까발려진 느낌이 들었다.


체육관에서의 기택(송강호)의 대사 이후로 나는 넋을 놓은채 영화를 봤다. 차라리 서로를 해치는 장면은 잔인하고 피가 튀어 눈을 가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 음침하고 우울한 삶의 기운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도 가려지지가 않았다.


영화가 끝났고 심장의 쿵쾅거림은 멈추질 않았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반짝거리는 테헤란로가 펼쳐지고 강남의 고층 빌딩들이 내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그래서? 갑자기 내가 너무 초라해보였다. 오른쪽 어깨선과 닿은 하늘엔 짙은 누런색의 달이 구름에 쌓여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반짝이는 빌딩이 내가 속한 사회, 아니 내가 속하고 싶은 사회고 사라지는 달이 나같았다. 눈물이 났다. 기생충의 어떤 장면도 슬픔을 느낀적이 없었는데 창밖을 바라보니 내 현실을 마주한 것 같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왜 내가 기생충을 안 봤는지 다시 한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기생충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또 다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나는 기생충을 다시 한번 봐야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어떤 마음으로 기생충을 느껴야 하는가.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어떨 때는 연교(조여정)에게 투영되었던 내 모습이 어떨 때는 기정(박소담)에게 보이기도 하고 기택(송강호)에게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해석 페이지를 읽는데 한 줄이 굉장히 공감이 갔다. 기생충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사람들은 대부분 연교(조여정)과 기택(송강호) 사이의 사람들이라 그렇기에 그 두 부류를 모두 공감하고 반대로 또 분노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지금 바로 그 위치에 있는거겠지?


영화에 푹 빠져있다가 영화를 꼭꼭 씹어 글로 뱉어 내고서야 기생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할 수 있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 내 삶이 아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기뻐하지도 말고 나에게 적당한 자극, 적당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자체로 좋은 영화를 만났다고 생각하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뿐. 우리가 세운 계획이 늘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또 계획하고 계획해내는 것.


그나저나 하루 계획 안세웠다고. 아니 하루 '쉬는 계획' 세웠다고 이런 영화를 만나게 할줄이야.

역시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나보다. 신은 다 계획이 있었던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패배자처럼 느껴진다면 이 드라마! 중쇄를 찍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