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승무원의 근무시간
지난 9월 10일, 발리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홍수 및 침수가 163곳에서 일어났고, 사망자도 16명이나 발생한 발리 역사상 최악의 홍수 사태였다.
현지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본인들도 이런 폭우는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이상 폭우는 적도 로스비 파동(Rossby Waves)의 활동 강화와, 기후 변화로 인해 극단적인 강수 패턴이 심화된 것으로 현지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 적도 로스비 파동 (Rossby Waves) : 지구 대기에서 거대한 파동처럼 움직이는 공기의 흐름으로 바람과 대기압이 파도처럼 퍼져나가면서 구름과 비구름대를 몰고 다니는 현상
우리 현지 직원인 A의 집도 집안에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다고 한다. 이럴 땐 정말 별일 없는 하루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별일 없는 하루가, 별 볼 일 없는 하루는 아니란 걸 우리는 잠시 잊고 산다.
한국 예약센터로 항공편 정상운항 유무에 대한 문의가 접수되었다. 공항이 폐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는데, 공항은 정상 운영 중이다. 타 항공사 동향을 살펴보니 일부 항공편들의 손님들이 공항에 늦게 도착해 비행기를 놓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는 멎었다. 랩탑을 켜고 손님들에게 안전한 이동을 당부하는 카카오 알림톡을 발송했다. 여전히 나는 택시 안이다. 홍수로 인한 도로 침수와 정체로, 평소 30분이던 공항으로의 출근길이 3시간이나 걸렸다.
[카카오 알림톡]
...
지난밤 집중호우로 발리 전역에 극심한 교통 혼잡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항은 정상 운영 중이며, 안전한 이동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공항으로 출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운항과 관련된 특이사항은 경영층까지 보고가 된다. 경영진으로부터 승무원들이 공항 쇼업(show-up) 시간에 늦지 않도록 잘 확인하라는 지침도 받았다. 아마 일전에 발생한 K 항공사의 승무원 지각으로 인한 항공편 지연 출발 관련 뉴스기사 때문인 것 같다.
승무원 호텔에 연락을 해서 호텔에서 공항까지 오는 도로사정에 대해 확인을 하였다. 도로 사정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승무원들이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호텔을 나서는 것으로 정리를 하였다. 다행히 우리보다 한 시간 앞서 J 항공사 승무원들이 먼저 출발을 하기에, 그쪽의 소요 시간을 체크해 보면 큰 문제가 없을 듯싶었다. 저녁이 되자 도로 정체 및 통제는 모두 해소되었다. 우리 항공편의 승무팀은 평소와 같은 시간으로 정상 도착 하였고 항공편도 정상 출발 하였다.
간혹 뉴스를 보면 승무원 근무시간이 초과되어 항공편이 결항되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손님들은 "우리는 집에도 못 가는데, 승무원들은 퇴근이냐?"라고 울분을 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국가의 안전관리체계에 따라 이루어지는 부분이라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다만 지연이나 결항등 항공편의 비정상 운항이 발생한 이후, 항공사들의 후속 대응 절차는 책임감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비행기 사고는 한번 발생하면 대형사고가 되기 때문에 국가에서도 법적 장치를 마련하여 철저하게 항공사들을 관리감독한다. 항공안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운항승무원 기준으로 근무시간 및 휴식시간은 크게 세 가지 시간 개념으로 나뉜다.
1. 승무시간 (Flight Time)
비행기가 이륙을 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착륙 후 정지할 때까지 총시간이다.
2. 비행근무시간 (Flight Duty Period, FDP)
승무원이 근무의 시작을 보고한 때부터 마지막 비행이 끝날 때까지의 총 근무시간이다. 비행 전 브리핑, 탑승 준비, 착륙 후 업무 정리까지 모두 포함이 된다.
3. 휴식시간 (Rest Period)
승무원이 업무 종료 후 최소한으로 가져야 하는 휴식 시간이며, 비행근무시간에 따라 최소 휴식시간은 달라진다.
** [참고자료]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항공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서 앞서 인용한 승무원 지각 뉴스에 대해 항공사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승무원들의 피로도 관리와 직결된 법적으로 규정된 근무시간을 근거로 승무원들은 근무시간에 대한 개념이 철저할 수밖에 없다. 기사에서 처럼 손님은 미리 나오는데 승무원은 왜 늦게 나오는 것인가와 관련하여, 기본적인 승무원의 근무시간에 대한 개념부터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지각은 하면 안 된다.
항공사는 비행을 위한 승무원 쇼업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쇼업 시간에 늦을 경우 회사 내규에 따라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뉴스에서 지각이라고 표현한 항공편의 승무원들은 공항으로 향하는 셔틀버스 안에서 진심으로 마음을 졸이며 걱정했을 것이다.
항공사의 현장 관리자들은 이런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고 꼼꼼하게 상황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리고 특이사항이 발생하면 외부고객(손님)뿐만 아니라 내부고객(승무원 및 유관부서)들에게도 관련 상황에 대해 신속히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부분들은 어떤 한 사람의 경험과 센스로 처리하기보다는 업무 체크리스트로 관리되어야 한다. 체크리스트 하나하나가 이전의 실수와 아픔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보완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업력이라고 부른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항공편 지연이나 결항은 분명 짜증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승무원의 비행시간 제한은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승무원 비행시간과 관련된 항공편 비정상 운항 뉴스가 있다면, 이면에 이런 맥락이 있다는 것만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