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수, 『말랑말랑 생각법』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면 '껍데기'파와 '알맹이'파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남들이 만든 것을 가져다가 겉껍질을 치장하여 더욱 화려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껍데기'파,
굳이 굳이 단단한 껍데기를 벗겨 그 속에 있는 무언가를 보여내는 부끄러움을 무릅쓰는 '알맹이' 파.
이전의 나는 빛나는 이력서 한 장을 위해 살아가는 진성 '껍데기' 파였다. 여린 속을 단단한 껍데기로 무장해야만 내가 이 세상에서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운명적이게도 '말랑말랑 생각법'의 저자 '한명수' 님과 같은 '알맹이'파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마음과 삶은 점점 바뀌고 있다. 나도 부디 저자의 '말랑말랑 생각법'을 전수받아 다른 이의 견고한 껍데기를 벗기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길 소망하며 이 책을 읽었다.
사실 다 읽지 못하고 중간에 저자의 북토크를 보러 갔다. 동생이랑 같이 보러 갔는데 제목은 '말랑말랑..'이라고 해 놓고 출판사에서 초대한 사람만 가장 앞 줄에 앉게 지정석을 해 놓은 것에 열이 받았다. 그래서 동생을 설득해서 가장 앞 줄에 앉았다. 초대한 사람들의 10%도 참석을 하지 않았는지 초대석은 결국 텅텅 빈 채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출판사 사람들이 이 책을 읽지 않은 듯했다. 뭐 나도 사 두고 초반만 열어보고 갔으니.
기분 나빴던 북토크의 첫인상과는 달리 빨간 작업복을 입고 나온 저자의 모습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빨간색의 PPT는 정말이지 기분 좋게 신선했다. 대게의 창의적인 사람은 글로 뭔가를 정리하는데 서툴고 부끄러움이 많기 때문에 책을 내고 발표에 나오는 경우가 잘 없다. 그래서 현직에서 잘 활동 중인 디자이너가(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낸 책은 아주 희귀하다. 운이 매우 좋아야 곁에서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정도다. 그래서 브랜드라는 주제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이 책을 '디깅더브랜드' 모임의 첫 책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딱딱한 껍데기뿐인 '이 브랜드는 이래서 성공했고 이 점이 좋고..'식의 사실을 병렬 식으로 나열하는 브랜드 관련 책은 가라! 말랑말랑한 생각법까지 알려주는 책이 진짜다.
좋은 디자이너는 항상 본질까지 깊게 파서 탐구하는 습성이 있다. 한명수 님도 그런 분 중 하나로 책마저도 겉 껍데기를 벗기고 그 속을 파고 들어가 결국에는 본질까지 도달하는 순서로 글을 쓰셨다.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라면 이 책은 디자이너 마인드 셋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디자인 베이스인 사람에게도 어디 가서 '디자인이란 자고로 말이야..' 하면서 설명할 일이 있을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예제들로 가득한 책이다. 혼자만 창의적이고 싶었던 나에게도 '쳇, 나 혼자만 창의적이면 뭐 해!'라는 집단 창작 시스템 챕터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영감 넘치는 독서 모임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들어 주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깨는 것이 목표가 되길 바라.
마침 독서모임에서 만난 한 친구가 나에게 ‘실패통장’이라는 것을 선물로 주었다. 실패도 모이면 자산이 된다니! 너무 유쾌하고도 마음에 위로까지 되는 문구가 써져 있었다. 올해만큼 규칙을 깨고 나만의 방법으로 살아보려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통장은 나만의 실패 자산으로 가득 채우고 내 생활은 말랑 말랑한 시도들로 가득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