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지방 18kg에서 10kg. 그리고 다시 18. (욕 아님)
운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해 5월. 통증이 어깨와 목을 타고 올라가 머리까지 괴롭히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역시 직접 불편한게 있어야 사람이 움직이는 모양이다. 평생 다이어트 결심이나 운동 결심을 해본 적 없던 내가 거금들여 필라테스 개인 레슨 20회를 끊었다. 목적은 단 하나 '자세 교정을 통한 통증 완화'
필라테스 센터는 집에서 1분 거리에 있었는데 센터 개인레슨실에서 우리집이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센터에는 필라테스를 할 수 있는 공간 말고도 미니 헬스장이 있었다. 런닝 머신 두 대, 스미스 머신과 랫풀다운, 레그 익스텐션 아주 기본적인 것들. 나의 필라테스 선생님은 언제든 와도 좋으니 공복 유산소가 체지방 감소에 좋다고 하셨고 나는 그렇게 눈 뜨자마자 아침에 운동을 나왔다.
그렇게 3개월을 매일 운동했다. 운동하는건 쉬웠다. 눈을 뜨면 그대로 옷을 챙겨입고 필라테스 센터로 가서 런닝머신을 하는 것 그것 뿐이었다. 따로 스트레칭도 하지 않았고 그냥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하다보니까 재미가 붙었다. 그렇게 체지방만 8kg가 빠졌다. (근육량은 0.9kg 증가했다.)
우리 센터는 7시에 문을 열었는데 사실 아무도 7시까지 오지 않았다. 그룹 레슨은 9시부터 시작하고 보통 개인 레슨도 아무리 빨라도 8시. 그걸 몰랐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7시에 갔는데 문이 열려있지 않은거다. 혹여나 선생님들께 폐를 끼칠까봐 조금씩 늦게 왔는데 아침 타임에 출근하시는 선생님이 나에게 그러셨다. '시온님 출근하시는거 같아요. 저희보다 대단하세요.'
돌이켜보면 살을 뺄 수 있었던 것에는 2가지 성공 요인이 있었다.
운동할 수 있는 곳이 매우 가까웠던 것과 살을 빼야한다고 강박관념을 갖지 않았던 것.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서 운동하기 시작했고 하다보니 재밌어서 이것 저것 찾아보면서 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저절로 살도 빠지고 도서관에서 인체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해부학 책도 찾아보고 그랬다.
5월부터 8월까지의 감량기가 끝나고 12월까지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내 몸에 만족했고 매일 매일 즐거웠다. 새로 옷을 사는 기쁨도, 사람들을 만날 때면 '왜이렇게 살이 빠졌어'라고 말해주는 것도 괜히 어깨를 으쓱거리게 만들었다. 내가 이루어낸 일로 내가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운동에 재미를 붙인 6개월의 시간 동안 두어번 해외여행을 갈 일이 있었는데 원하는만큼 먹어도 몸무게 변화가 크지 않았기 때문. 이번에도 별 문제 없을거라 생각했다. 아니 더 좋은 몸으로 돌아올거라 생각했다.
한달간 하와이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친구가 사는 곳에서 겨울을 보내는 여정이었는데 친구 역시 깨끗하게 먹고 운동하길 좋아하는 친구라 함께 헬스장에 등록하기로 했다. 서로 맛있는 것을 건강하게 챙겨먹고 좋은 에너지를 공유하는 일들을 상상했다. (실제로 그렇게 하긴 했다.)
친구가 다니는 헬스장에 등록을 하고 하와이에서 다른 섬에 놀러갔을 땐 짧은 일정에도 운동복을 챙겨가 꼬박 꼬박 운동을 했다. 하루를 운동으로 시작해야 제대로 시작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친구 무리 중 몇몇이 갑자기 하와이에 오기로 했다.
하와이에 원래 사는 친구와 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반면 한 친구는 같이 하는 걸 좋아한다. 덧붙여 친구는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하며 술을 좋아한다. 나는 한 달, 한 친구는 2주, 다른 친구는 1주일. 또 다른 친구는 이틀. 이렇게 친구들이 하와이에서 머무르게 되면서 일상적인 나날을 보낼 줄 알았던 나의 하와이 한달살기는 갑자기 파티로 변해버렸다.
매일 술을 마셨다. 나는 맥주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데 이때까지만 해도 즐겨마시진 않았으나 한번 마시면 끝까지 마시곤 했다. 그래서 하와이에 있는 모든 시간 내내 술을 마셨다. (심지어 하와이는 맥주값이 저렴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체지방이 딱 3kg가 쪘다. 한달 내내 술을 마신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 된다.
한달 내내 술을 마시면 이렇구나를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을 뿐 나의 심리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여전히 운동은 즐거웠다. 이렇게 첫번째 고비를 잘 넘어가는 듯 싶었다.
두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가족 모두가 이사를 갔다. 막 코로나가 시작되던 시기였고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아버지 혼자 이사하시라 간병하시랴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프리랜서고 지역적 제약을 받지 않는대다 코로나로 일도 없어 같이 내려가기로 했다. 내가 이사간 도시는 나에게는 단 한명의 연고도 없었다. 그저 엄마와 아빠 뿐이었다.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서울을 떠났다고 해도 엄마가 아프시니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도 없어 운동도 등록하지 못하고 정말 한달 내내 집에만 있었다.
보상심리라는게 이렇게 무서운 일이었던가.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마음껏 외식도 못하다보니 집에서 먹는 양이 늘어났다. 전에는 탄수화물 덩어리라고 생각했을 저 밀가루 와플도 틈나는대로 먹었다. 훠궈를 먹으러 가지 못하니 집에서 훠궈를 혼자 해먹었다.
코로나가 조금 진정세로 접어들면서 헬스장을 등록하긴 했으나 체지방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가장 큰 원인은 술.
예전에 살던 집은 내 방이 집에서 가장 안쪽에 있었다. 술을 사들고 집에 들어가면 누구든 내가 술을 샀다는 것을 알수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사간 집은 현관문 바로 앞에 내 방이 있고 긴 복도를 따라 들어가야 부모님이 머무르시는 방과 거실이 나왔다. 그러니 내가 술을 사들고 들어가도 냉장고에만 안 넣어두면 아무도 내가 술을 마신지 모르는거다. 그래서 허구한날 술을 마셨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마셨다.
하와이에 다녀오고 나서 나의 체지방은 14kg. 전주로 이사간 뒤로 17.2kg까지 한달에 1kg씩 꼬박 꼬박 쪘다. 처음엔 몰랐다. 어느 순간 입던 옷이 들어가지 않았다. 바지 안에 두꺼운 레깅스를 입고도 널널하던 바지가 이제 잠기지 않았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 지금 살 찐거네? 뭐든 영원한건 없었다. 유지하려면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는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2019년 5월부터 11월까지 유지했던 몸을 2020년 1월부터 6월까지 완벽하게 망가뜨렸다. 망가뜨렸다는 말을 쓴 이유는 단순히 살이 쪄서 뿐만이 아니다. 어깨와 목이 아프기 시작했고 그로 인한 두통이 재발했다. 원래 다니던 필라테스 센터에 갔더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라고 놀라며 내 골반이 얼마나 틀어졌는지 알려줬다. 뚱뚱해졌기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진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생활의 불편함이 시작된거다.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이제서야 나는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평생을 늘 비슷한 몸으로 살아왔기에 살이 갑자기 찌는 느낌을 몰랐다.
몸이 무거워지고 오래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자꾸만 누워있고 싶어졌다. 코로나로 인해 야외 활동량도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면서 행동도 빨라질 필요도 없었고 여유가 지나치게 되면서 행동도 사고회로도 느려졌다. 마음도 느려졌고 감정을 처리하는 속도까지 더뎌지면서 우울감이 찾아왔다.
고작 살이 찐거 하나 때문인데 정말로 내가 입에 아무 생각 없이 넣었던 것들이 나를 바꿔놓고 있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도 살을 얼마나 빼고 싶다는 목표는 없었다. 다시 마음 먹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마음이 나온다는 오래된 말을 믿는다. 살이 찌는 동안 내 마음까지 무거워졌다는 것을 겪었기에 나의 마음을 가볍게 유지할 수 있게 해줄 그런 가벼운 몸을 갖는 것. 그래서 어떤 환경에도 빠르게 적응하고 위험이 오면 피하고 슬픔이 오면 단단하게 맞설 수 있는 그런 몸과 마음을 갖는 것이 목표다.
감사하게도 오늘은 9월 1일이고 덕분에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 딱 좋은 날이 되었다.
올해 안에 다시 건강하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돌아가 감량의 역사를 다시 한번 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