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중국 제남(济南, TNA) 취항기
작년에 우리는 코로나와 안전하게 이별을 했다. 국경은 다시 열리고, 항공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23년 복항과 신규취항을 위해 다녔던 출장 기간을 계산해 보니 115일이다. 항상 마음속으로 되뇌는 것이 있다. "내가 없어도 비행기는 뜬다. 다만, 내가 있어서 비행기는 더 잘 뜰 것이다."
우리 회사는 중국에 칭다오, 서안, 연길, 장가계, 싼야 등 총 5개 도시의 정기편을 운항 중이다. 그리고 올해 첫 전세편 운항을 준비하는데, 그곳은 바로 산동성의 성도, 제남(济南, Jinan, 지난)이다.
검색해 보니 도시에 72개의 유명한 샘이 있어서 "샘의 도시"라고도 불리며 제강(济水)의 남쪽에 위치한다 하여 지난(济南)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칭다오 보다 인지도는 낮지만, 그래도 산동성의 큰 형님이다. 다만 돈 잘 버는 동생, 칭다오한테 살짝 풀이 죽은 형님 모습 같다.
인천공항에서는 산동항공과 티웨이항공에서 인천-제남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부산에서 제남은 우리가 처음이다. 전세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상징성을 부여하고 싶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운항개시 일주일 전 팀장님과 함께 이곳 관계기관들을 방문했다. 해관 - 변방 - 구안반 순서로 방문해서 인사를 진행했다. 부분별로 모두 환대를 해주었고 향후에 꼭 정기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덕담도 건넨다.
* 항공편 운항 관련 중국의 관계기관
1. 변방 (边检) : 출입국 검사. 2019년 전까지 군에 속해 있었으나, 지금은 공안부 소속
2. 해관 (海关) : 세관과 검역 업무 수행
3. 구안반 (口岸办) : 시정부 소속으로 물류(항공/철도/고속도로 등) 네트워크 개설 및 발전을 촉진
팀장님은 '옛날' 기억들을 상기하시며, 항상 기관들의 앞과 뒤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는 팀장님께 그 옛날이 벌써 '10년 전'이라고 계속 상기시켜 드린다. 중국도 많이 변해가고 있다. 해관은 우리가 준비해 간 선물도 한사코 받지 않았다. 운항 확정이 되면 다음 주에 나는 다시 이곳 제남으로 넘어와야 한다.
운항 허가(slot)는 받아 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운항시간대를 일부 조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외비라 이곳에 다 풀어놓을 수는 없지만 운항 시간대 조정이 되지 않으면 운항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머릿속엔 이미 플랜 A, B, C가 모두 준비되어 있다.
운항 개시일 일주일 전에도 아직 스케줄 조정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운항 개시 4일 전,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로 최종 스케줄을 승인받는다. 그리고 나는 급히 항공편(산동항공)과 호텔을 예약해서 다시 제남으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
운항 결정이 최종적으로 확정이 되고, 긴급히 운항 준비를 시작한다. 연길과 칭다오 지점의 직원 2명을 소집했다. 이제 우리는 어벤져스가 되어 지구를, 아니 우리 비행기를 아무 문제 없이 운항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국어를 약간 이해하는 나와 중국어와 한국어를 둘 다 잘하는 우리 직원 두 명, 이렇게 총 3명이서 운항 준비를 시작한다.
* 오퍼레이션 세팅 준비 체크리스트
1. 부문별 오퍼레이션 교육 및 운영 절차 수립 : 카운터, 램프, W&B 등
2. CIQ 신고 절차 확인 및 정리
3. 오퍼레이션 특이사항 전파 : 공항, 캐빈 (+ 케이터링)
4. 카운터 시스템 (Travelsky) 테스트 및 FIDS 점검 등
이제 눈 감고도 가능한 업무들이지만, 항상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왜냐면...
30대 초반의 켈리는 '카이셩'이라는 회사의 사장님이다. 해당 업체는 항공사에 인력을 지원하는 업체이고, 우리 회사의 Flight Operations 업무를 지원해 준다. 그녀는 예전에 항공사에서도 근무를 했고, 남편은 산동항공에 근무 중이다. 이번 운항을 위해서 중간에서 여러 가지 코디네이팅 업무를 지원해 주었는데, 덕분에 운항 관련 프로세스가 한결 촘촘해졌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운항준비를 하는 것 자체가 우리 회사에 부하가 많이 걸리는 상태였는데, 정말 야구의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그녀이지만 이곳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앞서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운항 하루 전, 취항 편 운항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급유사에서 우리와 급유 공급 계약이 되어 있지 않아 지원이 불가하다는 통보가 왔다. 운항 당일, 우리는 급유 계약서를 본사로부터 받아서 업체에 보냈다. 하지만 업체는 이 계약서는 효력이 없다고 한다. 계약서가 아니라 본인들은 order number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또 서둘러 플랜 A와 B를 만들었다.
* 플랜 A : 항공편 출발 전 모든 것이 잘 확인되어 정상적으로 급유 지원을 받는다.
* 플랜 B : 금일 필요한 만큼의 Jet Fuel을 현금을 주고 사서 급유 지원을 받는다.
결론적으로 계약 대리인들 간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서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항공기 랜딩을 하고 20여분이 지나서 우리는 한국 본사를 통해서 order number를 받았고, 급유는 정상지원 되었다.
부산에서 온 승무원들은 입국을 하지 않고 바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 비행시간이 짧아 레이오버(layover)를 하지 않고 퀵턴(quick turn) 패턴으로 근무를 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이런 퀵턴 승무원들은 별도로 심사를 하지 않는데, 중국은 변방(이미그레이션)에서 신원확인을 다시 한번 받고 돌아간다.
* 중국 변방의 퀵턴 승무원 신원 확인 방법
1. 옛날 중국 : 모든 승무원이 하기 후 직접 변방으로 가서 신원 확인
2. 지금 중국 : 승무들은 하기하지 않고, 지상직원이 여권을 모아서 변방에서 신원 확인
3. 조만간의 중국 : 승무원 여권 확인 절차 폐지 (연길 공항은 이런 방식으로 전환 준비 중이라고 한다.)
제남은 '옛날 중국'의 방식으로 승무원들의 신원을 확인하는데,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승무원들 변방 이동
2. 도착 정보 등록 : 여권 정보 스캔 및 안면 정보 수집
3. 출국 정보 등록 : 여권 정보 스캔 및 안면 정보 수집
4. 항공기 복귀 및 운항 준비
도착과 출발, 두 번의 정보를 등록하였고 9명의 신원을 등록하는데 45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오늘 취항편에 대한 공항 소방대의 물축포(Water Salute)는 없었지만, 중국은 첫 운항편에 대해 이렇게 꼭 기념 촬영을 한다. 어떤 이는 요식행위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사진 한 장이 새로운 항공편 운항을 위해 땀 흘린 여러 사람들의 노고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행복한 찰나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이곳 변방의 승무원 신원 정보 등록 절차로 인해 약간의 지연이 있었다. 하지만 안전하고 무사히 첫 편의 운항을 마무리하였다. 항상 첫 운항편을 보낼 때면 안도감과 뿌듯함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런 도파민은 끊기가 힘들다.
운항 스케줄이 점심 식사시간 사이에 있다 보니, 식사도 못하고 온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입안에서 통증이 느껴져 살펴보니 혓바늘이 돋아 있었다. 배우자는 항상 일을 좀 쉬엄쉬엄 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잘 되지가 않는다. 남이 보지 않더라도 설렁설렁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방금 나의 배우자님으로부터 피곤하지는 않은지, 컨디션을 묻는 카톡이 날아온다. 나는 '괜찮다'라고 답장을 보낸다.
2024.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