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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보라 Aug 24. 2021

결혼 전 날, 전 부친 신부

새하얀 드레스 수줍은 발걸음 꿈꾸는 설렘~♫

나만을 믿고 내 곁에 선 소중한 그대 ♪

- 유리상자 '신부에게' 노래 中 -





비록 시댁에 들어가 살기로 했지만 나에게도 나름 예비신부의 설레는 로망이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오로지 내가 주인공인 행사라니! 생각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결혼식은 일요일이었다. 금요일까지 바쁘게 회사에 다녔으니 토요일 하루, 모처럼 푹 쉬며 준비하기로 했다. 미모 관리와 심신 안정, 우아한 네일아트, 신혼여행에서 예비 신랑과 함께 입을 커플 수영복 챙기기 등등.. 다 하기에는 토요일 하루가 짧을 것 같았다.


당시는 상경한 지 2년 가까이 된 시점, 마침 딱 맞게 자취 집 계약기간이 종료되었다. 그리하여 결혼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때에 미리 시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쩜 그렇게 순진했을까. 집주인에게 사정을 말하고 한두 달 더 살았어도 되었을 텐데;


어차피 같이 살 거 최대한 시작이라도 늦췄어야 했는데 말이다.




결혼이 일주일 가량 남았을 때, 시어머님께서 해맑게 말씀하셨다.


"너희 결혼식 끝나고 친척들 좀 집에 초대해서 차 한잔할게."

“네 ~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나는 신혼여행 가고 없을 테니까. 쿨하게 대답했다.







결혼식 하루 전날 토요일,

온라인 마트에서 30만 원어치의 식재료가 배달되었다.

불길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시외가 친척분들이 20명가량 우리 집으로 방문하시는 게 아닌가! 사유는 잔치 음식 준비… 응?? 결혼식 당일에 이미 점심으로 예식장 뷔페를 드실 텐데…?!! 분명 차 한 잔이라고 하셨는데????



시어머님께서는 결혼식 후에도 본인 친정 식구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하여 거하게 음식 대접을 하고 싶으셨던 것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음식을 다 차리기에는 벅차셨는지 본인의 든든한 지원군을 초빙하신 것. 시외삼촌, 시외숙모, 시외 사촌들과 그들의 배우자..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까지. 누가 누군지 헷갈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띠이용

삼십 분 후, 나는 전을 부치고 있었다.


우아한 네일아트를 해야 할 손으로 오징어를 자르고 있었다. 피부에 음식 기름과 냄새가 스며들었다. 음 먹지 말고 피부에 양보도 하라는데… 잘 된 건가??






그렇게 난 결혼식 하루 전날에 생전 보도 못한 온갖 잔치 음식을 가득 준비했다. 시외가 친척들은 웃으며 나에게 들어가 쉬라고 하셨다. 어머님과 달리 마냥 해맑지만 않았던 난 소매를 걷고 도왔고, 그들의 커피를 타다 날랐다.






마치 명절과도 같은 결혼 전야, 나의 얼굴에는 웃음이, 말투에는 상냥함이 가득했다. 늦은 저녁, 마지막 손님을 배웅할 때까지. 스스로의 프로페셔널함에 크게 감탄했다.








다음날 아침, 나의 결혼식 날

메이크업 담당자는 내 눈 밑에 수십 차례 컨실러를 두드려 댔다.


두 눈 아래로 진하게 드리운 다크서클 커버를 위해







시어머님은 그저 선하고 해맑으신 분이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정이 있어야 하고, 서로 돕고 의지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셨다. 며느리인 나는 본인 식구가 되었으니 시외가 친척들과 바로 가족처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시외가 친척분들 또한 다들 성품이 유하고 좋으신 분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원래부터  가족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저에게도 차차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고요! 

어머니임!! ^^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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