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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수지 Apr 12. 2018

두번째, 하루종일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기

나의 삶을 여행하는 방법 / 버킷리스트



그냥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시험이 끝나고 한가한 어느 하루, 무작정 카페로 갔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밖을 바라보니 사람이 반, 차가 반 나와는 다르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실천해보기로 마음먹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 바로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저 가장 간단한 것이기도 하고, 시험이 끝난 뒤 차분히 한가로움을 즐기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원래 생각으로는 유럽 어느 나라의 한 광장에서라든지, 인도의 갠지스 강 같은 아주 낯선 외국을 상상했었지만 내가 이것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막상 어느 곳이든 상관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인 '류시화'의 글을 좋아한다. 류시화의 에세이 중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을 읽고 처음으로 작가를 보며 책을 골라보게 되었고,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시에 한동안 푹 빠진 적도 있었다. 그의 여러 작품들을 읽으면서 늘 했었던 생각이지만, 내가 조금만 더 일찍, 혹은 더 늦게 그를 알게 되었더라면 그의 글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동이 조금은 덜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글을 통해 내가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공감과 감동을 느끼기에 아주 적절한 시기에 접하게 된 것 같다는 뜻이다. ‘지구별 여행자’와 또 다른 에세이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여행에 대한 꿈과 진로, 미래 더욱 나아가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펼칠 수 있었고, 그가 쓴 시를 읽으며 마음속 상처를 치료하고 또한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 중 하나가 있다. 인도를 여행하던 그가 며칠 동안 어떤 마을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하루를 시작하며 늘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던 한 인도인이 있었다. 처음에는 완벽하게 짠 하루의 계획을 그 인도인에게 자랑을 했고, 그는 훌륭한 계획이라며 칭찬과 함께 즐거운 여행을 빌어주었다. 더욱 더 훌륭한 계획을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에 매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그에게 검사를 받다보니 나중에는 지쳐버려, '오늘은 아무런 계획도 없으니 사람이 많은 광장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나가는 사람이나 구경하려 한다'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그 인도인은 이제야 진정으로 여행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며 웃어보였다.



글을 통해 전해진 깨달음


진정한 여행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인도인이 지켜봐 온 수많은 여행자들은 과연 진정한 여행을 하고 있었을까? 정말 가만히 사람들을 구경하고 앉아있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 인도인은 여행이라면 그저 특별하거나 아름답거나 경이로운 어떠한 것들을 보는, 여행이 아닌 구경을 하는 사람들, 당시의 류시화와 그의 글을 읽는 우리들에게 깨달음을 준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반드시 들어가 있는 항목 중 하나일 것이다. 나 역시 그렇지만 사실 그런 나도 그동안 여행에 대해서 단순한 구경으로만 생각해온 것 같다.

 

나는 평소에 특히나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다닌다. 내가 가는 방향과 그 길의 앞만 보고 걸어갈 뿐 주변의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있고, 어떤 표정을 하고 있고, 누구와 함께 있는지 그런 것들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래서 가끔은 아는 사람들을 못 알아보고 지나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이다. 늘 나의 주변에 당연하게 있기 때문에, 혹은 나와는 상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나쳤던 낯선 사람들이 그 날만큼은 다르게 보였다. 엄마의 양쪽 손을 잡고 걸어가는 두 아이의 해맑은 얼굴과, 휴가를 나와 애인과 데이트를 하고 있는 군인, 운동하는 노부부 등등 많은 사람들의 존재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하루, 일상 그리고 그 순간의 표정과 감정이 보였다.

 

그동안에도 몇 번 들렀었던 그 카페가 처음 오는 공간처럼 보이고, 자주 걷고 보던 길이 순간 또 다른 차원에 들어온 것 같이 모습만 같을 뿐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여행이라는 것이 꼭 낯선 곳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이렇게 익숙한 곳에서도 색다른 느낌을 받으며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한가로운 오후였지만 그렇게 여러 가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시간도 훌쩍 지나가버렸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나짐 히크메트라는 사람이 감옥에서 진정한 여행에 대해 쓴 시가 떠올랐다. 그의 시처럼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 지지 않았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 지지 않았듯이 가장 훌륭한 여행도 아직 행한 자가 없을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인 것이다. 내 여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하루,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경한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여행을 또 다른 말로 '나'를 찾아 떠나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나는 늘 가던 카페가 아닌 전혀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갔고, 사람들을 통해 비추어진 내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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