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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Jul 20. 2024

딸아, 엄마가 나쁜 시력을 물려줘서 미안해

두 돌 아기에게 안경 씌우며 괴로웠을 엄마에게도 미안해

나는 눈이 정말 나빴다. 두 돌 때부터 안경을 썼었다. 이 사실을 말하면 다들 그게 가능하냐 묻곤 한다.

거의 본 적 없는 케이스일 것이다. 렌즈삽입술을 해준 의사 선생님도 그랬었다. 자기 의사 인생 통틀어 상위 1프로의 고난도 수술이었다고.

결혼 전, 엄마가 정말 마지막 숙원사업처럼 내 눈수술을 감행했었다.

엄마가 보기에도 예쁘지 않을 정도로 뱅뱅 도는 안경을 사위가 계속 보는 게 싫었던 것 같다.

그때가 엄마가 돌아가시기 2년 반 정도 전이니 정말 죽기 전 내 마지막 숙제를 해치운단 마음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거의 오백만 원이 되는 수술비를 결제하고선 “이제 AS 끝났다”라고 속 시원한 표정으로 말했었다.

그땐 내가 무슨 불량품이냐며, AS는 웬 AS냐 했었는데.

오늘 정작 만 4살이 얼마 지나지 않은 딸이 ‘약시’ 진단을 받고 안경 처방을 받고 나니

돌아가신 엄마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됐다.


‘그때 엄마 이런 마음이었어? 너무 속상하고 미안한데… 엄만 아들에 딸까지 눈이 나빠서 곱절로 속상했겠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젊은 날의 엄마가 너무 마음 고생했다고, 다 커서 돈도 버는 딸내미 수술비를 바득바득 대 준 게 이런 마음이었냐고,

너무 고맙다고 나는 덕분에 편하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말할 수 있는 엄마가 없다.


아직도 내 머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잔상과 감정 몇 가지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됐을까. 안경을 낀 채로 넘어졌는데 무릎에 피가 철철 날 정도로 다친 그 순간에도 나는 깨진 안경이 더 절망스러웠었다.

알이 깨진 안경을 쓰고(벗으면 진짜 아무것도 안 보여서 이동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나빴으니까), 집으로 울면서 걸어갔던 기억이 있다.

집이 넉넉하진 않았기에 일단 그 비싼 안경을 다시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 많이 걱정됐었다. 엄마에게 혼날게 뻔했다. 진짜 서럽게 눈물을 삼키면서 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해마다 학교에서 하는 신체검사 때 시력판을 잽싸게 외우던 기억, 빨리 외우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던 긴장감이 기억난다. 친구들 먼저 검사하는 동안 내 순서를 기다리며 재주껏 미리 시력검사판을 보고 숫자를 외웠었다. 어차피 안과 정기검진 가면 실제 시력이 다 들통날 텐데, 매 맞는 걸 미루는 마음으로 거짓말로 시력이 나빠지지 않은 척했다. 진짜 시력으로 말해지면 엄마가 속상해할게 너무 눈에 보였었다. 왜곡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실제 안과에서 시력 검사를 한 날, 너무 빠른 속도로 눈이 나빠진 때에 ‘어쩌노’라고 한탄하며 눈물이 그렁했던 엄마 얼굴이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딱 그때의 엄마 입장이 되었다.


나이도 그때의 엄마와 비슷하고, 딸의 시력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는 인생을 살게 됐다.

물론 그때의 엄마보다 난 훨씬 낫다 여러 면에서.


뚜벅이에 아이가 둘이라 대중교통 타고 쌩고생을 해야 했던 엄마와 달리 나는 딸 하나고 운전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 시절보다 기술이 너무 좋아져 걱정을 달고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 안경은 정말 두껍고 잘 깨지는 유리알이었는데 오늘 내가 안경원에서 손바닥에 올려본 안경알은 너무 가벼워서 생경했다.

게다가 착용만으로 근시가 심해지는 걸 억제해 주는 렌즈가 나왔다니 세상 놀랍다.


그래서 막 청승을 떨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너무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절로 나려 한다.


안경 안 쓴 맨 얼굴의 딸을 볼 날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니.

말간 얼굴로 저녁을 먹고 그림을 그리고 종이접기를 하는 딸 얼굴이 오늘따라 어찌나 예쁘던지.


꾸미지 않고 얼굴에 뭘 더하지 않을 때 가장 이쁜 나이를 이렇게 지나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게 정말 오롯이 나 때문이라 너무너무 속상하다.


그 눈이 얼마나 나빠지려나.

나만큼은 아녔으면 좋겠는데.

나만큼이면 성인이 되기까지의 그 시간들이 엄마로서 너무 괴로울 것 같아 걱정된다.

이럴 때일수록 엄마가 담대해야, 아이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거라 오늘 하루 종일 과한 연기를 했더니 마음이 지친다.


안경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병원서 말을 들은 순간부터

행여나 아이가 이게 안 좋은 거란걸 직감적으로 알게 될까 ‘안경 쓰면 진짜 예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아마 눈치 챘을 거다. 병원을 방문해 시험보듯 시력판을 보며 숫자 읽는 게 결코 좋은게 아니라는걸.

병원에는 귀신같이 그런 분위기가 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그 느낌.

그러니 갑자기 ‘안경은 쓰기 싫다’고. ‘오늘부터는 눈 절대 안 찡그릴 테니까 안경 안 쓰게 해 주세요’라고 말한게 아닐까.

그 말은 그냥 어쩔 줄 몰라하다 무시해 버리게 됐고, 안경점에 가서는 너무 이쁘고 멋지다며, 친구들도 선생님도 다 멋있어할 거라고 과하게 반응했다.


이런 연기는 몇 년 안 가겠지 싶다. 이런 어설픈 연기에 속는건 고작 7살 정도가 마지막일테니까.

딸이 청소년이 되어갈 때쯤엔 나도 대놓고 속상함을 표현하고 있을지 어떨지 잘 안 그려진다.

나는 딸에게 어떤 엄마로 비칠까 가늠이 안 간다.

우리 엄마가 잔짜증이 많고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생각했었는데

오늘에서야 생각해 보니 8 할은 내 시력 때문이었겠다 싶은 거다.


뭘 해줄 수도 없고, 해도 좋아지지도 않고, 속절없이 어마무시한 속도로 시력은 악화되고.

본인이 물려준 거라 맘껏 속상해도 못하고, 본인 탓과 팔자 탓 그 중간 어디쯤을 계속해서 왔다 갔다 했을 텐데.

결코 낙천적이여질수가 없었을 걸 생각하니 엄마에게 되려 내가 미안해졌다.


그때의 엄마 마음을 물을 길이 없어 그냥 혼자 이렇게 생각만 해본다.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같이 속상해했을 밤을.

혼자 겪어내기가 싫어져 이렇게나마 주절주절.

그럼 엄마한테도 내 속마음이 가닿으려나.


이제 막 이 단어 저 단어 배우며 한참 커가는 엄마 외손녀가 본인의 딸을 닮아 똑같이 눈이 나쁘다고.

그래서 엄마 딸이 아주 많이 속상해하고 있다고.

젊은 날의 힘들었을 30대의 엄마를 꼭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데,

그러지 못하고 엄마를 보내서 미안하다고.

우리 딸은 나만큼은 나쁜 눈이 되지 않게 엄마가 하늘에서 잘 봐달라고.

이런 마음들을 보내고 싶다.


엄마가 많이 많이 보고 싶다.

오랜만에 꿈에라도 나와주면 참 좋겠다.


202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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