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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Apr 11. 2022

회사가 아이를 키워줍니다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기쁨, 직장 어린이집


그렇다. 정말, literally!

회사가 아이를 키워주고 있다.

요즘의 나는 매일 아침 딸과 함께 출근하고 딸과 함께 퇴근한다.

아이가 그 어린이집에 다닌다고 말만 하면, 회사에서 마주치는 모든 이가 너도 나도 '좋겠다, 잘됐다!' 하는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한 지 올해로 10년! 내가 겪었던 그 모든 복지를 뛰어넘는 차원의 복지를 누리고 있다. 먼저 자랑을 좀 하고 시작해보자면 이렇다...!

출처 : 엔씨소프트 공식블로그
https://blog.ncsoft.com/we-news-220311/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이름은 '웃는땅콩' 어린이집이다. 작은 아이들을 '땅콩'이라고 일컫는 귀여운 표현을 생각하며,  땅콩 같은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웃는 모습이길 바라며 지었다는 이름은  캐릭터와 함께 보면 정말 찰떡이다. 이름을 이야기할 때마다 귀여움에 절로 미소 짓게 되는 이름.

'웃는땅콩 키즈'인 나의 딸 덕분에 나는 삶의 여러 가지 면모 - 나의 가정, 나의 일, 직장의 의미, 기업의 역할, 공동체의 의미에 이르기까지- 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이를 직장 어린이집에 보내니 좋은 점들이 많다.

1. 사무실로 향하기 직전, 아이의 뽀뽀와 포옹으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아침이 힘든 건 똑같다. 오히려 더 힘들기도 하다. 동네 어린이집에 보낼 때는 '후루룩'이던 것들이 차를 태워서 회사까지 함께 와야 하는 시간이 되어 버리니 힘든 것들이 늘기는 했다. 훈육이 불가능한 두 돌 이전의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차에 태워 꽤 긴 시간 마음을 졸이며 운전해야 하니깐. 그렇게 하루에 내가 쓸 수 있다 생각하는 에너지의 반 이상을 출근길에 소진해 버린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아이와 헤어질 때 아이가 해 주는 뽀뽀와 포옹 한 방이면 에너지가 다시 찬다. (완충까진 거짓말이고 80프로 정도!!) 그러고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1개 층만 올라가면 나의 사무실이니! 나의 하루는 다른 사람들보단 조금 힘찬 것 같다. 그래서 별 거 아닌 일인듯하지만 감사하게 되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뽀뽀받고 엘리베이터만 타면 출근이네! 너무 좋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침 정신 없는 와중에도 온도 체크하며 남겨보는 투샷



2. 아이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맡길 수 있게 되었다.

까탈스러움이라곤 없던 사람도 부모가 되면 까탈을 부리게 된다. 모든 게 대충이고 '좋은 게 좋은 거'이던 사람도 내가 찾을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찾고, 최대한 모든 리스크를 배제하고 싶게 변하게 된다. 각자의 한계치가 다를 뿐. 아이가 비교적 어릴 때(생후 10개월)부터 기관 생활을 하고, 하원 도우미 선생님의 손에 맡겨졌다(생후 15개월부터). 직장 어린이집으로 옮기기 전까지 1년의 시간을 그 선생님들과 보냈다. 그 모든 시간 동안에 아이를 맡기게 되었던 선생님들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여전히 큰 분들이지만, 신뢰의 시간을 쌓기 전까지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덜컥 그분들을 믿어버리기엔 무서운 뉴스들이 너무 난무하는 세상이니깐. 직장어린이집에 맡기니 좋은 점은, 내가 그 선생님들과 신뢰의 시간을 쌓지 않았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는 것이다. 너무 간단하다. 선생님들을 '동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어린이집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이다. 커리큘럼과 좋은 시설도 자랑할만한 부분이지만 어린이집의 모든 교사 분들이 회사 소속 직원이라는 점이다. 제휴를 맺어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내에 정식으로 커리큘럼 개발실까지 두고 실제 조직으로 운영한다. 겉핥기식의 운영이 아니라 정말 이 '기능'을 회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겼다는 뜻일 테다. 거기서 오는 '고용안정'과 '경력개발'에 대한 의지가 아이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발현될 거란 믿음이 있다.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동료'의 아이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나를 안심하게 했다.

등원 첫 주, 내가 남긴 데일리 노트
받고서는 내가 설렜던 선생님의 손편지


3. 내가 일하느라 넓혀주지 못하고 있는 아이의 세계가 이곳에서 넓어지고 있다.

너무 이르게 일대일 케어의 시간을 끝내버리고서 아이에게 가지게 된 유일한 미안함은 내 아이가 겪는 세계만 너무 얕은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측면에서 넓어지는 세계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엄마 혹은 아빠가 일대일로 케어해줄 때보다는 많은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육아를 하면 매일매일 '오감놀이'같은 것을 하게 해주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일하는 부모에게는 너무나도 큰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많은 아이들이 '엄마/아빠표 놀이', 문화센터', '방문미술', '여행', '키즈카페' 등등의 경험을 하며 세계를 넓혀가는 동안 우리 아이만 심심한 일상을 보내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다. 그런 걱정은 우리 회사의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게 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첫 적응을 위해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었던 첫 주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마저도 영감이 샘솟을 것 같은 다채로움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들어서면 아기거북이들이 사는 작은 수족관도 있다!

단순히 보육에 그치지 않고 아이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 한다는 신조답게 웃는땅콩 어린이집은 '화려 그 자체'다. 아이들이 매일 마주하게 되는 공간에서도, 교구에서도, 심지어 식단에서도 그 노력이 엿보였다. 엄마 아빠는 한 번도 만들어주지 못했던 유기농 재료로 만든 '꿍팟퐁커리'와 '얌운센'을 먹을 수 있다니.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나의 하루까지 다채로워지는 이 마음을 영양사, 조리사 선생님들은 아시려나!?

내가 기대하고 기다리게 되는 세계음식DAY

 



이렇게 좋은 점을 많이 느끼고 나니 아이를 직장 어린이집에 보낸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사이에 나의 관점도 많이 달라졌다. 바꿔 말하면 '직장 어린이집'의 순기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나는 나와 아이가 다니고 있는(?) (여기서의 물음표는 아이에게 붙여본다. 아이가 다닌다고 할 수 있으려나? 아무튼)

1. 이 회사가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한다.

본인이 속한 회사가 잘 안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가족이 엮이지 않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마음으로 회사의 나아감을 바라게 됐다. 나 혼자 다니는 회사가 아닌 나의 아이까지 다니는 회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수치적인 성공만을 바라는 게 아니라 회사가 '옳게', '더 낫게' 일했으면 좋겠고 누구에게 이야기해도 떳떳한 회사가, 누구에게 말해도 '오~~'하는 회사가 됐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나 같은 일개 조직원이 그 그림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크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그리고 '회사가 나의 아이에게 이렇게 잘해주는데??', '회사 덕에 아이도 나도 우리 가족도 이렇게 행복한데??' 하는 생각에 조금 더 보탬이 되려고 마음 쓰게 된다.


2. 공동체의 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회사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게 되면서 미약하게나마 느껴보게 된 클리셰가 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내 머리에서 이런 생각이 나올 줄이야. (물론 여기서 나의 영향력이 '국'과 '천하'까지 나아갈 일은 절대 벌어지진 않는다.) 이 고어에서 '수신'의 주체는 '나'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복잡한 세상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요구받으며 살고 있다. 내 몸과 내 마음이 나의 의지대로만은 돌아가지 않는 시대이다. 그래서 회사의 구성원이 '수신'을 잘할 수 있게 돕는 것에 '회사'가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는 것이다. 요즘 '좋은 회사'의 기준이라 함은 구성원의 몸과 정신건강을 돌보는 것도 한몫을 차지하지 않을까. 회사의 배려로 내 몸과 마음이 편해진 것은 확실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도 더 행복해졌다. 각자의 사회생활을 마치고 만나게 됐을 때, 나누게 되는 에피소드도 한층 다채로워졌다. 알게 모르게 나처럼 행복해진 구성원들이 회사에서 발하고 있을 긍정적인 영향력이 분명 있을 것이다. 구성원의 행복이 회사의 행복이라는 전제를 놓고 출발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어린이집에 이런 정성을 들였을 수가 없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치국평천하'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해볼 수 있는 행복한 구성원들은 만들었을 것이다. 회사를 단순히 '조직'이라 생각하면 운영하지 못했을 어린이집이다. '공동체(운명이나 생활을 같이하는 조직체)'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공동체의 배려로 내가 얻게 된 동력을 생각하면 기업이라는 조직이, 혹은 국가라는 조직이 공동체의 의미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거기에 속한 구성원들이 해야 할 노력의 몫도 커지겠지만, 권리에 비례해 의무를 늘려가는 것이 우리가 그려볼 수 있는 좋은 방향의 변화가 아닐까.

하원길에 우리딸을 보고싶다며 함께 와준 동료들이 남겨준 사진, 이런 식으로 쌓이는 동료들과의 추억도 너무 좋다. 인생의 일부를 공유하는 기분..!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했던가,

'온 마을'까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많은 이들이 '노고'가 필요한 건 맞다. 일하는 엄마가 많아지는 요즘에 생긴 말이 아니라 옛날부터 대대로 이어져 온 말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만큼 아이 키우는 일에 들어가는 노력이 많단 이야기일 것이다. 그 노력 중 정말로 많은 부분을 회사에서 맡아주고 있다. 아이의 먹는 것과 놀이 경험, 사회관계와 예절,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학습까지 맡아줄 것이다. 가장 많은 것을 배우는 중요하디 중요한 시기에 엄마 아빠를 대신해 아이를 맡고, 성장을 책임지겠단 결정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결정을 만들었을 마음들과,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과정들이 잘 느껴지는 공간에서 아이가 생활할 수 있어서 기쁘다. 우리 회사의 '웃는땅콩 어린이집'은 그 철학과 가치를 담은 책을 출간했을 정도로 어린이집에 '진심'인데, 그 책에서 읽었던 어느 구절은 내 마음을 뭉근하게 만들었었다. 이런 마음이라면 '정말 나는 복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부디 이런 마음을 먹는 '창업자', 'CEO', '경영진'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유해 본다.


실제로, 내가 회사 어린이집에 품은 유일한 아쉬움은 이 좋은 걸 많은 부모들이 누리지 못해서 아쉽다는 점뿐이었으니깐. 더, 더 많은 부모와 아이들을 품을 수 있게 우리 회사는 더 흥하고! 다른 회사도 더 흥하고! 사회도 변했으면 좋겠다.


치열한 회사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의 최선을 요구하는데, 여기에 아이들까지 돌보다 보면 온갖 준비물을 챙기는 것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성장시키기 위해 두세 명분의 일정을 계획하고 살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워킹맘들은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는 백 미터 달리기에서 혼자만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서 있는 듯한 무게를 종종 느낍니다. 사실 어린이집을 처음 시작한 것을 이런 모래주머니를 다리에 달고 백 미터 달리기를 해야 하는 구성원들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자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어린이집 하나로 각 가정과 아이의 사정이 모두 고려되어야 하는 복잡다단한 문제가 모두 해결될 거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사회와 가정 그리고 회사에서 각자 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점진적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또 누구나 원하는 자아실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한다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웃는땅콩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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