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온 Jan 27. 2022

변호사 수임료가 비싼 이유

법률가의 문장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주변에 직장인이 별로 없었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대기업에서 근무한다거나 소위 '사'자라고 불리는 전문직은 특히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삼십 대 초반을 지나쳐가면서 어린 시절 '우와'하고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고 직업과는 상관없이 그저 '역시 남의 돈 받고 일하는 건 힘들어'라고 서로를 위로하는 말들을 주고받게 되었다. 직업이, 직장이 나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건 재밌다. 자영업을 시작하여 사장님이 된 친구의 이야기라던가 글로벌 기업에 이직했는데 알고 보니 그 회사의 실체는 이렇더라 하는 이야기라던가. 

최근 들었던 가까운 지인들의 일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집중해서 들었던 건 변호사 언니의 사건 이야기였다.






좋은 대학을 나와 어린 나이에 사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패스하고 검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던 언니였다. 어린 나에게는 정말 성공한 집안의 자랑처럼 느껴졌다. 이후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대형 로펌에서 일했고 텔레비전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셔터 사이에서 화제의 인물들과 함께 다니는 그런 변호사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몇 년 전 언니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직업인으로서의 본인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언니도 나랑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게 꽤나 충격이었다. 

의사가 되면, 변호사가 되면 따라오는 부와 명예가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줄여줄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대형 로펌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언니는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법무법인을 만들었고 덩치가 크고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사건들을 맡는 대신 사람들과 직접 닿아있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도와주고 도움이 되는 사건들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 맡았던 사건들 중 가장 마음을 많이 썼던 사건을 이야기해주었다.


언니의 의뢰인은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근근이 할머니와 살아가고 있는 20대 초반의 소녀라는 말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젊은 여성이었다. 

하루에 2~3개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 가는 일은 까먹지 않았고 두 사람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사건이 있던 그 며칠은 유독 피곤하고 잠을 잘 시간도 없이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원래 일하러 가는 시간이 아닌데도 일 좀 도와달라는 아는 언니의 말에 뿌리칠 수 없어 결국 이틀 내내 밤을 새우고 일을 했다. 그러다 직장에서 술을 몇 잔 먹었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단다. 그녀가 발견된 곳은 도로 한가운데. 새벽녘 텅 빈 도로에 대뜸 멈춰져 있는 차를 보고 지나가던 차량이 신고를 했고 경찰이 그녀를 찾아왔는데 본인이 왜 여기 있는지, 왜 운전을 하는지도 모른 채 누군가 잠에서 깨우는 것이 불편하여 손발을 휘둘렀고 거기에 경찰이 맞아 공무집행 방해죄까지 추가되었다고 한다. 

언니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을 선명하게 묘사했다.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손을 덜덜 떨면서 자신이 감옥에 갈까 봐 두려워하는 그 모습. 그 불안감에는 본인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사실도 있겠지만 그러면서 할머니 혼자 계시는 모습과 할머니가 생계를 위협받는 그런 순간까지 그려졌겠지?


언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라도 그녀의 처지를 법률가의 문장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음주운전은 명백한 잘못이 맞다. 그렇기에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잘못했습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용서해달라는 그 마음을 재판장에서 쓰이는 언어로 표현해 내는 것. 언니는 재판 당시의 판사의 말투를 생생히 기억해 전해주었다. 판사가 그녀에게 몇 가지를 물었는데 '너 왜 그랬어?' '다신 이런 짓 할 거야 말 거야'가 아니라 '괜찮니? 괜찮겠어? 힘들었겠다. 앞으로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 마치 이렇게 들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면 우리는 잘못을 구하고 죗값을 받고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아야지 반성하는 기간을 가지게 된다. 그 사이에서 상대방의 질책도 감수해야 하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있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잘못이 이후에 어떤 결과로 찾아올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마저 감수해야 한다. 


하물며 법을 어긴다는 것은 단순히 친구에게 사과를 하거나, 회사에서 경위서를 쓰는 문제와는 차원이 달라진다. 나는 그저 돌멩이 하나를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쇳덩어리로 나에게 돌아온다. 불안함이 극에 달하며 내가 이렇게 무지했나 돌아보게 된다. 잘못을 한 자신을 자책하고 혐오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상황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고 있는 스스로의 무능함에도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왜 비싼 돈을 주고 변호사를 선임하는지, 그 비싼 돈에 더 돈을 내서라도 검증받은 변호사를 선택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본인의 잘못을, 자신의 진심을 가장 법률가의 문장으로 잘 녹여내어 마음을 전해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변호사의 역할이었다. 그 진심을 잘 전달하는 일은 수많은 경험과 타고난 꼼꼼함, 한곳에 집중하고 몰두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능력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건 그 무엇보다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는 자세라고 느꼈다. 단순히 내 클라이언트, 내 의뢰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 이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원하는 마음. 그것이 이미 충분했기에 언니가 사건에서 늘 좋은 결과를 내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변호사가 된 건 아닐까.


이미 주변에 변호사를 찾는 지인들에게 언니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 그 과정이 어땠는지,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자세히 물어본 적이 없었다. 어쨌든 변호사를 찾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일 테니 굳이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서 그 사건을 상기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언니의 삶, 변호사로서의 삶이 더 궁금해졌다. 변호사는 잘못한 사람을 감싸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죄를 지어 그 죗값을 받더라도, 그 죗값을 받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의 불안함을 덜어주고 또한 그 사람이 정말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만 공정하게 처벌받도록 도와주는 일. 그게 변호사가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린 시절 언어 능력이 뛰어난 내게 아빠는 변호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저 집요하고 말 잘하고 이기는 거 좋아해서 뭐 하면 잘하겠는데?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그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해서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잘 전달해주는 머리는 똑똑하고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앞으로도 언니가 해나가는 모든 일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면서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고 그렇게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마음 깊이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요의 역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