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설친 밤 꿈을 꿨다.
되감기 하듯 내용을 되짚어 보면 뭔가 엄마한테 대차게 혼나서 집을 누가 나가네 마네 이런 내용이었는데 그럼에도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그리운 공간과 그리운 사람들 아니 그리운 순간들이 있었다.
나의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나의 집이 배경이었고 등장인물은 우리 엄마, 언니 그리고 나의 대만 친구 둘.
엄마가 곤히 주무시던 안방 그리고 그 옆의 화장실과 나의 방. 나의 방 문 뒤에서 두 대만 친구와 조용히 말하며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깨셨다.
마치 엄마의 화난 모습은 대학생 시절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왔을 때 혼나기 직전과 비슷했는데 엄마가 짐들을 현관 밖으로 재차 던지셨다.
꿈에서의 나도 어렴풋 엄마가 아프다는 걸 느끼고 있어서일까 언니에게 ‘엄마가 나가는 거 아니지?’라고 재차 물어봤던 것 같다. 차라리 나보고 나가라고 내 짐을 밖에 다 던져버리시는 게 더 내 마음이 편할 테니 말이다.
꿈에서 깨고 나니 온통 그리운 것 투성이인 것이 실감이 났다.
나의 집. 초등학교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쭉 자라온 곳. 거짓말 좀 보태어 눈을 감고도 지하철 출구에서 집까지 찾아갈 수 있을 나의 집.
여전히 무서운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엄마가 무섭기로 그렇게 유명했다.
매우 작았고 세탁기가 있는 뒷베란다와 연결이 되어있어 문을 조금이라도 덜 신경 써서 닫으면 내 방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신경질이 났던 나의 방. 별 볼 일 없는 여중생의, 여고생의, 여대생의 방이었지만 그 방 안 어느 곳 하나 내 시선이 닿지 않았던 곳이 없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런던에 다녀오면서 한 달 가까이 통화를 못하다가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영상통화를 했다. 오랜만에 엄마 얼굴을 봐서 엄마 꿈을 꾼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본 엄마에게 여전히 일방적인 소통을 했는데 그 느낌이 평소와 좀 달랐던 게 마음에 남았던 모양이다. 엄마의 맑고 또렷한 눈동자와 웃을 때 휘어지는 눈꼬리. 말하지 못해도 대화가 되고 있다는 그런 느낌들이 늘 충분히 있었는데 그런데 조금 다르다고 느껴져, 그래서 불안했나 보다.
말을 못 하고, 밥을 못 먹고, 물도 마시지 못하고 지낸 지 일 년. 차라리 신체 능력이 아니라 인지 능력이 사라졌더라면 지켜보는 마음이 덜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머리와 마음은 그렇게 멀쩡한데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하고 싶은 대로 말하지 못하는 그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자가 어떻게 알까. 괜찮아졌다 아니, 익숙해졌다 생각하면 다시 또 이런 작은 계기들이 찾아와 나의 마음을 슬프게 만든다.
게다가 요 며칠 대만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지독하게 했다. 부모님의 곁을 떠나는 것이 어려워 주저했던 생각들이 이제는 자유롭게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할 찰나에 대만 친구들과 엄마가 동시에 꿈에 나오니 엄마가 나를 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늘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는데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 건지 모호해진지 꽤나 시간이 흘러버린 것 같다. 시간은 흘러가고 걱정은 늘어가고 용기는 줄어든 내 모습이 내 맘에 썩 들진 않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좋은 면을 봐보려고 노력한다.
가족을 이렇게 끔찍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나에게 있다는 것, 이 마음을 있게 하는 건 어린 시절부터 충분히 받아온 사랑 때문이라는 것. 내 예상보다 자주 슬픔이 몰려와도 이렇게 글로 표현하며 나의 마음을 스스로 다독일 수 있다는 것. 비록 스스로의 나태함을 매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현실과 다른 나를 꿈꾸지만 그것이 어쩌면 지금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는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
솔직히 말하건대 바로 위 문단은 이렇게만 글을 쓰면 내가 너무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처럼 느껴져 혹시나 우울에 사로잡힐까 봐, 이 상황에서도 밝은 면을 찾기 위해 인위적으로 노력한 것이다. 그럼에도 노력을 할 수 있다는 자체도 행운일 테니 그냥 이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수용해보기로 한다.
이번 한 주도 찾아오는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하루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